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과학 실험 둘러싼 진실 공방

[과학기술 넘나들기] 과학기술 넘나들기(15)

새 정부 출범 이후 각 부처에 인선된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들이 요즈음 한창 진행 중이다. 중대한 국가적 임무를 수행할 인물에 대한 자질, 능력, 도덕성 등을 검증하는 자리인 만큼, 각종 ‘진실 공방’이 벌어지곤 한다. 청문회 자리에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존에 제기된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나는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매일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일반 뉴스보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취재와 보도로 인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등,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학의 역사에서도 이러한 진실 공방의 사례가 꽤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밀리컨(Robert A. Millikan; 1868-1953)의 기름방울 실험을 둘러싼 논란이다.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장치. ⓒ Free Photo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장치. ⓒ Free Photo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은 물리학과 대학생이라면 학부 시절에 대부분 반드시 거치는 중요한 실험으로 꼽힌다. 아주 작은 기름방울을 원통형 실린더 안에 뿜고 전기장을 가하여 기름방울이 전하를 띠게 한 후, 기름방울의 운동을 관찰하거나 기름방울이 정지된 상태의 조건 등을 측정하여 전하의 값을 알아내는 실험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밀리컨은 이 유명한 실험을 통하여 전하량의 최소 단위를 이루는 전자의 기본 전하량을 정확히 측정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나중에 미국 물리학회 회장까지 지냈지만, 그는 ‘조작이 진실을 이긴 사건’의 당사자로서 오랫동안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20세기 초 물리학계에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전하량이 존재하는가에 관하여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데, 밀리컨은 모든 전하는 기본이 되는 최소 전하량의 배수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반면, 펠릭스 에렌하프트(Felix Ehrenhaft; 1879-1952)라는 물리학자는 기본 전하량의 최소 단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값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본 전하량이 1.6×10-19C임을 밝혀낸 기름방울 실험 결과 결국 밀리컨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 공로 등으로 그는 1923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에렌하프트는 학문적인 패배에 그치지 않고 정신질환에까지 시달리는 등 불행하게 삶을 마쳤다.

실험 중인 밀리컨. ⓒ Free Photo

실험 중인 밀리컨. ⓒ Free Photo

그런데 그 후 밀리컨은 자신이 실험했던 모든 데이터를 정직하게 발표하지 않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버리고 유리한 데이터만을 골라서 사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밀리컨이 죽은 뒤 과학사학자들이 밀리컨의 실험노트를 조사하여 확인해 본 결과, 그는 140번의 실험결과 중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58번의 ‘아름다운 결과’만을 골라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데이터를 완전히 거짓으로 조작한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자신의 약점을 적절하게 숨긴 쪽이 결벽에 가깝게 정직하게 실험한 쪽을 이겼던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로 여겨졌다. 또한 이 사건은 그 동안 자연과학적 진리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에 있는 일부 과학사회학자들의 좋은 공격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밀리컨이 일부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실험상의 엄밀성 등을 고려하여 한 것이지, 자신에게 불리해 보이는 수치들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기존의 견해를 뒤집고 다시 논란이 되었다.

밀리컨이 실험데이터를 조작하였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기름방울 실험의 경우 전자의 전하량은 기본 상수로서, 실험이전에는 어떤 예측된 상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밀리컨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남겨두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밀리컨이 언급했던 ‘아름다운 결과’란 자신에게 기본 전하량에 가까워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가 아니라, 실수나 오차 없이 공정하게 실험이 된 결과만을 남겨두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기름방울이나 압력의 변화, 대류, 전압의 변동과 같은 실험적인 문제가 있거나 서로 다른 방법으로 측정한 결과의 오차가 너무 큰 경우, 혹은 측정 횟수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등의 데이터가 합당하게 제외되었다는 주장이다.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세팅(1909년). ⓒ Free Photo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세팅(1909년). ⓒ Free Photo

그렇다면 밀리컨 실험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밀리컨 실험이 그동안 조작이 진실을 이긴 사건으로 알려진 데에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부 과학사학자나 과학사회학자들, 특히 사회구성주의적 견해가 강한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서서 밀리컨을 비판한 데에서 비롯된 면도 크다고 볼 수 있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연구 윤리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실험 데이터를 임의로 취사선택해서 발표하는 행위, 이른바 데이터를 마음대로 요리(Cooking)하는 것도 분명한 연구부정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너무 큰 실험오차 등으로 인하여 데이터로서 의미가 없는 것들을 버리는 것은 과학자로서 당연한 조치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명백하게’ 구별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험 데이터의 취사선택이 연구자의 경험과 직관 등에 기반 한 합당한 것이었는지, 결과를 왜곡할 수도 있는 연구 부정행위인지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즉 오랜 실험을 경험한 사람만이 습득할 수 있는 직관과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을 지니고서 여기에 비추어 철저하게 실험 내적인 이유로 데이터를 취사선택했다면, 그것은 결코 연구 부정이라 할 수 없다. 밀리컨의 실험은 바로 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연구 윤리라는 측면에서도 다시금 주목할 요소가 많다고 여겨진다.

밀리컨이 어쨌든 모든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은 것 자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그가 실험에 보다 충실한 결과 데이터를 취사선택했다면 그는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데이터를 요리한 사람이 아니라 탁월한 실험 물리학자였을 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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