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하지만, 역사를 조금이라도 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놀란다. 인간의 수명은 100년 전에 비해서 2배로 늘었다. 과거 왕들이나 누리던 호사를 모든 사람들이 누린다.
100여명이 연주하는 고급스런 교향악단의 연주를 원하는 대로 원하는 시간에 듣는다. 수은주가 30도를 넘는 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물에 얼음을 마음대로 마신다. 사시사철 무슨 과일이든 없는 것이 없다. 편안히 앉아서 이동할 수 있는 마차 같은 탈 것도 한 가정에 한 대 이상씩 가지고 있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100년 전 사람들은 지금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이 엄청난 호사를 짐작이라도 했을까?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왕같은 호사의 중심에는 바로 과학기술이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일들이 20년 30년 40년 뒤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과거의 왕 같은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를 누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물질적인 것만 놓고 본다면, 억만장자들일 것이다.
나노과학 창시자가 말하는 ‘원자정밀가공’이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지금은 억만장자들이나 가능했던 물질적인 풍요를 보통사람들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한 사람이 쓴 책의 제목은 매우 파격적이다. ‘급진적 풍요’(Radical Abundance)라고 제목을 붙였다.
radical이라는 단어는 주로 극좌나 극우 성향을 가진 정치적인 단체에 주로 사용한다. 풍요에 이런 형용사를 붙이다니, 도대체 누가 그렇게 과격한 생각을 할까?
저자는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 1955~ )이다. 드렉슬러는 나노과학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얻은 물리학자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유행을 타고 있지만, 4차산업혁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설명이 엇갈린다.
드렉슬러에 의하면 4차산업혁명은 매우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원자를 조작해서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분자 엔지니어링’이라고 할 수 있다.
급진적 풍요가 어떤 식으로 올 것인가? 드렉슬러는 더 가볍고 단단한 물질을 더 싼 값에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작은 공장에서 커다란 자동차같은 제품을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환경이 조성되어야 값비싼 제품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으며 그것이 ‘급진적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아마도 여기까지 읽으면, 에릭 드렉슬러는 무슨 신기하고 마법같은 엄청난 신기술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할지모른다. 에릭 드렉슬러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공감하는 언어로 설명한다.
새로운 용어로 급진적 풍요를 설명하자면, 원자정밀가공(APM Atomically Precise Manufacturing)의 도입을 의미한다. 원자 수준에서 아주 정학하게 생산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불가능한 새로운 물질세계가 열린다는 의미이다.
드렉슬러가 주장한 이 원리는 대중에게 퍼지면서 ‘나노 과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드렉슬러는 ‘나노과학’이 단순히 ‘나노 사이즈 과학’으로 변질된 것을 두고 APM이 후퇴했다고 안타까워한다.
APM은 사실 우리 주변에 성큼 다가왔다. 분자생물학이 바로 원자수준에서 정밀한 연구와 제조를 목적으로 한다. 유전자, 게놈, 분자 같은 용어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과학과 공학은 넓은 의미에서 원자정밀가공의 범주에 들어간다. 유기합성, 합성생물학, 단백질공학, 컴퓨터화학 등 역시 마찬가지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사람이면 수백년 걸릴 계산을 컴퓨터는 수 초 만에 뚝딱 해치운다. 이때 사람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가? 아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먹을 것을 생산할 때 사람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가? 아니다.
원자정밀가공이란 바로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할 수 있다. 그래야만 인류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급진적인 풍요가 올 수 있다.
드렉슬러가 여기까지만 설명했다면, 아마도 구름을 떠다니면서 비전만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드렉슬러는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과학과 공학의 차이를 슬기롭게 통합하는 ‘탐구공학’을 주장한다.
과학과 공학의 장단점을 파악한 뒤, 그 둘을 효율적이고 보완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결코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없다. 어떤 이들이 ‘시스템 엔지니어링’이라고도 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과학과 공학은 어느 정도로 다를까? 남녀사이의 인식차이를 다룬 베스트셀러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만큼이나 다르다.
과학의 본질은 탐구이고, 공학의 본질은 설계이다. 과학탐구는 인간의 지각과 이해의 범위를 넓히고, 공학 설계는 인간의 계획과 결과의 범위를 확장한다.
코끼리를 여러 사람이 자기 수준에서 만지면서 코끼리는 기둥같다, 배 같다, 유연한 호스같다고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 태도일 것이다. 공학은 없는 것을 계획하고 그 계획이 잘 수행되도록 조직하고 나누는 일이다.
과학과 공학의 장점을 결합한 ‘탐구공학’ 제안
드렉슬러는 성공한 거대 프로젝트 중 가장 공학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의 대표로 아폴로 계획과 게놈프로젝트를 들었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없던 로켓과 달 착륙선을 만들기로 하고, 그에 맞는 개념과 도구와 과학 및 기술을 하나로 완벽하게 융합시켜서 창조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설계가 매우 중요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맞추는 작업이 중요하다.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이다.
게놈 프로젝트는 달랐다. 이미 완성된 게놈은 자연계에 완전한 상태로 존재한다. 설계나 관리면에서는 매우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게놈 프로젝트는 유전자 서열을 분석하는 일을 염색체 단위로 각가 다른 국가나 연구집단에 할당했다.
넓게 보아서 자금, 헌신, 노동의 분화만 잘 이뤄지면 된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유전자 분석방법인 ‘샷 건 시퀀싱’같은 기술혁신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드렉슬러는 “두 분야는 업무와 사고패턴, 문제인식과 접근성에서 모두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일 우주시스템공학자와 분자생물학자를 한 곳에 몰아놓고 함께 일하게 하면 두 집단은 서로를 화성인이라고생각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탐구공학’ (exploratory engineering)은 과학지식과 공학방법을 적용해서 미래기술의 잠재력을 탐험하는 방법이다.
현재 도구로 만들 수 없는 새로운 시스템을 탐구 한 다음, 현재 과학수준에서 답할 수 있는 질문만을 제기하고, 공학자 답게 생각하는 것이 3가지 법칙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미 현재 나와 있는 과학적 발견과 지식을 공학적으로 결합시켜서 전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수있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스티브 잡스가 ‘남의 기술’을 훔쳐다가 스마트 폰을 ‘설계’한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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