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7,2019

관절염과 르누아르, 그리고 코르티손

박지욱의 메디시네마(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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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도 여느 사람들처럼 희로애락을 겪으며 생로병사를 피해가지 못합니다. 특히 그들이 얻은 질병들은 알게 모르게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작품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의사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병력을 이해하면 작품이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고흐는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프리다 칼로는 폴리오(소아마비)를 앓다가 교통사고까지 당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습니다. 로트렉은 선천적인 골격질환 때문에 화가가 되었고, 마티스는 탈장으로 말년에 13년간 몸져눕자 종이를 오려 작품을 만듭니다. 질병이 화가들의 삶과 작품에 큰 흔적을 남긴 경우지요.

반면에 르누아르와 뒤피 같은 화가들은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질병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병을 앓았지만 한 세대 늦게 태어난 뒤피는 치료제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르누아르에겐 없었고, 뒤피에겐 있었던 치료제는 바로 ‘코르티손(cortisone)’이었습니다. 때문에 두 화가의 말년은 닮은 듯 다릅니다. 오늘은 영화 <르누아르>를 통해 그 이야기를 알아볼까요.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의 남프랑스 코타쥐르로 갑니다. 지중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이곳에 ‘데데’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르누아르의 집으로 안내합니다. 데데의 본명은 카트린느 애슐랭(Catherine Hessling)으로, 실존인물입니다. 르누아르의 마지막 모델이었고 동시에 화가의 둘째 아들인 장(Jean)의 아내가 됩니다.

영화는 르누아르의 작업 장면, 사생활, 전원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장면 장면이 아름다워 마치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는 듯한데, 배우들조차 그림 속에 나오는 모델들을 연상시킵니다. 한마디로 화폭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겼다고 할까요?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과 평온함은 관절염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르누아르의 외마디 비명으로 번번히 바스라집니다. 이미 20년 동안 관절염을 앓아오던 화가는 극심한 통증으로 밤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모르핀 주사만이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뿐이네요.

르누아르는 나이 마흔을 전후해서 이런 저런 병을 얻습니다. 자전거 사고로 오른 팔이 부러지는 일만 두 번 겪어 왼손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고, 심한 폐렴에 걸려 오랫동안 요양도 했습니다. 말년을 괴롭힐 끈덕진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진단받은 것은 53세때였는데, 이미 그전부터 손과 다리를 놀리거나 움직이는데 지장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관절염에 대한 특별한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관절염은 추워지면 더 악화되므로 르누아르는 따뜻한 남프랑스에서 겨울을 났습니다. 그러다가 66세때는 아예 지중해안의 카뉴쉬르메르로 이사하여 정착합니다(1907년). 이곳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코타쥐르입니다.

하지만 지중해의 쪽빛 바다도 관절염을 물리치진 못합니다. 68세가 되면 지팡이에, 71세때부터는 휠체어에 몸을 맡겨야 했습니다(1912년). 74세에는 아내와 사별하여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붓을 잡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간신히 기력을 회복해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 친구인 앙리 마티스(Henri-Émile-Benoît Matisse;1869~1954)가 데데를 소개해주어 그녀를 모델로 여성을 다시 화폭에 담습니다. 영화는 이런 배경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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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7년과 1918~9년.

<목욕하는 여인들>. 1887년과 1918~9년. ⓒ 위키백과

르누아르의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뮬랭 데 라 갈레트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가 아닐까요? 화사한 분위기, 행복에 겨운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점점이 흩어진 빛의 얼룩… 빛의 반사체인 세상을 화폭에 오롯이 담은 인상주의의 화풍의 지도자인 르누아르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이 그림은 1887년에 완성되었는데, 이미 르누아르는 관절염을 앓고있었습니다. 이 무렵 완성된 <목욕하는 여인들(The Bathers.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도 무척 아름답고 생기가 넘치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르누아르가 평생 추구했던 인체의 아름다움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걸작이지요.

하지만 유작으로 남긴 <목욕하는 여인들(1918~19, 오르세 미술관 소장)>은 어쩔 수 없는 30년 세월과 관절염의 상흔을 보여줍니다. 사실 그는 엄청난 고통과 맞서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관절염으로 이미 팔다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는 처지에, 손은 퉁퉁 붓고 비틀어졌습니다. 그 손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누군가가 화가의 손아귀에 붓을 끼운 채 붕대로 칭칭 감아 고정해주어야 했습니다.

미술에 문외한인 우리가 보아도 전성기와 말년의 작품들은 빛과 어둠만큼이나 차이가 큽니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립니다. 관절염의 첫번째 치료 원칙은 망가지는 관절 휴식입니다. 그러니 붓을 놓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지만 화가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는 그림 그리는 동안만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까요?

현실의 미래의 모든 고통 즉, 질병과 전쟁, 부상병이 된 아들들에 대한 미안함,…이것들을 잊으려고 그림에 매달린 것은 아닐까요? 영화 속에서 르누아르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평화를 얻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는, 빛이 없는 밤 시간은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르누아르(1910년). ⓒ 위키백과

르누아르(1910년). ⓒ 위키백과

화가는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1919년). 죽는 날까지 제대로 된 현대적인 관절염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30년 후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 혜택을 처음 입은 관절염 화가는 뒤피(Raoul Dufy;1877~1953)입니다.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천진하고, 화사한 그림을 그린 야수파(!) 화가 뒤피는 나이 예순 전에 류마티스성 관절염에 걸렸습니다. 그 역시 손이 망가지자 르누아르처럼 손에 붓을 끼워 붕대로 감아서라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1949년 12월에 뒤피의 기사와 사진이 라이프(LIFE)지에 실렸는데, 보스턴에 사는 의사인 홈버거(Freddy Homburger)가 잡지를 보고 무척 놀랬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72세인 뒤피는 오른 손은 쓰지도 못하고 왼손으로 간신히 그림을 그리고, 도움 없이는 일어설 수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심한 통증으로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으니까요. 말년의 르누아르와 다를 바가 없었지요.

하지만 화가이기도 했던 홈버거는 뒤피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해 4월에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일하는 의사 헨치(Philip Hench)가 신약 코르티손(cortisone)으로 13명의 류마티스 환자들을 치료했으니 뒤피도 그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코르티손 치료를 받으라는 편지를 뒤피에게 보냅니다.

이듬 해 4월, 마침내 뒤피는 대서양을 건너 홈버거의 병원에 입원했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통증도 사라지고 손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뒤피는 14개월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그림을 왕성하게 그렸고, 작품 순회전시회도 열며 여행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1950년 12월에 코르티손을 개발한 헨치 등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자 뒤피는 <코르티손>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림을 그려 헨치 등에게 선물합니다. 지금도 그 그림은 메이요 클리닉 외래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천진하고, 화사한 그림을 그린 화가 뒤피.  ⓒ 위키백과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천진하고, 화사한 그림을 그린 화가 뒤피. ⓒ 위키백과

1952년에는 비엔나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차지해 화가로서 정점을 찍은 뒤피. 코르티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요? 치료 후 200점의 작품을 추가했고, 85세까지만 살고 싶다고 말했지만 1953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죽음의 원인은 관절염에서 자신을 해방시켰던 바로 그 코르티손이었습니다. 코르티손과 그 유사약물은 장기간 사용하면 부작용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뒤피는 3년 동안 약을 계속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위궤양을 얻었고, 궤양에서 갑자기 출혈을 일으켜 쇼크에 빠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르누아르보다 두 살 더 젊었던 나이 76세였습니다.

관절염으로 고생한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와 뒤피. 뒤피는 코르티손 덕분에 관절염은 나았지만 부작용으로 죽었습니다. 뒤피의 말년 그 자체가 코르티손으로 대표되는 스테로이드 약물이 우리에게 던져준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됩니다. 반면에 르누아르는 코르티손의 혜택을 전혀 입지 못하고 고통 속에 쇠락해가는 자신의 육신과 예술을 묵묵히 견뎠습니다.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보면 그래도 코르티손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간 뒤피의 처지가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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