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5,2019

남성용 피임약 시대 열리나

세계 최초 남성용 주사제 피임약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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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의 사진에 흉터를 그려 넣은 뒤 이성에게 보여주면서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남성들은 흉터를 그려 넣기 전의 여성을 선호한 반면, 여성은 같은 남성의 사진이라도 흉터가 그려진 쪽을 조금 더 매력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흉터를 남성성의 신호로 여기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특히 가임기일 때 남성적인 신체 및 얼굴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일군의 여성들은 여성적 얼굴을 지닌 남성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피임약 복용으로 인해 호르몬 상태가 변한 여성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미국의 발명가 찰스 굿이어에 의해 대중화된 고무 콘돔이 19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면,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은 1960년에 출시된 여성용 경구 피임약이다. ‘에노비드’라는 상품으로 출시된 이 인류 최초의 먹는 피임약은 여러 면에서 사회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최근 인도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의 남성용 주사제 피임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발표했다. ⓒ Image by sohyun park from Pixabay

인도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남성용 주사제 피임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발표했다. ⓒ Image by sohyun park from Pixabay

섹스를 생식의 차원이 아닌 쾌락의 도구로 떠오르게 하여 서구의 가톨릭교회를 급속히 세속화시켰으며, 임신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도 활발하게 만든 것. 에노비드 출시 이후 미국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런데 에노비드의 개발 배경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1910년 미국의 빈곤층 여성인 새디 작스는 의사를 찾아가 임신을 하지 못하는 조치를 취해달라고 간청했다. 트럭 운전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이미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는 그녀에게 “남편을 지붕 위에서 재우라”며 빈정거렸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콘돔을 구매하는 것조차 30개 주에서 범죄가 되었다. 결국 또다시 임신을 한 새디 작스는 스스로 낙태를 시도하다가 실패해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실려갔다.

남성용 피임약 개발 줄이어

그때 새디 작스를 돌본 간호사가 바로 경구용 여성 피임약의 개발을 주도하게 된 마거릿 생어다. 몇 개월 후 새디 작스가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은 생어는 산아제한 운동과 피임 투쟁을 벌이는 한편 생물학자 그레고리 핀커스 등을 끌어들여 피임약 개발을 추진했다.

에노비드가 나온 지 54년 후인 2014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남성용 경구 피임약이 개발됐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섬의 원주민들은 결혼 첫날밤 신랑이 가지가 짧은 관목인 젠다루사의 잎을 물에 끓여 먹는 풍습이 있다. 결혼 지참금을 완전히 치르기 전에는 신부가 임신해서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젠다루사 잎은 자연이 내린 피임약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풍습에 착안해 연구에 착수한 지 20여 년 만에 인도네시아 아이랑가대학의 밤방 프라조고 박사는 젠다루사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알약 형태의 남성 피임약을 개발했다. 임상시험 결과 이 피임약은 성관계 1시간 전에 먹을 경우 99%의 피임 효과를 나타냈다고 한다.

올해 3월에는 미국 연구진도 남성용 경구 피임약을 개발해 초기 임상시험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피임약은 성욕은 유지하면서 정자의 생산을 줄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피임약이 출시되려면 10년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서 개발한 남성 피임약 역시 아직 출시되지 않고 있다.

최근엔 인도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남성용 주사제 피임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발표했다. ‘리수그(RISUG)’라고 불리는 이 제품은 고환 근처 정관에 국소마취제를 통해 주입한다.

그러면 약 1개월 후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최소 13년간 피임 효과가 지속된다. 정관에 주입된 중합체가 정자를 차단하기 때문인데, 정관수술로 불리는 정관 절제술과 거의 비슷한 셈이다.

부작용 등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관건

리수그는 정자의 이동은 막으면서 정액 배출은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주사를 맞은 후 다시 임신을 원하는 경우, 중합체를 녹이는 또 다른 주사를 놓는 것만으로 정관을 예전처럼 복원할 수 있어 정관 절제술보다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리수그와 비슷한 약품인 ‘바살젤’을 개발한 미국 연구진은 진행 중이던 임상시험을 2016년에 중단한 적이 있다. 토끼 및 원숭이 등을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피임 효과가 입증됐지만, 여드름 및 기분 변화 같은 부작용이 심했던 탓이다.

리수그 역시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시험에서 남성 생식기의 정자 및 조직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 이번 연구를 이끌고 있는 인도의 샤르마 박사는 부작용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안전성에 대한 검증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남성용 피임약이 그동안 개발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피임에 대한 남성들의 적극성 부족 때문이었다. 임신이라는 큰일을 겪어야 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자신이 직접 신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결과가 없다. 또한 피임약의 부작용으로 남성성이 후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그런 상황을 부채질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피임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조사에 의하면 성생활을 하는 영국 남성은 1/3이, 미국 남성은 3/4이 남성용 피임약을 복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잇따른 남성용 피임약 개발 소식도 이 같은 사고관의 변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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