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나이 들면 왜 새 친구 못 사귈까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175

필자는 안 하고 있지만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초중고 동창들끼리 하는 폐쇄적인 SNS가 인기라고 한다. 젊었을 때는 다들 바빠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던 어릴 적 친구들이 나이 들어서 부쩍 생각이 난 것일까. 아무튼 SNS와 스마트폰이라는 최첨단 기술 덕분에 못 본지 수십 년 된 친구의 근황도 마음만 먹으면 바로 알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나이 들어 옛 친구를 찾는다는 건 바꿔 말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는 뜻 아닐까. 실제 필자의 경우도 40대에 들어 사귄 친구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새로 알게 된 사람은 꽤 있다. 그런데 50에 가까워지는 지금은 새로 안면을 트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 프리랜서다 보니 그럴 기회가 많지도 않지만 솔직히 네트워크를 넓힐 의욕도 없다. 결국 요즘 일이 아닌 순전히 친교로 만나는 사람은 사실상 ‘옛날’ 친구들 몇 명이 전부다.

정도와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현상은 나이가 듦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다고 한다. 어릴 때는(심지어 대학생 때까지도) 그렇게 쉽게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왜 나이 들어서는 마음을 열지 못하고 그나마 만나던 친구들의 숫자도 줄어들까. 심리학자들은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즉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사람을 만나는데도 시간을 아끼게 된다는 것이다. 즉 정서적 교감이 불확실한 인간관계에 더 이상 시간을 투자하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이론으로 좀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대인관계가 위축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주변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만 해도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뒤적거리는 게 낙이고(보통 대여섯 시면 잠이 깬다) TV 뉴스도 꽤 보는 편이다.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에 따르면 나와 별 관계없는 사람들의 일에도 무관심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원숭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듦에 따라 호기심과 사교적 활동이 줄어든다. 그럼에도 사람처럼 사회에 대한 관심은 유지된다. 즉 이런 경향은 영장류의 진화에서 보존된 행동패턴이라는 말이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원숭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듦에 따라 호기심과 사교적 활동이 줄어든다. 그럼에도 사람처럼 사회에 대한 관심은 유지된다. 즉 이런 경향은 영장류의 진화에서 보존된 행동패턴이라는 말이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나이 들수록 의욕 떨어져

독일의 동물행동학자와 스위스의 심리학자는 나이 듦에 따라 나타나는 사교성 위축에 ‘삶의 유한성 자각’이라는 철학적 동기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원숭이를 대상으로 행동실험을 진행했다. 원숭이도 꽤 똑똑한 동물이지만 이런 생각까지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원숭이가 나이 듦에 따라 사람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지 알아본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경향에는 심리적 요인(유한성 자각)뿐 아니라 생리적 요인(근육 감소 및 인지력 저하)도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못 보던 대상을 던져준 뒤 원숭이들이 얼마나 오래 관심을 보이는가를 측정했다. 동물인형 같은 장난감의 경우 새끼들은 오래 갖고 놀지만 일고여덟 살만 되도(청년) 바로 싫증을 내 2분 이상 관심을 보이는 비율이 뚝 떨어졌다. 다음으로 안에 땅콩이 들어있는 통을 주자 다들 땅콩을 먹으려고 열심히 여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24살이 넘는 늙은 원숭이들은 몇 번 시도해 봐도 뚜껑이 안 열리자 곧 포기하고 돌아섰다. 실제 뚜껑을 열어 땅콩을 먹는데 성공한 비율도 나이에 따라 낮아져 19살이 넘는 원숭이들 가운데는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 즉 나이가 들수록 포기가 빨라지는 것과 노화로 인지력이 떨어져 문제해결능력이 낮아지는 게 같이 간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도를 알아봤다. 즉 새끼 원숭이와 친한 원숭이, 안 친한 원숭이의 사진을 각각 제시한 뒤 지켜보는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암수의 차이는 있었지만 나이의 차이는 없는 걸로 나타났다. 수컷 원숭이의 경우 새끼 원숭이를 보는 시간이 평균 5초 내외로 가장 길었고 친구와 잘 모르는 원숭이는 2~3초로 별 차이가 없었다. 암컷 원숭이 역시 새끼 원숭이를 보는 시간이 가장 길었지만 다음으로 친구를 잘 모르는 원숭이보다는 오래 봤다. 아무튼 이 실험은 원숭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도 사회에 대한 관심은 줄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암컷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털을 고르는 행동을 분석해 사회적 활동과 네트워크 크기를 알아봤다. 그 결과 나이가 들수록 다른 원숭이의 털을 골라주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골라주는 원숭이의 숫자도 적어졌다. 즉 사회활동이 위축됐다는 말이다. 이 역시 사람이 나이들 때 보이는 모습과 비슷하다. 이번 연구결과는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6월 23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결국 이번 원숭이 실험은 우리가 나이 들면서 보이는 사회활동의 위축이 ‘삶의 유한성 자각’이라는 철학적 성찰에서 비롯된 행동양식일 뿐 아니라 영장류가 공유하는 생리적 변화, 즉 노화에도 큰 영향을 받음을 시사한다. 즉 젊을 때처럼 네트워크 확장과 유지에 비용을 들이기에는 몸과 마음이 달린다는 말이다. 오늘 고등학교 친구와 점심약속을 했는데 밥을 먹으며 이번 연구결과를 들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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