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전기자극하여 ‘발작’ 막는다

페이스메이커 원리 활용… 기억 회복에도 효과

페이스메이커(pacemaker)라고 하면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주에서 특정 선수를 위해 속도를 조율해주는 보조선수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단어는 또 다른 뜻도 갖고 있다. 바로 ‘인공심장박동기’다. 심장병을 가진 환자가 일정한 심장 박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심장에 인공적인 전기자극을 가하는 의료용 기기다.

뇌에 전기를 자극하는 이식형 '뇌 페이스메이커'

뇌에 전기를 자극하는 이식형 ‘뇌 페이스메이커’  ⓒ UCBerkeley

그런데 이 같은 인공심장박동기의 원리가 최근 들어 뇌에도 활용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거 간질이라 불렸던 뇌전증 같은 발작성 뇌질환을 치료하는데 있어 인위적인 전기자극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의료기술 전문 매체인 메디컬익스프레스(medicalxpress)는 미 UC버클리대 연구진이 뇌에 심어 발작이나 손떨림 같은 증상을 예방할 수 있는 ‘뇌 페이스메이커(brain pacemaker)’를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링크)

뇌에 가하는 전기자극으로 발작증상 완화

UC버클리대 연구진이 개발한 뇌 페이스메이커의 정식 명칭은 ‘원드(WAND, wireless artifact free neuromodulation device)’다. 수십개의 전극을 지닌 뇌 이식형 디바이스로서, 마름모꼴 모양의 칩(chip)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WAND를 환자의 뇌에 이식하면 특정 부위에 전기자극을 가하여 발작성 뇌질환이나 신경마비 같은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UC버클리대 측의 설명이다.

WAND는 64개의 전극을 지닌 이식장치 두 개와 이를 제어어하는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뇌의 미세한 전기적 파동 및 자극을 감지하여 발작의 징후를 찾아내서 이상 부위가 감지되면 동시에 전기자극을 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WAND는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전기자극 신호를 내보내어 심각한 발작이 생기기 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맡는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설계된 대로만 작동된다면 뇌전증 환자의 경우 심각한 발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

WAND는  64개의 전극을 지닌 이식장치와 이를 제어어하는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WAND는 64개의 전극을 지닌 이식장치와 이를 제어어하는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 UCBerkeley

물론 이상부위가 감지되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발작 정도가 심하지 않은 환자라면 신호 감지가 늦어지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발작 정도가 심한 환자라면 신호 감지가 조금만 늦어지더라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환자에게 맞는 자극 신호를 제대로 감지하는 지가 WAND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으로 연구진은 판단하고 있다. 아직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단계여서 연구진은 원숭이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일명 히말라야원숭이라 불리는 레서스마카크(rhesus macaques) 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연구진은 WAND가 뇌에서 발생하는 특정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했고, 그 결과 일정한 감지 능력을 갖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UC버클리대 컴퓨터과학과의 ‘리키 뮬러(Rikky Muller)’ 박사는 “사실 발작에 앞서 나타나는 전기신호를 감지하는 작업은 극도로 어렵고, 이를 막는 데 필요한 전기자극의 주파수와 강도를 정하는 것도 대단히 까다로운 일”이라고 소개하며 “WAND를 이용하여 치료 효과를 보려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미세조정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뮬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WAND는 뇌에서 경련이나 발작 신호가 포착되면, 이를 막기 위해 스스로 전기 자극의 한도를 재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피드백으로 자동조정되는 ‘폐회로(closed-loop)’를 사용하여 자극과 기록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임상자료도 축적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기자극은 기억력 회복에도 효과

뇌에 가해지는 전기자극이 발작 증상만을 완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연구진은 웨이크포리스트뱁티스트(WFB, Wake Forest Baptist) 병원과 공동으로 치매 환자들의 잊혀진 기억을 전기자극으로 되살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

USC대 연구진이 개발 중인 방법은 뇌가 정상 가동될 때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복제하여 기억의 중추인 해마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통해 공동 연구진은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테스트에서 기억력을 35~37% 정도 향상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본격적인 임상에 앞서 테스트의 초점을 ‘일화(逸話) 기억’에 맞췄다. 일화기억이란 어떤 특정한 사건을 장기적으로 기억하는 방식인데, 치매나 뇌졸중 같은 뇌 질환을 앓게 되면 일화기억이 크게 손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자극으로 치매 환자의 기억을 회복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 NAVVA

전기자극으로 치매 환자의 기억을 회복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 NAVVA

실험 대상은 테스트 전에 뇌의 여러 부위에 전기자극을 받은 8명의 치매 환자들이었다. 연구진은 화면에 간단한 도형을 보여주고, 다음 화면에서 여러 개의 도형 중 방금 본 도형을 고르도록 했다. 환자가 정답을 찾으면 뇌 기억 중추인 해마에서 어떤 형태의 전기신호가 발생하는지를 분석했다.

이어서 연구진은 다중안테나입출력(MIMO) 기술을 적용하여 뇌 신경세포들 사이에 오가는 전기신호를 잡아낸 다음 이를 그대로 복제했다. 그리고 복제한 전기신호를 해마에 전달하자 도형에 대한 일화 기억력이 37%나 높아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웨이크포리스트뱁티스트 병원의 ‘로버트 햄슨(Robert Hamson)’ 박사는 “뇌신경세포의 기억 코드를 파악하고 이를 뇌에 입력하여 기억력을 높인 최초의 연구성과”라고 밝히며 “노인성 치매 환자는 물론, 전투 중에 입은 뇌 손상으로 가족의 얼굴을 몰라보는 군인들이 기억을 회복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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