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기술과 전염병까지 공유한 비단길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 (53) 실크로드

독일의 지리학자 폰 리히트호펜은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연구하는 관찰실험을 중시하는 학자였다. 그는 1868년부터 1872년까지 중국과 티베트 일대를 조사한 후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는 교역로를 통해 중국의 비단이 수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후 펴낸 ‘중국’이라는 제목의 5권짜리 책에서 그는 그 길을 ‘자이덴슈트라센(Die Seidenstrassen)’이라고 명명했다. ‘비단길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즉, 그에 의해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을 연결했던 교역로에 실크로드라는 명칭이 처음 붙여진 것이다.

중국은 특산물인 비단을 이 길을 통해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 같은 서역으로 수출했다.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초원을 넘어 지중해 동안을 관통하는 이 길의 지리적 환경은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거칠었다.

극단적인 지리 환경을 뚫고 개척된 실크로드는 무역뿐만 아니라 기술적 새로움이 교류되는 루트이기도 했다. ⓒ 위키미디어(fdecomite)

극단적인 지리 환경을 뚫고 개척된 실크로드는 무역뿐만 아니라 기술적 새로움이 교류되는 루트이기도 했다. ⓒ 위키미디어(fdecomite)

해수면보다 154m 더 낮은 저지대로부터 해발 7400m에 이른 고산준봉을 넘어 실크로드는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강과 산정호수, 광활한 사막, 만년설로 덮인 산 등을 만나기 때문. 더구나 바닷물의 증발로 염분이 침전돼 뒤덮인 평지인 ‘솔트 플랫’까지 지나야 했다.

또한 기후는 극심한 건조대부터 반습윤지대까지 다양하다. 그런 험로이지만 실크로드는 세계에서 길이가 독보적으로 긴 교통망 중 하나다. 직선거리로는 약 7500㎞이지만, 특정 루트를 따라가면 3만5000㎞가 넘는다.

다양한 방식의 물 관리 체계도 건설돼

아시아와 인도아대륙,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근동 아시아, 지중해 연안의 고대 사회를 연결한 이 길은 새로운 마을을 탄생시키는가 하면 유목민 공동체를 정주민 공동체로 변화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 간쑤성의 허시회랑에서는 기원전 1세기 이후에 계획된 농업을 확장하고 정주 농업 공동체로 변모시킨 증거가 발견된다. 유목민이 정주민으로 변함에 따라 반지하건물 등과 같은 지극히 독창적인 건축 및 설계 양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새로운 마을과 농업의 촉진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대규모 물 관리 체계도 건설됐다. 중국 투르판에 있는 건조한 분지의 경우 거대한 규모의 지하 관개수로 시설을 개발했는데, 이 시설은 오늘날까지 고창 시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야르 시는 깊은 우물을 통해 물을 공급받았으며, 허시회랑 주변의 마을엔 강물을 끌어와 옥외 수로와 도랑을 연결한 대규모 수로망이 구축됐다.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서방으로 비단을 수출하는 일방통행로가 아니었다. 서방의 생산품들도 이 길을 통해 동방으로 유입되는 쌍방통행로였던 것. 또한 무역뿐만 아니라 종교, 과학, 기술혁신,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교류가 촉진됐다. 즉, 실크로드는 상품과 사람이 이동하는 루트인 동시에 도시 공간을 조성하는 건축 및 도시 설계를 비롯해 근본적인 기술적 새로움이 교류되는 특별한 루트이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엔 전염병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지고 있다.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약 1/3 이상을 절멸시킨 페스트가 대표적이다. 아일랜드 코크대학의 연구진이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균 및 6세기경 비잔틴제국에서 유행한 페스트균들의 유전자 변이를 분석한 결과, 모두 중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파악된 것. 연구진은 이 페스트균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영국 및 중국 공동연구진은 실크로드에서 발견한 2000년 전 사람의 대변을 분석해 기생충도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92년 둔황에서 발견된 위생막대를 분석한 결과, 당시 서방에는 없었던 간흡충알이 발견된 것. 위생막대란 당시 사람들이 대변을 처리하던 일종의 화장지였다. 간흡충은 한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을 경우 쉽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크로드의 시초는 약 5000년 전

실크로드가 형성된 시기는 대략 BC 200년경일 것으로 추정돼 왔다. 그런데 실크로드가 무려 5000년 전, 즉 BC 3000년경부터 형성되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오래 전부터 고대무역 네트워크를 연구해온 미국 워싱턴대학의 인류학자 마이클 프라체티 교수팀이 ‘네이처’지에 발표한 연구결과가 바로 그것.

프라체티 교수팀은 인공위성 자료, 지리정보시스템(GIS), 지리학 등의 자료를 결합해 유목민들이 계절에 따라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통로를 시뮬레이션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컴퓨터 모델을 통해 이란, 인도, 러시아, 몽골, 중국 지역의 유목민들이 이동한 통로를 분석한 결과, 약 5000년 전에 산악지대를 누비던 농부와 무역상들의 이동로가 나중에 실크로드로 불리게 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프라체티 교수팀은 컴퓨터 모델로 밝혀낸 통로가 실크로드와 3/4 정도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는 중국 한(漢)·당(唐)대의 수도였던 창안(長安)·뤄양(洛陽)으로부터 시작하여 중앙아시아의 제티슈로 이어지는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을 2014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전체 실크로드 교통망 중 일부 구역인 이 도로망은 약 5000㎞ 거리로 뻗어 있다.

이 루트를 통해 비단은 물론 중국과 로마 제국 사이에서 오가던 고가의 상품들이 거래됐는데, 6세기부터 14세기 사이에 특히 번성했으며 16세기까지 주요 교역로로 이용됐다. 회랑을 따라 여러 제국의 수도, 궁궐, 교역 마을, 석굴 사찰, 고대 통행로, 역참, 관문, 봉수대, 만리장성의 일부 구역, 성곽, 묘역, 종교시설 등 33개 요소가 형성돼 있으며, 이것들 모두가 유산에 포함된다.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이 회랑에 속하는 3개국은 2012년에 협정을 맺고 실크로드의 보존 및 연구, 관리 등을 위해 정기적으로 회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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