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의 기름 유출 사고는 특히 치명적이다. 아가미에 기름이 달라붙으면 어류는 호흡을 하지 못해 질식사하고, 깃털에 기름이 묻은 바닷새들은 보온성과 방수성이 떨어져 저체온으로 죽게 된다. 또한 물보다 가벼운 기름은 해수면으로 떠올라 광범위한 유막을 형성하는데, 그렇게 되면 햇빛 투과량이 줄고 산소가 차단돼 그 아래의 해양 생태계 전체가 파괴된다.
2010년 7월 16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항에서는 유조선이 송유관에 원유를 옮기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송유관이 잇따라 폭발했다. 2000여 명의 소방관이 투입돼 15시간 만에 불길은 잡았으나, 유출된 기름이 바다로 유입되면서 다롄 일대 바다가 오염되기 시작했다.
국제수역의 오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 당국은 5일 내에 유출된 기름을 회수하겠다며 기름 제거 선박 20척과 어선 800여 척을 동원해 기름 수거 작업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중국 당국은 베이징의 한 바이오기술 회사로부터 급히 박테리아 23톤을 주문해 사고 해역에 뿌렸다.
그 박테리아는 다름 아닌 기름을 먹는 박테리아였다. 원유는 탄소 원자를 가진 각종 탄화수소의 혼합물이다.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탄화수소가 지닌 독성으로 인해 사망하는 생물체가 많다. 그런데 일부 박테리아는 원유의 탄화수소를 분해해 이산화탄소와 물로 변환시킨다. 이 같은 박테리아를 대규모로 최초 활용한 사례는 1989년 미국의 엑손 발데즈 원유 유출사고 때였다.
시아노박테리아가 해양에서 매년 엄청난 양의 탄화수소를 생성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사진은 시아노박테리아 중 가장 흔한 ‘시네코코커스’의 모습.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이처럼 기름을 먹고사는 박테리아는 의외로 많아서 현재 90종 이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알카니보락스 보르쿠멘시스’라는 박테리아인데, 이 미생물은 석유의 구성 성분인 탄화수소만 섭취하며 생존한다. 독일 빌레펠트대학이 포함된 국제공동 연구팀은 이 박테리아의 게놈을 해독하는 등 유용한 기술로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 중이다.
그런데 다롄항 송유관 사고가 일어나기 3개월 전에 발생한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 때 이상한 현상이 관찰됐다. ‘딥워터 호라이즌 기름유출사고’로 불리는 이 사고는 석유시추선이 폭발하면서 바닷속에 연결됐던 시추 파이프가 파손되며 5개월간이나 원유가 대량으로 유출됐던 사고다.
박테리아가 자연적으로 기름 제거
당시 약 490만 배럴의 원유가 멕시코만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기름 제거를 위해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됐다. 유막을 제거하기 위해 바다에 불을 피워 기름을 태웠으며, 유화제를 대량으로 투입해 원유 농도를 희석시키기도 했다. 또 세계 최초의 대규모 기름 제거선으로 개조한 에이웨일 호와 심해 로봇 등의 첨단 장비가 모두 동원됐다.
하지만 기름 유출량이 워낙 엄청나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절망적이던 그 순간, 이상한 사실이 하나 발견됐다. 사람들이 제거한 양보다 많은 원유가 저절로 없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놀라운 일을 해낸 주인공은 바로 기름을 먹어치우는 박테리아들이었다.
더구나 이 박테리아들의 정체는 바이오회사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스스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심해의 유정에서 원유가 흘러나오니까 심해 지역에서 탄화수소를 먹고살던 박테리아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자연적으로 정화 작용을 한 것이다.
그럼 이 박테리아들은 기름 유출 사고가 없는 평상시엔 무엇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는 것일까. 최근 이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연구결과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의 국제 공동연구팀이 발표한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시아노박테리아가 해양에서 매년 엄청난 양의 탄화수소를 생성하고, 그것을 탄화수소 분해 박테리아가 먹으며 서로 평형을 이루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석유 생산량보다 많은 탄화수소 생성
연구진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시아노박테리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풍부한 ‘프로클로로코커스’와 ‘시네코코커스’인데, 이 두 집단만으로 해양에서 연간 약 8억 톤의 탄화수소가 생성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2014년 기준으로 약 7억 톤을 생산한 미국의 석유 생산량보다 많은 양이다.
이번 연구에서 시아노박테리아는 주로 펜타데칸, 헵타데칸, 8-헵타데신과 같은 탄화수소를 생산했다. 탄화수소 분해 박테리아는 시아노박테리아가 생산하는 알칸족 화합물인 펜타데칸으로 충분히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남조류라고도 불리는 시아노박테리아는 세포 내에 핵이 없는 원핵세포로 이루어진 원시 조류의 일종이다. 초창기의 원시 지구에는 지금처럼 산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시아노박테리아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유기분자로 바꾸는 광합성 과정에서 부산물로 내뿜은 산소 덕분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됐다.
미래의 유인 탐사를 위해 화성에 산소를 만드려는 미 항공우주국의 ‘마스룸 프로젝트’에 시아노박테리아가 거론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시아노박테리아가 탄화수소를 합성한다는 것은 기존에도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시아노박테리아의 전 세계 탄화수소 생산량을 추정해 해양 탄화수소 순환에서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을 증명하고, 이런 공정이 대규모로 일어난다는 것을 최초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시아노박테리아의 탄화수소 생산을 미래의 연료 공급원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추가 연구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팀은 방사성 토양에서 핵폐기물을 먹는 희귀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오염된 채로 오랫동안 방치됐던 알칼리성 석회 가마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박테리아들은 유사 방사성 오염 토양에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실제로 핵폐기물을 분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 이 박테리아들을 이제껏 먹여 살린 방사성 물질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이 만들어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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