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노벨상 연구 방해한 ‘조건반사’

노벨상 오디세이 (17)

우주로 보내진 최초의 생명체는 1957년 11월 3일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개였다. 그런데 ‘라이카’라는 이름을 지닌 그 개가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모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물 공급장치 및 산소발생기, 온도조절기 등의 생존 장치가 꽉 들어찬 좁은 공간 속에서 라이카는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도록 꽁꽁 묶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주복을 입은 채 수많은 기계에 둘러싸인 라이카가 발버둥치지 않고 고정 자세로 버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훈련 덕분이었다. 그 훈련은 바로 파블로프 박사의 조건반사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는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다. 그가 무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게 되었는지 물으면 대개는 개의 조건반사에 대한 연구라고 대답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의 실제 수상 업적은 소화액의 분비 메커니즘을 실험적으로 밝혀낸 공로였다.

파블로프가 개를 이용해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가 파블로프 박사다. ⓒ Wellcome Images

파블로프가 개를 이용해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가 파블로프 박사다. ⓒ Wellcome Images

대표적으로 타액선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와 위‧쓸개 등과 같은 장내 다른 기관들의 운동기능에 관한 연구, 위액 분비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소화생리학 연구는 여러 생리학연구소에서 활용되었으며, 소화계에 관한 기존 지식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849년 9월 러시아 랴잔에서 시골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난 파블로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생리학과 화학을 공부했다. 임피리얼 의학 아카데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1884년부터 약 3년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라이프치히대학의 루트비히 교수 등과 함께 연구했다.

시상식장에서 조건반사 연구 시작 발표

당시 독일은 의학‧생리학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던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로 돌아온 이후 파블로프는 독일 의학자들의 연구 방법에 따르지 않고 새로운 연구법을 구상했다. 독일 의학자들의 경우 신경이나 근육 등을 몸 밖으로 분리해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생명체가 그 전체로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파블로프의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신체 전체를 직접 관찰하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을 이용해 실험을 행하기 시작했다. 소화계에 관한 그의 연구 업적들도 대부분 동물실험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 같은 실험 기술을 완성시킨 이가 바로 파블로프 박사다.

그럼 그의 조건반사 연구는 언제 행해졌던 걸까. 1904년 노벨상 시상식에서 파블로프는 생리학 분야가 아니라 조금 다른 분야, 즉 조건반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가 이에 대한 연구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된다.

살아 있는 개를 이용해 소화액과 침의 분비 정도 및 시점 등을 연구하던 중 파블로프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원래는 개가 먹이를 먹을 때만 침과 소화액이 분비됐으나 실험이 진행될수록 개가 조교의 발자국 소리만 듣고서도 침과 소화액을 분비하는 일이 잦아졌던 것이다.

그 같은 현상은 파블로프의 실험을 방해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먹이의 양에 따라 소화액 분비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확히 측정해야 하는데, 먹이를 주기도 전에 분비해버리니 그 양을 제대로 측정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해 본래의 실험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파블로프는 달랐다. 그는 오히려 그러한 현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왓슨의 행동주의에 큰 영향 미쳐

노벨상 수상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파블로프의 개 실험 장면은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라이카보다 더 끔찍했다. 살아 있는 개의 턱에 구멍을 내서 타액이 밖으로 나오게 한 뒤, 연구원은 개를 볼 수 있지만 개는 그들을 볼 수 없게끔 완전히 격리된 실험실에 안치시켰다. 그 실험실은 외부의 시각 및 소음을 비롯해 모든 것들로부터 격리된 상태였다.

오로지 개에게 주어지는 자극은 원격 조정에 의해 전달되는 고기 가루와 그것이 전달될 때마다 켜지는 전등 불빛뿐이었다. 배고픈 개는 고기 가루가 주어질 때 침을 흘리지만, 나중에는 고기 가루가 주어지지 않고 전등만 켜져도 침을 흘리게 된다. 전등 대신 메트로놈의 똑딱이는 소리 등을 자극으로 주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파블로프는 먹이를 줄 때 존재하는 본능적인 반사 작용을 ‘무조건반사’라고 부르는 대신 먹이 없이도 개가 침을 흘리는 작용에 대해서는 ‘조건반사’라는 명칭을 붙였다. 조건반사 작용을 형성하는 조교의 발자국이나 불빛 등은 ‘조건자극’이며, 조건자극만 받고서도 개가 침을 흘리게 된 상태를 ‘조건형성이 되었다’고 불렀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는 오늘날 인체에서 벌어지는 면역체계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조건반사는 향후 반세기 동안 심리학을 지배하는 접근법이 됐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왓슨이 발전시킨 행동주의 학파는 파블로프의 연구에 특히 큰 영향을 받았다. 행동주의란 심리학의 대상을 의식에 두지 않고, 사람 및 동물의 객관적 행동에 두는 입장이다.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학의 가장 큰 약점은 과학적인 입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주의는 과학적 입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분석학과는 차별화를 이루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은 동물의 행동처럼 복잡한 현상을 자연 상태가 아니라 여러 상황이 통제된 연구실에서 하는 실험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인간의 정신 행동은 학습에 의해서 형성되며 또한 학습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다는 행동주의의 이론을 이용한 방법은 지금도 실제 임상 현장에서 여러 병의 치료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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