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냉커피에 수돗물 쓰면 안되는 이유

안종주의 사이언스 푸드(24) 맛있는 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잘 휘둘리거나 행동이나 행위가 야무딱지지지 못하고 약한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그를 물렁하다고 말한다. ‘물렁하다’를 영어로 표현하면 ‘juicy’가 된다. 즙(액)이 많다는 뜻이다.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을 말하는 물렁하다는 주로 나쁜 의미에서 사용하지만 식품이나 음식에서 물렁하다는 반드시 그런 뜻만 지닌 것은 아니다. 단단한 단감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물렁한 홍시를 좋아하는 이들도 많다.

물(수분)은 식품의 보관·저장, 식감, 식품의 성상, 맛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한 맥주회사가 지하암반수를 내세워 대대적인 광고·선전과 함께 맥주애호가들을 공략해 일약 업계 선두로 뛰어오른 적이 있다.

먹는샘물(생수) 시장에서도 업체들은 물맛과 수질을 내세우며 소비자들을 공략한다. 어떤 유명업체는 빗물이 현무암층을 거치면서 화산암반에서 걸러진 물로 만든 생수임을 강조한다. 무공해 만년설빙으로 만든 생수를 강조하는 외국상표제품들도 있다.

맥주도 지나치게 차가우면 맥주 특유의 풍미를 느낄 수 없다.  ⓒ 허혜연

맥주도 지나치게 차가우면 맥주 특유의 풍미를 느낄 수 없다. ⓒ 허혜연

먹는샘물과 맥주를 비롯한 각종 술과 음료뿐만 아니라 각종 음식을 조리할 때도 물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뛰어난 바리스타는 결코 수돗물로 커피를 만들지는 않는다. 만약 수돗물로 얼린 얼음으로 냉커피를 만들어 손님에게 주면 어떻게 될까. 수돗물에 들어 있는 염소 냄새가 날 것이다. 그런 커피집은 며칠 못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바리스타나 조리사들은 지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먹는샘물이나 지하샘물을 사용하거나 적어도 수돗물을 잘 정수한 물을 사용할 것이다. 수돗물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홍차, 커피 등에서 유효성분과 독특한 풍미 성분이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느냐, 물의 온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맛을 달리 느낀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물의 맛은 물론 마시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도 한다. 그 옛날 선비들이 과거보러 한양으로 가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타는 목마름으로 찾은 어느 산골 마을의 우물가에서 동네 어여쁜 처자가 표주박으로 떠준 샘물의 맛은 그 어떤 말로서도 결코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불볕더위가 끝을 모르고 계속 이어지면서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시원한 냉커피를 자꾸 찾게 된다. 냉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물이다.  ⓒ 안종주

불볕더위가 끝을 모르고 계속 이어지면서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시원한 냉커피를 자꾸 찾게 된다. 냉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물이다. ⓒ 안종주

물은 수소 두 분자와 산소 한 분자가 단단하게 결합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순수한 물은 자연생태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실험실에서 만든 증류수에서나 볼 수 있다. 자연수에는 칼슘, 마그네슘, 철 등의 각종 미네랄과 탄산가스, 산소, 염분 등, 다양한 물질이 들어 있다. 이러한 성분의 종류와 함량에 따라 물맛이 결정된다. 이 가운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미네랄과 탄산가스다.

탄산이 많이 들어 있는 ‘약수’가 최고의 물

수돗물도 자연수를 정수하고 소독한 물이므로 이러한 성분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보급돼 있는 가정용 역삼투압정수기는 이런 미네랄 성분마저 모두 제거한다. 역삼투(逆渗透, reverse osmosis, RO) 정수 방식은 삼투압보다 높은 압력을 가할 때, 용액으로부터 순수한 용매, 즉 미네랄 등이 반투막을 통해 빠져 나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역삼투압정수기는 한마디로 물맛을 꽝으로 만든다.

예로부터 물속에 탄산이 많이 들어 있는 ‘약수’를 최고의 물로 꼽았다. 초정탄산수가 대표적이다. 임금님도 반하게 만든 물이다. 요즘의 대세는 일부러 물에 탄산을 적당량 넣은 탄산수다. 비싼 값에 내놓아도 특히 젊은층에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막걸리도 톡 쏘는 제품을 찾는 주당(酒黨)들이 많다. 시원한 청량감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로 담근 물김치나 김치 등은 특히 맛이 뛰어나다.

음식 맛도 그렇지만 물맛도 물의 온도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사람이 어느 온도에서 가장 물맛을 좋게 느끼는지 실험을 해본 결과가 있다. 차가운 물은 섭씨 13도, 뜨거운 물은 70도가 가장 좋은 것으로 사람들이 느꼈다고 답했다.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 4~5도 정도로 차갑게 한 맥주를 마시면 얼얼할 정도의 차가움은 잘 느낄지 몰라도 맥주 고유의 풍미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에 미네랄이 들어 있으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치면 외려 물맛이 좋지 않다. 당분이든, 염분이든 너무 많으면 음식 맛이 나빠지는 것과 같다. 순우리말로 센물이라고 하는 경수(硬水, hard water)는 칼슘이온과 마그네슘이온을 중탄산염(Ca(HCO3)2, Mg(HCO3)2), 염화물(CaCl2, MgCl2), 유산염(CaSO4, MgSO4)등의 형태로 많이 포함한 물을 뜻한다. 경수가 물맛이 나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반대로 칼슘이나 마그네슘이 비교적 소량 함유돼 있는 연수(軟水)는 물맛이 좋다.

살인적 폭염이 결승점을 모른 채 내달리고 있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시원하고 맛있는 물 한 사발이 생각난다. 물맛이 좋은 물로 만든 오이냉채국과 냉커피, 냉오미자차가 더위에 온 몸의 조직과 세포마저 지친 우리들을 유혹한다. 그 유혹에 빠져보기 위해서는 물맛의 과학 세계부터 먼저 빠져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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