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뇌량 절단하면 좌뇌와 우뇌는 어떻게 될까?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45

서툰 푸주간 주인처럼 아무 곳이나 자르지 말고, 관절 같은 자연적 형태를 따라 잘라 나누라.

– 소크라테스

어느 정도 이상 가까운 사이인 사람의 수가 150명 내외라는 ‘던바의 수’는 인연을 수치화한 개념 아닐까. 지구촌은 고사하고 우리나라만 생각해도 5000만 명 가운데 불과 150명이라니,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하는 생각이 드는 게 연말이라서 그런 걸까.

책도 비슷한 것 같다. 직업상 아무리 과학책을 많이 본다고 해도 1주일에 한 권꼴이고 그 가운데 절반이 신간이라고 해도 올해 나온 과학책 수백 종 가운데 필자와 ‘인연이 닿은’ 건 이삼십 권에 불과하다. 따라서 필자가 읽지 못한 주옥같은 책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이걸 읽어서 다행이다’는 책도 있다. ‘파이: 뇌로부터 영혼까지의 여행’이라는 책이 그렇다.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위스콘신대 정신의학과 줄리오 토노니 교수가 2012년 출간한 책으로 올해 한글판이 나왔다. 토노니 교수는 뇌과학의 최고 난제인 ‘의식(consciousness)’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로, 의식경험을 신경과학으로 설명하는 ‘통합정보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을 제안해 유명해졌다.

이탈리아인답게 단테의 ‘신곡’의 형식을 빌려 갈릴레오가 뇌와 의식의 실체를 탐구하는 여정을 소설체로 써서 술술 읽힌다. 게다가 거의 매쪽마다 관련 이미지가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의 8장 ‘나누어진 뇌’는 좌뇌와 우뇌가 완전히 단절됐을 때 한 사람의 뇌 안에 두 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즉 뇌 반구의 기능을 알아보는 ‘와다 테스트(Wada test)’의 결과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구성했다. 와다 테스트는 뇌의 반쪽을 마취시킨 뒤 나머지 반쪽만 활동하게 하는 하며 뇌의 특정 영역의 기능을 알아보는 방법이다. 그 결과 각 반구들은 자신들이 잠들어 있었을 때 수행된 상대쪽의 활동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 뇌에 두 의식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쪽 반구가 동시에 활동하면(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경우다) 이처럼 별개의 실체로 보였던 의식이 다시 하나로 통합된다. 양쪽 반구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쪽 반구가 완전히 분리돼 따로 활동할 경우 한 사람의 뇌에 두 마음(의식)이 존재할 수 있을까.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붉은색)의 위치와 형태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뇌전증이 심할 경우 뇌량의 앞쪽을, 아주 심각할 경우 전부를 절제하는 뇌량절제술이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다.  ⓒ 위키피디아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붉은색)의 위치와 형태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뇌전증이 심할 경우 뇌량의 앞쪽을, 아주 심각할 경우 전부를 절제하는 뇌량절제술이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다. ⓒ 위키피디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지 않는 이유

뇌전증(간질)이 심할 경우 뉴런이 한꺼번에 발화하는 걸 막기 위해 두 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제하는 ‘뇌량절제술(corpus callosotomy)’을 한다. 뇌량절제술은 그리 어렵지 않은 수술이라는데 뇌의 구조를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만일 수술로 두 반구가 단절된 환자의 마음까지 완전히 단절돼 글자그대로 ‘이중인격’이 나온다면 이런 수술이 널리 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은 수술 후 극심한 뇌전증에서 벗어나고 생활하는데도 큰 불편이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선천적으로 뇌량이 없이 태어난 ‘뇌량 무형성증’ 사람들도 인격의 분열을 겪지 않는다. 그렇다면 뇌량은 왜 존재할까.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12월 12일자에는 뇌량절제술을 받은 뇌전증 환자 22명을 대상으로 수술 전후 좌뇌와 우뇌의 기능적 연결성의 변화를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워싱턴대 신경외과 재로드 롤랜드 교수팀을 비롯한 공동연구자들은 뇌량의 역할을 명쾌히 알아보는 실험을 설계했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2억 개의 축삭 다발로 이뤄진 뇌량은 백색질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축삭은 뉴런(신경세포)의 신호가 전달되는 통로이므로 수술로 뇌량을 절제할 경우 두 인격(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장애가 생길 것 같은데 막상 그렇지 않은 게 오히려 미스터리다.

연구자들은 좌뇌에 우뇌의 기능적 연결성에 주목했다. 언어처럼 뇌의 특정 반구(이 경우 주로 좌뇌)에 기능이 쏠려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능은 좌뇌와 우뇌가 대등하게 담당한다(좌뇌는 몸의 우측, 우뇌는 몸의 좌측을 맡는다). 쉬고 있을 때처럼 특별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좌뇌와 우뇌의 상응하는 부분의 활동성은 비슷한데, 이를 기능적 연결성(functional connectivity)이라고 부른다.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량 절제 수술 전후의 뇌 활동도를 측정한 결과 뇌의 부위에 따라 기능적 연결성의 변화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뇌량을 완전히 절제했을 경우 전두엽과 두정엽의 전반적인 기능적 연결성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전두엽과 두정엽 경계면에 있는 일차감각운동피질과 후두엽에 있는 일차시각피질의 경우 기능적 연결성이 꽤 유지돼 있었다. 한편 뇌량의 일부(앞쪽)만 절제했을 경우 기능적 연결성이 사라진 부분은 없었고 특히 일차시각피질은 수술 전후 별 차이가 없었다.

즉 뇌량이 완전히 파괴되더라도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니고 특히 감각과 운동에 관여하는 일차감각운동피질과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일차시각피질의 연결은 꽤 보존돼 있기 때문에 수술 뒤에도 환자들이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부분이 완전히 단절된다면 좌우 근육의 조율이 필요한 움직임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걷기도 힘들 것이다.

뇌량 부분 절제 수술의 경우 뒤쪽에 있는 뇌량섬유는 남겨놓는데, 이 부분을 통해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상당부분 유지되고 특히 일차시각피질 사이의 소통은 거의 온전히 보존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뇌량을 완전히 절제했음에도 어떻게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을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데 뇌량뿐 아니라 전교련(anterior commsissure) 같은 다른 부분도 관여한다”며 “실제 일차운동피질에서 손을 담당하는 부분 사이의 연결은 뇌량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선천적으로 뇌량이 없는 경우 태아 발생 과정에서 이를 대체하는 경로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좌뇌와 우뇌는 평소 상응하는 부분이 비슷한 활동성을 보이는데 이를 기능적 연결성이라고 부른다. 최근 연구자들은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량절제술 전후 기능적 연결성의 변화를 분석해 뇌량의 역할을 추정했다. 수술 전(pre) 후(post) fMRI으로 위는 뇌량을 완전히 절제한 한 환자의 데이터이고 아래는 부분 절제한 데이터이다. 상관계수(z)가 1에 가까울 수록(짙은 붉은색) 좌뇌와 우뇌의 상응하는 부분의 활동이 비슷하다는, 즉 기능적 연결성이 높다는 뜻이다. 뇌량을 완전히 절제했을 때 연결성이 꽤 낮아지지만 그 정도는 부위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좌뇌와 우뇌는 평소 상응하는 부분이 비슷한 활동성을 보이는데 이를 기능적 연결성이라고 부른다. 최근 연구자들은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량절제술 전후 기능적 연결성의 변화를 분석해 뇌량의 역할을 추정했다. 수술 전(pre) 후(post) fMRI으로 위는 뇌량을 완전히 절제한 한 환자의 데이터이고 아래는 부분 절제한 데이터이다. 상관계수(z)가 1에 가까울 수록(짙은 붉은색) 좌뇌와 우뇌의 상응하는 부분의 활동이 비슷하다는, 즉 기능적 연결성이 높다는 뜻이다. 뇌량을 완전히 절제했을 때 연결성이 꽤 낮아지지만 그 정도는 부위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분리 뇌 연구로 노벨상까지 받았지만

뇌량절제술은 1940년대 미국 로체스터대의 신경외과의 윌리엄 반 웨이그넌이 처음 시도했다. 웨이그넌은 뇌량뿐 아니라 전교련도 절제했다. 환자들은 수술 뒤 뇌전증 발작이 크게 감소했고 별다른 부작용은 관찰되지 않았다. 따라서 뇌량은 단순히 좌뇌와 우뇌를 묶어두는 구조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50년대 칼텍의 신경심리학자 로저 스페리와 대학원생 마이클 가자니가는 기발한 실험을 고안해 뇌량과 전교련 절제술을 받은 사람들이 좌뇌와 우뇌의 정보교환이 제대로 안 돼 기이한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좌측 시야에만 보이게(즉 우뇌가 처리하게) 물체를 제시한 뒤 “뭐가 보이냐?”고 물을 경우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답하면서도(좌뇌가 언어를 담당) 왼손으로 집어보라면 물체를 집을 수 있다. 즉 절제 수술을 받은 사람에서 의식이 분리된 순간을 포착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좌뇌와 우뇌가 따로 작동하는 ‘분리 뇌(split-brain)’ 현상을 발견한 공로로 스페리는 198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뇌량절제술이 행해지는 건 수술법이 개선돼(전교련은 절제하지 않는다) 부작용의 가능성과 심각성이 줄어들었고 무엇보다도 수술을 하지 않았을 때 환자가 겪을 손실(발작으로 인한 부상이나 기대수명 단축 등)이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뇌량이 반구 사이의 기능적 연결성을 유지하는데 역할을 한다는 강한 증거를 제시한다”면서도 “뇌량 이외의 경로도 중요하다는 증거 또한 제시한다”고 쓰고 있다. 솔직히 뇌량절제술 같은 ‘무식한’ 수술은 과거의 일인 줄 알고 있던 필자는 이번 논문을 보며 뇌과학 교양서적에서 분리 뇌 실험이 극적으로 묘사되면서 뇌량의 역할이 오히려 과대평가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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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김영재 2017년 12월 15일10:24 오후

    사이언스 타임즈의 기사에서 돌연변이라 여겨지는, 별종이라 이름 붙일만한 글을 발견한다. 아슬아슬한 문장작법과 달갑지 않은 용어의 구사, 감정통제가 쉽지 않은 글이라는 느낌이 구절마다 새어 나온다. 아하, 과학칼럼…니스트의 글이로구나 한다.

    내가 사이언스 타임즈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것은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내용이 많을 뿐 아니라 충분한 댓글공간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작성 및 가공된 글은 사진을 덧붙여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 사회연결망SNS 서비스를 통해 불특정다수에게 파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 과학칼럼…니스트가 과학칼럼이라고 이름 붙인 글에 단 댓글은 아마 사이언스 타임즈의 댓글로서 마무리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올렸던 글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것은, 알맹이도 껍데기도 없는 비난성의 댓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筆者라는 말은 글을 쓴 사람이나 또는 쓰고 있거나 쓸 사람을 가리킨다. 저자著者는 글로 써서 책을 지어 낸 사람이라 풀이된다.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필자는 author, writer라 쓰고 저자는 writer, author라 순서만 바꿨다. 모두 불특정 삼인칭이다. 특정 일인칭이 아니다.

    인용하신 소크라테스의 말은 서툰 푸주간 주인의 이 빠진 식칼처럼 서툴다. 쓰신 글에는 미숙한 문장이 남발된다. 이를테면, ‘뇌량절제술은 그리 어렵지 않은 수술이라는데 뇌의 구조를 그럴 것 같다’…등등의 문장이 비난성 댓글을 최촉催促한다.

    필자라는 말은 ‘나’라는 말로 바꾸는 게 좋겠다. 영어권 논문에서도 ‘i’로 표기하거나 문장구조를 수동태로 바꾸어 생략하는 경향이다. 작성된 글은 여러 번 읽고 제 삼자 교정을 거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포장이 시원찮으면 물건이 제 값을 받기 힘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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