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4,2019

통제구역의 도로시(2)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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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註] 사이언스타임즈는 우수 과학문화를 국민들에게 소개하고 다채로운 콘텐츠 제공을 통한 대중의 과학 흥미 및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과학문학 분야의 유망 신예 작가 '김초엽' SF 작가의 소설을 기획·연재하고자 합니다. 약 4개월에 걸쳐 연재될 '통제구역의 도로시'는 인류가 우주 여러 행성으로 진출한 시기, 우주선 불법 정비소를 운영하는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으며, 약 4개월간 격주(월, 화 2편씩)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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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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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신 기억을 지불 받기 시작한 건 오 년 전의 일이었다. 스테이션 주민들은 다나가 왜 안 하던 짓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니까 왜 멀쩡하던 정비소 주인이 갑자기 정보 브로커 짓을 자처하는지. 주로 기억을 복제하는 브로커들은 정보를 사고파는 일로 돈을 번다. 다나가 정비소 안쪽에 그럴싸한 복제실을 차렸을 때, 인근 주민들은 같이 저녁을 먹자는 핑계로 정비소에 들렀다. 그러고는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장비들을 흘끔거렸고 찔러보듯 추측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래 살고 돈도 많아지니까 이제 인생이 지루해진 거지.”

“직접 돌아다니기는 귀찮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는 싶고.”

“당신, 어디 출장만 갔다 오면 안색이 파래지잖아. 안 그래?”

추측은 거의 다 들어맞았다. 다나는 돈을 좋아했지만, 굳이 악착같이 모을 만큼 많은 돈을 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기억을 지불 받기 시작한 이후에도 고객들의 절반 이상은 그냥 돈을 내고 싶어 했다. 그 정도면 결코 적은 수입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직접 스테이션을 떠나 돌아다니기 귀찮은 것도 사실이었다. 터미널을 통과할 때의 멀미는 아무리 클리닉에 들러도 도저히 극복이 안 되는 문제였다. 그건 다나가 온갖 행성계를 돌아다닌 끝에 이 무법 지대에 눌러 앉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마냥 손 놓고 있는 것은 원치 않았다.

어쨌든 그런 것들은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스테이션 17의 주민들은 딱 한 가지, 다나가 그 무수한 기억 정보들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몰랐다. 다나는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해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식사 자리마다 이어지던 추측은 다나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점점 사그라들었다. 사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남들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 재미있는 일이니, 다들 다나의 기행이나 악취미쯤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하루의 일을 마무리하고 2층 서재로 올라온 다나는 오늘 얻은 남자의 기억 칩을 분석해볼 생각이었다. 아마 꼬박 밤을 새우게 되겠지만, 내일 몇 시간쯤 늦게 연다고 해서 불만을 가질 고객들도 아니다. 그런데 다나가 의자에 앉았을 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쥐가 돌아다니는 듯한 소리였다. 부스럭거리고, 벽을 갉아먹는 듯한 소리.

사흘 전부터 다나를 신경 쓰이게 하던 소리였다. 새벽만 되면 무언가 벽을 타고 움직이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어쩌면 낮에도 계속 소리는 나는데 정비소가 워낙 시끄러워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원래 없던 소리가 들리거나, 원래는 맡지 못했던 냄새가 나거나 하는 일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혹시 쥐가 있나? 다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벽에 귀를 대어보았다. 쥐는 멸종되었을 텐데. 누군가 스테이션에 조작된 슈퍼 쥐를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벽을 톡톡 두드리자 거슬리던 소리가 멈췄고 다나는 다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복제된 기억을 불러들인 장치가 빠른 속도로 기억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여러 장소를 돌아다녔는지 장면 전환이 빨랐다. 조종실로 보이는 공간이 자주 등장했다. 남자는 불법 우주선의 항해사 노릇을 했던 것 같다. 주로 남자가 다른 선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주먹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쓸모없는 장면까지 보고 있을 필요는 없지. 다나는 시각 정보의 재생을 중단하고 A 구역 전체 지도로 화면을 전환했다. 먼저 정보가 있을 만한 좌표를 표시한 다음 천천히 살펴볼 생각이었다.

또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나는 옆 가게 이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소한 진동 따위가 아니라, 이렇게 집중해야 할 순간에 들려오는 쥐 소리는 정말로 거슬리기 그지없었다.

“대체 뭐야?”

일부러 큰 소리를 내자 부스럭 소리가 사라졌다. 다나는 아직 좌표 분석이 진행 중인 스크린을 흘끔 보았다. 분석이 끝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손전등을 집어 들고 2층 전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건물 1층은 통째로 정비소였고 문 하나를 지나면 우주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지만, 그쪽은 공기가 희박해서 쥐가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다나는 2층 복도에 연결된 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손전등을 비추었다. 다나의 침실, 주방, 보조 서재였다.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다시 소리가 잦아들었고 공간에는 정적뿐이었다.

다나는 손전등을 껐다. 이상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다나의 움직임에 소리가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쥐가 말을 알아듣지는 않을 테고.”

역시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방은 하나. 지난 일주일 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창고였는데, 그러면 그렇지. 문틈이 살짝 열려 있었다.

“잡았다.”

자신만만하게 문을 홱 연 다나는 소스라칠 뻔했다.

불을 비춘 곳에 웬 웅크린 시체가 있었다. 포대자루를 뒤집어쓰고, 파랗게 질린 피부에 피투성이가 된…

시체가 후다닥 달아나려고 해서 다나는 얼떨결에 문을 쾅 닫았다. 머리를 문에 부딪치기라도 했는지 신음이 들려왔다. 대체 뭐지? 죽어가는 꼴을 한 것이 평범한 도둑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1층 정비소라면 모를까 이곳 창고에는 값비싼 물건도 없다. 무기를 가졌을까? 총은 서재에 있는데.

문을 닫은 채 다나가 고민하는 짧은 순간, 타박거리는 소리가 벽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리는 서재를 향하고 있었다. 통로가 있었다. 다나는 발소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내 집에서 뭘 털어먹은 거야? 도망치게 놔두나 봐라.”

저 시체, 아니, 도둑이 어쩌다 여길 들어온 건지 알아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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