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과학기술처 부로 승격

첫 번째 과학기술부장관에 강창희 국회의원 취임

IMF 구제금융 사태로 경제가 불안에 빠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선거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그리고 1997년 12월19일 아침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씨는 문 밖으로 나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그리고 많은 지지자들에게 첫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김 당선자의 발언 속에는 대통령 당선에 따른 기쁨보다는 IMF 사태로 인한 걱정이 들어 있었다. 경제에 희생됐던 민주주의를 회고하고, 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환난으로 인한) 고난을 함께 나누자며, 국민의 협력을 부탁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구성된 대통령 자문기구인 조직행정쇄신위원회는 1998년 1월7일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하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측에서 발족한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1월15일 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잠정 시안으로 발표된 개편안은 2개로 구성돼 있었는데 1안에는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시키는 내용과 과학기술처와 통상산업부, 중소기업청, 정보통신부를 ‘산업기술부’로 통폐합하자는 내용이, 2안에는 교육부와 과학기술처를 합쳐 ‘교육과학부’로 통폐합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개편안에는 이밖에 재정경제원과 통일원을 각각 ‘재정부’와 ‘통일부’로 축소해 부총리제를 없애고, 내무부 총무처 조달청을 행정관리부로 통합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그렇게 될 경우 5~8개의 부처가 줄어들게 돼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어야 하고, 그런 만큼 일부 언론에서는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1월26일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장관급의 기획예산처와 중앙인사위원회를 신설하고, 부총리제 폐지와 함께 장관급 7개 부처를 통폐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의 기능 강화를 위해 장관급의 ‘기획예산처’와 ‘중앙인사위’를 신설하고, 통상기능 강화를 위해 외무부와 통산부의 기능을 통합해 ‘외교통상부’를 신설하도록 하고 있었다. 또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하고, 내무부 및 지방자치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내무부와 총무처를 행정자치부로 통합하는 내용 등이었다.



이 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국무위원은 기존이 21명에서 16명으로, 장관급은 33명에서 24명으로,차관급은 67명에서 57명으로 각각 줄어들게 되는데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이 안에 대해 “작은 정부, 큰 대통령을 지향하는 것으로, 대통령에로의 과도한 권력집중이 우려된다” 한나라당 차원의 개편안을 따로 마련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따로 마련한 개편안을 통해 청와대 기능에 포함돼 있는 예산 기능 및 중앙인사위의 기능을 내각으로 이관하고, 통상기능 강화를 위해 외무부는 기존대로 유지하되 대외통상부를 신설하고, 산업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 산업기술부를 신설하며, 내무부 및 지방자치 관련기능과 환경업무를 통합해 ‘자치환경부’를 신설하고, 감사원 기능을 국회 산하로 이관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야가 뒤바뀐 188회 임시국회는 1차 마감 시한을 이틀 넘긴 2월16일 밤 차수 변경까지 해가며 정부조직개편을 논의한 후 극적인 타협에 성공했다. 여야는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직속에 두자는 원안을 수정, 대통령 산하에 ‘기획예산위원회’를 두고, 재경부아래에는 외청 형태로 ‘예산청’을 두기로 했다.



논란의 쟁점이었던 예산관련 부처 외에 대통령 직속 ‘중앙인사위원회’ 폐지됐으며, 폐지키로 했던 해양수산부는 정치적 타협으로 인해 극적으로 살아났다 . 타 부처로 흩어질뻔했던 해운항만청, 수산청, 해양경찰청은 해양수산부 아래 실과 국으로 편입됐다.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도 총리실 산하로 확정됐다.



이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새 정부의 조직은 기존의 2원, 14부, 5처, 14청에서 17부, 2처, 16청으로 최종 확정됐다. 이에 대해 용두사미격 조직 개편이라며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이 있었지만, 과학기술계는 부로 승격된 과학기술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1998년 2월25일 오전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의사당에서 임기 5년의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집무를 시작했다. 김 대통령은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 시대를 엽시다’란 제목의 취임사를 통해 “지금 이 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좌절과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새 정부를 ‘국민의 정부’로 명명하고 정치 개혁,개혁을 통한 경제난 극복,인간 존중의 정신혁명, 교육개혁, 냉전적 남북관계 청산 등을 다짐했다. 그리고 1998년 3월3일 개각을 단행했는데 부로 승격된 최초의 과학기술부장관이면서 열 아홉 번째 과학기술계 수장으로서 당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강창희 국회의원이 취임했다.



강창희 장관은 대전고, 육사(25기)를 나온 후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후 정치에 입문, 네 번(11, 12, 14, 15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역임했는데 과기처장관으로 임명될 당시에는 15대 의원으로 자민련 사무총장직과 함께 국회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강창희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국회의원 장관이 왔다고 염려하는 사람이 있지만, 과학기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역할에 대해 “기대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과학기술 부문의 발전은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 후 “과학기술처를 부로 격상시킨 이번 정부의 의지를 우리는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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