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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끝없이 피고 지는 무궁화의 비밀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자 형질 변경

강원도 홍천군의 모곡4리에서는 ‘무궁화쌀’이라는 청정 무농약 쌀을 생산한다. 무농약 쌀에 무궁화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옛 선조들이 사용해온 무궁화농법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무궁화농법은 말 그대로 논밭 주변에 무궁화를 심어 해충을 몰아내는 농사법이다.

언뜻 생각하기엔 이상하다. 무궁화는 진딧물이 많이 발생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지저분한 꽃을 논밭 주변에 심는 것은 해충을 몰아내는 농사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충을 부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 농사법의 비밀은 바로 그 진딧물에 숨어 있다. 진딧물이 많아지면 천적인 무당벌레가 나타나 진딧물뿐만 아니라 벼멸구 등 논밭의 각종 해충까지 잡아먹어 농약을 치지 않고도 쌀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

무궁화는 여러 가지 의학적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최근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 연합뉴스

무궁화는 여러 가지 의학적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최근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 연합뉴스

무궁화는 진딧물이 많은 지저분한 꽃이라는 인식 자체가 사실은 왜곡된 정보다. 무궁화에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 주체는 일제다. 일제는 진딧물이 많은 더러운 꽃이라며 전국의 무궁화를 뽑아내고 대신 일본의 상징인 벚꽃을 심었다. 무궁화 꽃가루가 묻으면 눈병이나 피부병에 걸린다는 유언비어까지 퍼뜨렸다.

일제가 펴낸 조선총독부 사전에는 무궁화와 관련된 단어가 불온한 뜻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심지어 우리 고유종의 무궁화를 뽑아내고 무궁화 중에서도 꽃 모양이 예쁘지 않고 진딧물이 많기로 유명한 ‘새한’이라는 품종을 정책적으로 심어 무궁화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심기까지 했다.

50여 개국에서 재배되는 인기 관상수

하지만 무궁화는 세계 50여 개국에서 재배되는 인기 관상수다. 다른 나무보다 진딧물이 많이 발생하는 건 사실이지만 지저분한 꽃은 아니다. 그대로 두면 무궁화농법의 사례에서처럼 천적인 무당벌레가 나타나 자연스레 진딧물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무궁화는 전 세계에서 한 국가의 조직적인 탄압을 당한 유일한 꽃인 셈이다. 그럼 일제는 왜 이처럼 무궁화에 대한 말살 정책을 폈을까. 그 이유는 무궁화를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 광복 71주년을 맞이해 행정자치부가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항일투쟁을 하던 독립군들이 불렀던 군가와 시가 중 무궁화가 등장하는 것이 38편에 달했다. 당시 임시정부나 국민들의 머릿속엔 무궁화가 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꽃으로 인식된 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화랑의 원조격인 단군조선의 국자랑들은 무궁화를 머리에 꽂았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단 주위에도 무궁화가 심어졌다.

아주 오랜 옛날 외국에서도 무궁화를 우리의 꽃으로 인정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의 신화집 ‘산해경’에 의하면, ‘군자의 나라에서는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군자의 나라는 바로 우리 한민족을 지칭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꽃 ‘이화(李花)’가 있었지만 정작 백성들은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여겼다. 때문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이에게 내리는 어사화에 무궁화를 사용했고, 궁중 연회 때 신하들이 사모에 꽂는 진찬화도 무궁화였다.

정부 수립 이후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가 들어갔으며, 정부와 국회의 포장에도 무궁화를 도안하고 있다. 또 현재 사용하는 각종 공문서에도 무궁화 문양이 들어간다. 하지만 나라꽃을 법제화한 일부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의 무궁화는 나라꽃이라는 법적 근거가 없다. 즉, 무궁화는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이 스스로 인정한 나라꽃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간 꽃 피워

옛날엔 근화, 목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무궁화가 이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 건 100일이 넘도록 꽃이 피는 특성 덕분이다. 무궁화는 7월 초부터 꽃을 피운 뒤 첫 서리가 내리는 10월까지 100여 일간 계속 꽃이 핀다. 무궁화의 무궁(無窮)은 꽃이 끝없이 피고 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보통 식물의 개화 시기가 수일에서 길어도 수십 일에 이르는 것과는 매우 차이가 크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100일 이상 계속 꽃을 피우는 무궁화의 비밀을 밝혀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용민 박사팀을 비롯한 공동연구팀이 무궁화의 유전체를 해독해 처음으로 그 같은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무궁화는 같은 아욱과에 속하는 목화와 2200만년 전에 종 분화가 일어난 이후 당시 급속도로 떨어진 지구의 평균 기온에 적응하기 위해 개화와 관련된 유전자가 다른 식물에 비해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반도의 평균 기온도 무궁화 생육에 적절한 온도인 30℃보다 낮다.

연구팀은 무궁화의 유전체를 분석한 이유에 대해 무궁화가 최근 의약품 재료나 화장품 원료로 주목받고 있어 정확한 형질을 연구할 필요가 있어서라고 밝혔다.

무궁화는 예로부터 위장염, 피부병, 대하증 등의 치료에 사용됐다. 또한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골다공증 치료 효과, 피부노화 억제, 암세포의 선별적 괴사 등의 효능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이 무궁화를 아껴야 할 이유가 이래저래 많아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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