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8,2019

냉장고 필요 없는 백신 나온다

40℃에서 3개월 보관 가능한 제조법 개발

인쇄하기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스크랩
FacebookTwitter

백신은 현대 의학의 가장 큰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인류의 수명 연장과 영아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인 여러 발견 중에서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세 아이들 중 약 85%가 홍역 및 소아마비 등의 백신을 맞고 있으며, 지난 50년간 유아 사망률을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이 덕분이다.

특히 20세기에만 약 3억 명을 감염시킨 천연두와 세계에서 가장 큰 장애 원인 중 하나였던 소아마비의 경우 백신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으로 인해 2010년에서 2015년까지 약 1000만 명이 죽음의 위기를 피해간 것으로 추정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더 나은 백신을 만들어 개발도상국에서 홍역 등의 전염성 질환으로 어린이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영리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를 설립했다. 우리나라는 1994년에 이 기구를 유치함으로써, 국제백신연구소는 한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가 되었다.

백신의 경우 2~8℃의 온도 범위에 보관하지 않으면 백신 유효성을 현저히 저해할 수 있다. ⓒ public domain

백신의 경우 2~8℃의 온도 범위에 보관하지 않으면 백신 유효성을 현저히 저해할 수 있다. ⓒ public domain

그래서인지 몰라도 국내에서는 IVI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감염병 확산 방지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지난 2016년에 서울대가 IVI와 공동연구로 개발한 백신 냉장고다.

오토바이나 자동차에 장착하게 되어 있는 이 냉장고는 아프리카처럼 교통 인프라가 낙후되고 백신 전문 전달 차량이 부족하며 기온의 편차가 큰 환경에서 오지나 산악지역까지 백신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글로벌 감염병 확산 방지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KT는 최근에 IVI와 협력해 비행선 형태의 드론인 스카이십 개발을 추진 중이다. 스카이십은 드론보다 비행시간이 더 길고 더 많은 백신을 실을 수 있어 아프리카처럼 교통 여건이 좋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백신을 공급하는 데 유리하다. 그런데 이 첨단 비행선 역시 냉장 기능을 필수 사항으로 적용하고 있다.

콜드체인 시스템 부재로 백신이 폐기되기도

이처럼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보급에서 냉장 기능이 강조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 사용 가능한 대부분의 백신은 콜드체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콜드체인(cold-chain)이란 공급망에서 온도를 관리하는 기술을 뜻하는데, 단지 낮은 온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제품에 적합한 온도를 유지시켜야 한다.

백신의 경우 2~8℃의 온도 범위에 보관하지 않으면 백신 유효성을 현저히 저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온이 높고 교통 불통의 오지가 많은 아프리카에서는 콜드체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탓에 다수의 백신이 변질되어 폐기되기도 한다.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최초로 천연두 예방 백신을 발견한 지 200여 년이 되었지만, 모든 권장 백신을 맞을 수 있는 곳에 사는 어린이들은 전 세계의 73개국 중 7%뿐이다. 현재 약 1850만 명의 어린이들이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매년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받지 않아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한다.

특히 백신에 대한 콜드체인 시스템의 부재는 세계적으로 백신 미접종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문제점은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의 확산을 현저히 증가시킨 지구의 기후변화와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열 민감성 백신을 냉동이 필요하지 않는 열 안정성 백신으로 전환하는 플랫폼의 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백신에 대한 기존의 연구결과들은 꽤 많은 편이다.

백신의 돌연변이 항원을 조작해 열 내성을 증가시키거나 백신에 첨가할 수 있는 안정적인 보조제 및 방부제도 개발됐다. 특히 금 나노입자를 포함한 첨가제는 백신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밖에 동결건조 등으로 불리는 백신의 제조법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냉동건조 등의 변형 제조법도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조법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거나 특수 장비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기 어렵고, 쉽게 구할 수 없는 화합물을 사용하는 제조법이라서 외면 받는 경우도 있다.

간단한 방법으로 열 안정성 백신 제조 가능

그런데 최근에 간단하고도 저렴한 비용으로 백신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맥마스터대학의 빈센트 렁 연구팀이 ‘사이언티픽 리포트’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연구진은 동결방지제 및 안정화제로 많이 사용되는 트레할로오스라는 이당류와 식품산업에서 사용 수명을 연장하는 필름 형성 능력을 지닌 풀루란이라는 다당류를 기존 백신과 함께 설탕 젤에 섞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마치 크림과 설탕을 커피에 넣고 저어주는 것처럼 간단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놀라울 정도다. 논문에 의하면 생백신은 40℃에서 2개월 이상 보관해도 효력을 유지했으며, 비활성화된 인플루엔자 백신은 40℃에서 최대 3개월 동안 보관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술은 청과물의 유통기한을 연장시킬 수 있는 식용 코팅과 같은 다른 응용 분야에서 이미 그 효과를 입증한 연구진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점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 또한 FDA가 이미 승인한 트레할로오스와 풀루란의 두 가지 당분만 필요로 한다는 것도 이 기술의 장점으로 꼽힌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상업적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전한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규제 테스트를 거쳐야 하므로 시장에 출시되기 위해선 최소 3~5년이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