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기계 없이도 표적의 거리와 속도 측정

원근법과 수학이 그 비결

2019.12.11 14:55 이동훈 객원기자

제2차 세계대전이나 그 이전 시대를 다룬 전쟁 영화를 보면, 일반인들이 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나온다. 전차장이나 군함의 함장이 조준경 또는 망원경으로 표적을 한 번 쓱 보고는 “표적 거리 1,000m! 속도 시속 20km!” 하는 식으로 표적과의 거리와 속도를 알아 맞추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 사람들의 머리에 무슨 레이저 거리 측정기나 스피드 건이라도 심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비결은 다름아닌 원근법, 그리고 수학에 있다.

이론을 떠나 상식에 속하는 얘기지만, 모든 물체는 가까이 있으면 커 보이고, 멀리 있으면 작게 보인다. 때문에 물체가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느 정도의 크기로 보인다는 것을 알면 물체와의 거리를 대략적이나마 파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멀리 서 있는 사람의 이목구비를 구분이 가능하면 100m 이내, 이목구비가 구분이 안 되어도 착용한 옷이 뭔지 알아볼 수 있으면 100~200m 사이… 하는 식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의 시력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는 그리 정밀한 방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나마 다행히도 멀어지는 물체의 상의 크기가 시야 속에서 작아지는 비율은 거리에 따라 일정한 편이다. 따라서 시야 속 물체 실제 크기와 상의 크기, 그리고 이 상의 크기가 거리에 따라 변하는 비율을 알면 이론상으로는 물체와의 거리 측정이 비교적 정확하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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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제 PSO-1 스코프. 밀리라디안 눈금이 새겨져 있어 표적의 크기 및 속도 파악을 빠르게 할 수 있다. ⒸWikipedia

 

60분법을 이용한 MOA 단위

거리가 늘어나면 물체의 상의 크기가 작아진다. 군사적으로 보면 명중탄을 낼 수 있는 각도인 사각(射角)이 좁아진다. 그러면 물체의 크기와 사각을 알면 물체와의 거리를 추산할 수 있다. 사각도 각도인 만치 각도를 재는 기본적인 방법인 60분법을 적용할 수 있다.

60분법에서 원의 둘레는 360도이고, 도의 하위 단위인 분(1/60도)으로는 21,600분이다. 반지름 100m 원에서 중심각 1분짜리 부채꼴의 호의 길이는 약 29mm다. 그리고 원의 반지름 길이가 100야드(91.44m)로 줄어들면 중심각 1분짜리 부채꼴의 호의 길이는 1.047인치(26.58mm). 공교롭게도 1인치(25.4mm) 크기에 대충 들어맞는다.

때문에 미국 등 인치법을 쓰는 국가에서는 분을 사용하는 각도 측정 단위를 MOA(Minute Of Angle)로 부르며, 사거리(반지름) 100야드에서 변동량(호의 길이) 1인치로 정했다. 우리 군에서 사용하는 M-16 소총도 미국에서 설계된 장비이므로 이 단위에 맞게 되어 있다.

군필자라면 “M-16의 가늠자와 가늠쇠를 1클릭 움직일 때마다 탄착은 25m 사거리에서 0.7cm씩 움직인다.”라고 배우셨을 것이다. M-16은 가늠자와 가늠쇠 1클릭을 조절할 때마다 탄착이 1MOA씩 변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우리 군에서는 이에 따른 탄착 변화를 미터법으로 변환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MOA 단위에도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계산에 시간이 너무 걸렸다. 인간은 10진법으로 계산하는 데 익숙한데 비해 60분법은 60진법이다. 게다가 MOA 단위는 사거리의 10만분의 29씩의 변화를 나타내는 단위라 직관적인 계산이 좀 힘들다. 인치법이 아닌 미터법을 사용하는 나라라면 계산이 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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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용 나침반. 60분법과 밀리라디안으로 각도 표시가 되어 있다. ⒸWikipedia

 

호도법을 이용한 밀 단위

때문에 더욱 손쉽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호도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호도법은 19세기 후반 수학자 토마스 뮤어와 물리학자 제임스 T. 톰슨에 의해 소개되었다. 원주를 360도로 인위적으로 나눈 60분법과는 달리, 호도법은 반지름과 호의 길이가 같은 단위로 나눔으로써 계산이 훨씬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반지름의 길이가 r인 원 위에 길이가 r인 호를 잡을 때, 이 호에 대한 중심각의 크기는 반지름의 길이 r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이 중심각의 크기를 단위로 각을 측정하는 방법이 호도법이며, 이 각의 단위를 라디안(radian, 약칭 rad)이라고 한다.

1라디안을 60분법으로 정확히 환산하면 57도 17분 44.8초(약 57.295도)가 된다. 원의 둘레는 2×원주율(π)×반지름(r)인데, 1라디안은 호의 길이가 r일 때의 각도다.

따라서 1라디안÷360도=r/2πr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이 등식을 변형하면 360도=2π라디안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원주율은 무한소수라 정확히 표기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단 3.14로 가정하면 원의 각도는 6.28라디안이 된다.

1라디안의 1/1,000인 밀리라디안으로는 6,280밀리라디안이 된다.

그리고 이 밀리라디안이야말로 비로소 물체와의 거리 측정을 더욱 쉽고 직관적으로 해낼 수 있는 단위가 되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원의 둘레는 2×π×r. 그렇다면 r이 1,000m인 원의 둘레는 π를 3.14로 가정했을 때 6,280m다. 그리고 이 원에서 중심각이 1밀리라디안인 부채꼴의 호의 길이는 정확히 1m가 된다.

사거리 1,000m에서 1m씩의 변화를 나타내는 단위. 즉 사거리의 1,000분의 1씩의 변화를 나타내는 이 밀리라디안 단위가 우리군에서도 사용하는 밀(mil, 밀리라디안을 나타내는 milliradian의 앞글자를 따왔다) 단위의 원조인 셈이다.

인간은 10진법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 밀 단위는 인치법을 쓰는 나라건 미터법을 쓰는 나라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단, 앞서도 말했듯이 원주율이라는 게 정확한 표기가 애당초 불가능하고, 6,280이라는 수도 다루기 조금은 번거롭다.

때문에 각국 군대는 계산 편의를 위해 수치가 조금씩 변형된 밀리라디안 단위를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을 위시한 NATO 각국 군대(우리군도 포함)는 수학적으로 구한 수치를 무시하고, 원의 각도를 6,400밀리라디안으로 정했다.

6,400은 8의 제곱인 64에 100을 곱한 수이므로 계산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나라마다 차이는 있어서 구 소련이 이끌던 바르샤바 조약군은 6,000밀리라디안, 스웨덴군은 6,300밀리라디안을 원의 각도로 사용하고 있다.

어차피 원의 둘레를 6,280m로 가정하고 직접 계산해봐도 NATO식 1밀리라디안은 0.981m, 바르샤바 조약군식 1밀리라디안은 1.046m, 스웨덴식 1밀리라디안은 0.996m로, 실용상 큰 문제는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밀리라디안 단위가 군대의 조준경, 쌍안경, 나침반 등 정밀 측정이 필요한 장비에 모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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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물체의 거리와 속도를 보기만 하고도 알 수 있는 것은 밀리라디안 법 및 엄청난 훈련의 결과다. ⒸWikipedia

 

측정자의 상당한 훈련 필요

그렇다면 ‘실전’으로 들어가보자. 일단 거리 측정이다. 앞서 나온 이론 설명을 통해 유도된 밀리라디안을 사용한 거리 측정 공식은 (물체의 크기÷밀리라디안)×1,000이다. 따라서 1밀리라디안 단위 눈금이 새겨진 망원경으로 길이 1m짜리 물체를 보았을 때, 눈금 하나에 물체가 꽉 들어차면 그 물체와의 거리는 1,000m((1m÷1밀리라디안)×1,000)임을 알 수 있다. 같은 물체가 눈금 2개에 꽉 들어차면 그 물체와의 거리는 500m((1m÷2밀리라디안)×1,000)가 된다.

그리고 물체와의 거리를 알면 이동하는 물체의 속도도 계산 가능하다. 앞서의 망원경으로 1,000m 떨어진 물체를 보고 있는데, 그 물체가 오른쪽으로 초당 밀리라디안 눈금 하나씩 움직이고 있다면 그 물체의 이동속도는 초속 1m, 시속 3,600m(3.6km)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가진 화기의 탄 비행속도를 대입하면, 어느 정도로 예측 사격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총에서 쏜 총알이 초속 1,000m(공기 저항으로 인한 감속은 일단 무시)로 비행한다면, 물체의 1m, 즉 1밀리라디안 눈금 오른쪽을 노려야 적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밀리라디안을 응용한 이러한 거리 및 속도, 탄착점 계산도, 표적의 정확한 크기나 내가 가진 화기의 탄 비행속도 등을 모른다면 구사할 수 없다. 때문에 군인들은 정확한 계산을 위해 이러한 사항을 평소에 암기할 것을 요구받는다.

특히 저격수나 잠수함 함장 등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계산을 통해 일발 필중을 해내야 하는 군인들은 이런 계산의 압박이 매우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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