September 23,2019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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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개와는 다른 방식으로 놀이를 한다. 늑대와 개의 관계는 개와 강아지의 관계와 같다. 개들의 놀이는 15,000년간 이어진 유아증의 결과이다.”
- 마크 롤랜즈, ‘철학자와 늑대’

아기 때부터 개와 함께 지냈던 추억이 있는 젊은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우연히 96% 늑대인 강아지를 판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농장을 찾아간다. 알고 보니 100% 늑대였는데 법적 제한 때문에 그렇게 광고했다고 말을 듣고 더 구미가 당긴 그는 500달러를 주고 늑대 새끼를 덜컥 사버린다. 그리고 늑대가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동고동락한 추억을 2008년 책으로 펴냈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 번역돼 소개된 ‘철학자와 늑대’다.

자칭 개 전문가라고 자부하고 있던 롤랜즈는 늑대 ‘브레닌’과 함께 생활하면서 개의 조상인 늑대가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개와는 얼마나 다른 동물인가를 절감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늠름한 늑대의 모습을 지켜보며 오히려 ‘형’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는 롤랜즈는 책 곳곳에서 자신이 느낀 늑대와 개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앞에 인용한 문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유아증은 어른이 된 뒤에도 정신적·육체적으로 유아 상태에 머물러 있는 걸 뜻하는데 어떻게 보면 사람도 영장류 가운데 유아증을 보이는 종이다. 롤랜즈는 개의 유아증 예로 막대기를 던지면 물어오는 놀이를 들고 있다. 개들은 막대기를 던지고 물어 오는 놀이를 반복해도 물려하지 않는다. 마치 아기들이 봤던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면서 늘 재미있어 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늑대에게 막대기를 던져주고 물어 오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물어 오라고요? 왜요? 필요하면 직접 가져올 것이지 왜 나더러 시켜요? 다시 가져오게 할 거면 애당초 던지기는 왜 던져요?’

개를 길들인 시기는 32,000년 전?

▲ ‘숲’(2011), 종이에 수채, 51×26cm ⓒ강석기

필자는 저녁을 먹고 천변 산책로를 걷곤 하는데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정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류학적으로는 원숭이, 즉 영장류와 더 가까운데 왜 사람은 개와 이렇게 친해졌을까? 예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원숭이와 사는 사람 이야기를 봤는데 원숭이를 키우는 게 만만치 않아 보였다. 분류학적으로 가깝다고 행동까지 비슷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개의 기원은 오래 전부터 많은 학자들의 관심사였고 여러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됐는데 최근까지 결론은 개가 늑대의 후예라는 것과 인류의 농경이 시작된 1만여 전 무렵 늑대가 길들여져 개가 됐다는 시나리오다. 지난 1978년 이스라엘에서 함께 발견된 12,000년 전 개와 사람의 유골이 결정적인 증거다.

그런데 2011년 학술지 ‘플로스 원’에 놀라운 발견을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시베리아의 알타이산맥 지역에서 개로 추정되는 뼈를 발견했는데 33,00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이게 맞다면 늑대를 길들인 시기가 무려 2만 년이나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이고 농경생활이 계기가 됐다는 시나리오도 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뼈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5월 14일자에 2011년 논문과 맥을 같이 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중국 쿤밍동물학연구소 연구진들이 회색늑대 4마리와 중국 토종견 3마리, 기타 품종견 4마리의 게놈을 비교해 분석했는데 이에 따르면 늑대에서 개가 분리돼 나온 시기가 32,000년 전으로 나왔다는 것. 연구자들은 늑대가 처음 길들여진 게 남중국 일대라고 추정했고 그 직계 후손이 중국 토종견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게놈을 비교하자 중국 토종견과 늑대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독일셰퍼드를 비롯해 다른 품종의 개들과 늑대 사이의 차이에 비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 늑대와 중국 토종견의 게놈을 비교분석하자 32,000여 년 전 남중국에서 늑대가 길들여져 개가 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숫자는 시기별 추정 개체수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사람과 개는 함께 진화했다!

한편 늑대와 개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분석하자 흥미로운 패턴이 나왔다. 3만여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개가 획득한 변이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사람이 유인원의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면서 얻은 변이와 같은 방향이었다는 것. 특히 신경계와 소화계, 대사과정,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변이에서 그런 특성이 보였다.

예를 들어 신경계의 경우 늑대에서 개가 되면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 공격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정착을 하면서 집단이 늘어나 밀도가 높아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침팬지 같은 다른 유인원에 비하면 공격성이 약한 동물이다. 또 암 같은 만성질환에 걸리는 경향도 사람과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결국 사람과 동거하면서 환경을 공유하다보니 진화도 같은 방향으로 일어났다는 말이다.

이에 앞서 학술지 ‘네이처’ 3월 21일자도 역시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일어난 개의 진화 사례가 보고됐다. 녹말이 풍부한 음식에 적응되도록 개의 유전자가 바뀌었다는 내용이다. 원래 늑대는 주로 육식을 하는데 농경생활에 하게 된 사람과 함께 살면서 개도 식단이 바뀌었고 따라서 소화계도 이에 맞게 진화했다는 것. 즉 녹말을 분해하는 효소를 지정하는 AMY2B 유전자 개수가 늘어나 탄수화물 음식을 더 잘 소화할 수 있게 됐고 올리고당을 소화하는 효소 유전자 MGAM과 장에서 포도당 흡수를 돕는 단백질 유전자SGLT1도 활성이 높게 변이가 일어났다는 것.

▲ 중국 남부 일대에 살고 있는 토종견의 모습. 최근 게놈을 분석해 늑대의 게놈과 비교한 결과 늑대가 길들여져 개가 된 시기가 32,000여년 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쿤밍동물학연구소


늑대가 개로 재탄생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인류의 진화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쿤밍동물학연구소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동물계에서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사람의 진화와 질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시스템을 제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고고학 발견과 함께 게놈 연구에서도 늑대가 길들여진 게 3만여 년 전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모두가 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영국 더럼대 고유전학자 그레거 라르슨 교수는 “남중국에 늑대가 살았다는 증거가 없다”며 “그런데 어떻게 늑대를 길들일 수 있었나?”고 반문했다. 물론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당시 남중국에 살았던 늑대들은 그 뒤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얻은 연대는 다른 분자진화 논문들과 마찬가지로 추정된 돌연변이 속도를 바탕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1년에 10억 염기 가운데 2.2개에서 변이가 일어나고 한 세대를 3년으로 잡아 데이터를 해석했다는 것이다.

사람과 개의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는 학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논쟁거리이겠지만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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