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노벨상 놓친 비운의 여성과학자

[데자뷔 사이언스] 최성우의 데자뷔 사이언스(5) - 마이트너와 프랭클린

‘노벨상의 계절’ 지난 10월에는 올해 노벨상을 받을 6개 부문의 수상자가 모두 발표되었다. 그런데 그중에 두 명의 여성 수상자, 즉 노벨생리의학상에 중국의 투유유(屠呦呦), 노벨문학상에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Svetlana Alexievich)가 포함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 바 있다.

그러나 노벨상에도 ‘유리천정’이 있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역대 수상자 중에 여성의 비율을 극히 적은 편이다. 더구나 예전에 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였고, 두 차례나 노벨과학상을 받은 퀴리부인 같은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셈이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 Free photo

로절린드 프랭클린. ⓒ Free photo

비범한 능력과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대표적인 여성과학자로는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와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 1920-1958)이 꼽힌다. 또한 이들이 이룩한 업적, 즉 핵분열의 원리 발견과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 역시 잘 살펴보면 데자뷔를 보는 듯 공통점이 많아서 흥미롭다.

버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X선 사진’이라고 극찬

리제 마이트너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물리학자로서, 오토 한(Otto Hahn; 1879-1960),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n; 1902-1980)과 함께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새로운 원소를 만드는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우라늄 원자핵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핵분열의 원리를 발견하였으나, 1944년도 노벨화학상은 공동 연구자였던 오토 한에게만 돌아갔다.

슈트라스만은 공동연구 당시 나이도 젊은 조교 정도의 신분이었으므로 그렇다 쳐도, 마이트너는 처음에는 오토 한 연구실의 방문연구원 신분이었으나 나중에는 거의 대등한 공동연구자였다. 뿐만 아니라 우라늄 실험도 그녀가 오토 한에게 제안해서 시작된 것이었고, 핵분열 및 우라늄 연쇄반응의 메커니즘을 명확히 밝혀낸 것도 물리학자였던 그녀의 공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심사위원회에서는 마이트너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 수상자 후보로 오른 그녀를 번번이 탈락시켰다.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그동안 많은 논란이 뒤따랐던 여성과학자인데, 그녀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고, 심지어 그녀가 노벨상을 도둑맞았다는 식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공동 연구 중인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 ⓒ Free photo

공동 연구 중인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 ⓒ Free photo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물리화학을 공부하였고, 파리 유학 중 새로운 연구방법인 X선 회절법을 습득하여 이후 윌킨스(Maurice Wilkins; 1916-2004) 등과 함께 DNA의 구조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윌킨스와 그의 경쟁자였던 왓슨(James Watson; 1928-), 크릭(Francis Crick; 1916-2004) 세 사람은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1962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들의 업적에는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회절사진이 결정적 기여를 하였는데, 저명한 과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버널(J. D. Bernal)은 이 사진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X선 사진’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이들이 노벨상을 받기 4년 전인 1958년에, 암으로 인하여 37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융합 연구로 당대의 대가들을 제쳤다’는 데자뷔

마이트너와 프랭클린이 기여했던 핵분열의 원리와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다.

첫째, 둘 다 인류 역사를 뒤흔들 정도의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이었다는 점이다. 핵분열의 원리 발견은 잘 알려져 있듯이 원자폭탄의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고,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제공하는 원자력 발전 역시 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역시 ‘생명의 설계도’를 제공하게 되어 오늘날 유전자공학과 생명과학의 시대를 여는 토대가 되었다.

둘째, 해당 연구를 둘러싸고 당대의 세계적인 석학 및 일류 과학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최후의 승자는 선발 주자들을 막판에 제친 의외의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핵분열 원리 발견의 단초가 된 우라늄 중성자 충돌 실험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 등이 먼저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많은 원소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서 인공 방사성 물질을 만들고 새로운 원소로 변환시키는 실험을 성공시켜 1938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페르미상’이 있을 정도로 과학계의 거장이다.

핵분열원리를_발견할 뻔했던 이렌 퀴리와 졸리오. ⓒ Free photo

핵분열원리를 발견할 뻔했던 이렌 퀴리와 졸리오. ⓒ Free photo

또한 퀴리 부인의 큰딸과 사위였던 이렌 퀴리(Irene Curie; 1897-1956)와 프레데릭 졸리오(Frederic Joliot; 1900-1958) 역시 1935년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쟁쟁한 과학자들로서, 핵분열 원리 발견의 일보 직전까지 연구를 진전시켰다. 그러나 연구의 최종 결실을 맺은 마이트너와 오토 한 등은 이전까지는 그다지 주목받던 인물들이 아니었다.

DNA의 구조 연구에 뛰어들었던 과학자들 역시 당대 최고의 인물들이었다. 어윈 샤르가프 (Erwin Chargaff; 1905–2002)는 DNA 염기 조성(Base Composition)에 관한 규칙인 ‘샤르가프의 법칙’을 밝혔고, 이는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ling; 1901-1994)은 당시 이온구조화학 분야에서 1인자로 꼽히던 과학자로서 그가 밝힌 전기음성도 이론은 오늘날 화학교과서에 그의 이름과 함께 나온다.

1954년도 노벨화학상과 1962년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가 만약 프랭클린의 DNA X선 회절사진을 봤더라면,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노벨상을 세 차례나 받는 전무후무한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에 비해 최종 승자였던 왓슨과 크릭 등은 업적을 이룰 당시에 20, 30대의 나이에 불과한 애송이들이었다.

DNA의_이중나선_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 ⓒ Free photo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 ⓒ Free photo

셋째, 여러 학문 간의 융합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가 뒷받침되었다는 점으로서,  생소한 인물들이 당대의 대가들을 제치고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핵분열 원리를 밝힌 오토 한, 마이트너, 슈트라스만은 방사화학자, 물리학자, 분석화학자가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학문 분야 간 연구팀이었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은 바이러스에 관해 연구했던 생물학자였고, 크릭은 X선 회절에 관해 연구했던 물리학자 출신이었다. 오늘날에는 학문 분야 간 연구 및 융복합 연구가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도 이들의 사례는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넷째, 처음부터 언급했듯이 연구에 여성과학자가 중요한 공헌을 했지만, 그 여성과학자는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벨상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점까지도 공통적이다. 다만, 마이트너는 생전에 여러 차례 수상자 후보에 올랐던 반면에, 프랭클린은 일찍 세상을 떠났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프랭클린의 동료들이 노벨상을 받았던 1962년까지 그녀가 설령 살아있었다 해도, 3인까지만 공동수상이 허용되는 노벨상 수상규정과 여성을 차별하는 풍토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탁월한 여성과학자가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된 사례는 마이트너와 프랭클린 이외에도 더 있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데자뷔를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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