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교통수단의 과거와 미래를 보다

[Science in Art] 과학서평 / ‘거리의 종말’ (홍순만 지음)

거리의 종말 ⓒ문이당

몇 년 전 부터 중국 관광객이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반대로 여수 엑스포가 관람객들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중국 관광객이 몰려오는 이유를 대라면 아마 이런 것들이다. 한류 바람이 불었고, 한국산 화장품이 인기를 끌었으며, 일본 아베 정권이 중국인들의 감정을 자극한 데다, 해외관광에 나설 만큼 중국 경제규모가 커졌다.

다 맞는 해석이다. 그러나 홍순만 박사(59, 카이스트 녹색교통대학원 초빙교수)가 보기에 이런 것은 다만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홍 박사 해석을 따르면, 중국 관광객이 밀려드는 것은 한국과 중국 사이의 항공기 편수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홍 박사는 우리나라의 항공자유화를 주도적으로 수행한 엘리트 공무원이었다. 홍 박사는 국토교통부 항공기획관 시절인 2006년 중국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등 7개국과 항공 자유화 협정을 체결했다. 2007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대한항공에 이어 아시아나 항공까지 취항하는 복수 취항도 밀어 부쳤다.

이게 중국 관광객하고 무슨 상관이람? 할지 모르지만, 홍순만 박사가 쓴 ‘거리의 종말’ (문이당)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 항공자유화 협상 전 중국-일본은 주당 547편, 중국-한국은 446편이었지만, 협정을 맺고 1년 뒤엔 한국-중국 항공기 편수가 주당 800편 이상으로 늘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서 2014년엔 한국과 중국에서 오가는 승객숫자가 연간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철도기술연구원장 시절 개발한 초고속철도 해무 ⓒ 철도기술연구원

철도기술연구원장 시절 개발한 초고속철도 해무 ⓒ 철도기술연구원

항공기 운항 편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항공기 회사 사이의 경쟁으로 인천~베이징 항공료가 60만원에서 20만원 수준으로 1/3로 낮아졌다.

교통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이런 식이다. KTX를 건설하는데 수 조 원이 들지만, 그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거리가 단축된 효과를 보면 건설비용보다 훨씬 큰 이득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홍 박사가 담당 공무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복합화물터미널 건설, 휴게소에서 갈아타는 고속버스, 버스전용노선 등 수많은 교통정책의 이면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잦은 항공기 사고로 우리나라가 2001년 항공안전 2등급 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2008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공안전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98.89점을 받아 191 회원 국가 중 1등을 차지한 과정도 상세히 설명했다.

‘거리의 종말’은 대한민국 엘리트 공무원의 열정과 업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일반 독자들이 보기엔 다소 딱딱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에겐 교과서처럼 읽힐만하다.

책 제목 ‘거리의 종말’은 거리(street)의 종말로 생각하기 쉬우나, 거리(距離) 즉 distance의 종말이다. 영어 제목도 The death of distance로 붙였다. 속도를 높이거나, 아니면 허브(hub) 공항이나 항만을 건설해서 물류를 효율적으로 다루면 자유로워지고, 풍요로워지며, 고용이 늘고, 공정해진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홍순만 카이스트 초빙교수 ⓒ 문이당

홍순만 카이스트 초빙교수 ⓒ 문이당

홍순만 박사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공인회계사로 일하다가 행정고시 23기로 공직에 들어왔다. 1992년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교통공학 석박사를 받았다. 그 후로 홍 박사는 우리나라의 굵직한 교통관련 업무는 거의 다 한 번씩 섭렵했다고 할 만큼 속속들이 참여했다. ‘거리의 종말’을 읽으면 우리나라 교통정책이 어떻게 흘러나왔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교통, 항공, 해운, 항만, 도시계획 등과 관련된 공직자나 학생들에게 권할 만 한 책이다.

좋지 못한 결과를 낸 정책도 ‘거리’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면 이유가 잘 드러난다. 홍 박사는 여수엑스포가 예상만큼 관람객을 동원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부족한 교통인프라로 풀었다. 정부는 여수 엑스포 행사장으로 연결된 전라선 철도를 시속 50km 수준에서 150km 수준으로 올렸다. 3배로 올리면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홍 박사는 예산 20%인 4000억원을 더 들여서 시속 250km 짜리 철로로 바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많은 관람객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수도권에서 2시간대에 도달하도록 단축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4000억원을 더 들였으면 20조원이 들어간 여수 엑스포가 더 성공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래와 비교하지 않고 과거와 비교한 데서 온 전략의 부재라고 홍 박사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세계 1위를 기록한 항공안전평가를 마치고 직원들과 함께 ⓒ 문이당

세계 1위를 기록한 항공안전평가를 마치고 직원들과 함께 ⓒ 문이당

2010년 공무원 임기를 마치고 2011년부터 철도기술연구원장으로 근무하는 3년 동안 직원들과 무려 2000번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원장 문턱을 낮추고 잠재능력을 일깨워 연구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래 교통 수단을 여러 개 연구 해 놓은 업적을 남겼다.

홍 박사는 자칫 자기 자랑이 될 수도 있는 이 책을 쓰면서 여러 명의 선후배 이름을 거론했다. 강동석 장관과 정종환 장관 이외에도 주무관이나 서기관 등 함께 고생한 수 백 명의 이름을 실명으로 넣었다. 후배 공무원들이 자기보다 더 잘 해 주기를, 국가에 봉사한다는 공무원의 자부심을 계속 살려줄 것을 바라는 강력한 희망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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