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3,2019

국내외 학계 과학소설 연구 현황: 미국(1)

오래전부터 과학소설에 대한 진지한 연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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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은 바보들이 읽는 것이 아니다. 가장 형편없는 과학소설조차도 격렬한 지적참여를 요구한다.”1)
                               —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오슨 스캇 카드(Orson Scott Card) 

이른바 문학평론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작게는 개별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인상 비평을 다루고 크게는 문학의 전반적 흐름 그리고 그것이 사회와 역사, 현실에 미치는 상호작용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문학평론가들은 대개 대학이나 연구소 같은 곳에 적을 두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시야가 좁은 인상 비평 못지않게 인문과학 내지 사회과학적인 차원에서의 문학에 대한 학술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학이 학술연구 대상이 되는 까닭이 문학평론가들이 학계에 있기 때문이라고만 해석한다면 앞뒤가 바뀐 꼴이다. 문학은 소설이나 시, 희곡 등 어떤 형태를 띠건 간에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라는 대리보상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예술형식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읽는 문학의 여러 장르에 대해서 인문사회과학 관련된 학자들이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ScienceTimes


그렇다면 과학소설은 어떠할까? 다시 말해서 과학소설도 학자들과 문학평론가들의 진지한 연구대상이 될 수 있을까? 과학소설의 시장규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문학장르에 대한 인식의 저변조차 빈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독자층이 소수에 머물러 있는데 과연 과학소설이 인문사회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될 수 있을까? 

만일 과학소설이 삼사십 년대 번창한 값싼 펄프잡지들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였던 미국이라면 사정이 다를까? 미국에서 과학소설은 순수문학의 흐름과는 별개로 꾸준히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갖고 독자층을 키워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주류 딱지를 뗄 정도는 아님을 감안할 때, 과학소설이 양적으로 풍요로운 미국 시장은 인문사회과학의 주목을 받는데 유리할까? 

나아가 과학소설이 각광받는 주요한 하위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여져 온 영국, 중국, 일본 등의 학계에서는 이 장르문학을 얼마나 진지하게 사회문화 현상으로 연구하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 대한 우리나라 학계의 연구수준은 과연 어디까지 와 있을까?
 
과학소설이 전세계에서 양적, 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장인 미국의 경우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과학소설에 대해 진지한 연구를 활발히 해왔으며, 단지 수동적 연구 차원에 그치지 않고 관련업계 인력에 대한 재교육 내지 오리엔테이션이 목적인 각종 교육과정이 많은 대학들에 개설되어 있을 정도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일찍이 1950년대 말부터 과학소설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과학소설 작가이자 연구자 잭 윌리엄슨(Jack Williamson)2)에 따르면, 미국에서 과학소설에 대한 학술적 연구의 선구자라 하면 토마스 클래어슨(Thomas Clareson)과 데이먼 나잇(Damon Knight)을 들 수 있다.3)

토마스 클래어슨은 과학소설 연구에 매진한 뛰어난 문학자로서 과학소설의 뿌리를 미국 주류문학에서 찾아내고자 하였다. 1959년 과학소설 전문 학술지 [외삽 Extrapolation]을 창간한 그는 1990년까지 편집자를 맡았으며, 과학소설 조사협회(SFRA)의 설립자이자 초대 회장으로서 1970년부터 1976년까지 역임했다.4)

1950년대에 과학소설을 진지한 시선으로 들여다본 또 한사람의 연구자인 데이먼 나잇(Damon Knight)은 그 자신이 과학소설 작가인 동시에 번뜩이는 통찰과 영향력 있는 비평을 줄기차게 써서 발표하는 연구열을 보였다. 하지만 과학소설에 대한 진지한 학술적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부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5) 

과학소설에 대한 연구가 인상 비평 수준이 아니라 학문적 논의로 격상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아카데미의 산실인 학계의 관심이 고조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과학소설이 대학의 정규 학과목으로 편성된 해는 1962년이며 마크 힐개스(Mark Hillegas)가 콜게이트(Colgate) 대학에서 강의하였다. 이보다 앞서 샘 모스코위츠(Sam Moskowitz)를 비롯한 이들이 대학 강단에서 과학소설을 가르친 적이 있으나 학점 이수와는 무관한 강의였다는 점에서 콜게이트 대학에서의 과학소설 강좌 개설이 의의가 있다. 1964년부터는 잭 윌리엄슨(Jack Williamson)이 이스턴 뉴 멕시코 대학(Eastern New Mexico University)에서 과학소설 강좌를 개설하였다. 그는 1977년 동 대학을 퇴직할 때까지 해당 강의를 패트리스 캘드웰 박사(Dr. Patrice Caldwell)와 함께 진행했다.6) 

1970년대 들어 과학소설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적어도 십여 개의 관련 강좌들이 미국 각지의 대학들에서 개설되었다. 70년대 전반 몇 년 동안 잭 윌리엄슨이 과학소설 조사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과학소설 관련 강좌를 개설한 대학들의 수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74년 현재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들에서만 500개 이상의 과학소설 강좌가 개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조사보고서는 과학소설을 새로운 수업 아이템으로서 강의실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학계의 수요가 상당함을 보여주었다.7) 이러한 상황은 삼사십 년대 과학소설 작가들이 펄프잡지류에 작품을 기고하는 댓가로 겨우 단어 당 1센트씩 받으며 근근히 연명하던 시절과 비교해볼때 과학소설이 학계의 학문적 조명을 받을 만큼 장족의 발전을 했음을 뜻한다. 
 



1) 오슨 스캇 카드 지음, 홍인기 옮김, “80년대의 과학소설”, 불타는 미래(Future on Fire) 서문, 원문 출판은 1991년, 2000년 경 국내 온라인에 게재
2) 잭 윌리엄슨은 1960년 이스턴 뉴 멕시코 대학(Eastern New Mexico University) 영문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현재까지 동 대학에 재직하면서 과학소설 관련 강좌 2개를 가르쳐왔는데, 하나는 “창의적인 글쓰기 Creative Writing”이고 다른 하나는“환타지와 과학소설 Fantasy and Science Fiction”이다. 윌리엄슨은 테라포밍이란 용어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3) Jack Williamson, “On Science Fiction in College”, Science Fiction Studies #70 Vol. 23, Part 3, November 1996
4) 동 협회는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SF 관련 논픽션과 소설에 대한 리뷰를 담은 잡지를 1년에 4번 분기별로 펴내고 있다. 온라인 상의 주소는 http://www.sfra.org/ 이다.
5) 같은 글
6) 잭 윌리엄슨은 대학교 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과학소설 강좌를 열었으며 수강인원도 많은 편인데다가 본인도 과학소설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즐겼다고 회고한다.“나는 여전히 과학소설 가르치기를 즐긴다.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그네들의 시간을 가치 있게 써줄만한 것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퇴직 후에도 대학에서의 과학소설 관련 강의를 매년 봄마다 진행해왔다.
7) 당시 잭 윌리엄슨은 [타임], [월스트리트 저널], [퍼블리셔스 위클리 Publisher's Weekly] 같은 언론들로부터 전화를 받았으며 과학소설 잡지 한 두 곳이 관련 기사를 실었다. 이 보고서는 1,750부나 찍어 과학소설 강사들에게 배포되었으며 그 중 100부는 과학소설을 펴내는 출판사인 에이스북스(Ace Books)의 영업 담당부서에서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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