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2,2019

“과학자와 대중의 소통, 신뢰의 시작”

[디타-사타 공동기획] 제럴딘 리치몬드 – 김승환 대담

[편집자 註]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제럴딘 리치몬드 회장(62)이 ‘아태 젠더서밋’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AAAS는 300여개 기관이 참여한 세계 최대의 민간 과학기술단체로 권위 있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지를 발간하고 있다. 리치몬드 회장은 지난 8월 26일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56)을 만나 과학교육과 커뮤니케이션, 글로벌 협력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사회는 디지털타임스의 안경애 생활과학부장이 맡아 진행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디지털타임즈’와 공동기획으로 이 대담을 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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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 기후변화, 메르스, 원자력 등 과학기술 이슈가 커다란 국가·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 빈곤, 에너지 부족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에 주어진 과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제와 산업 발전’에 초점이 맞춰졌던 과학기술의 역할이 사회적 문제 해결과 갈등 조정 등으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기술계와 정부, 그리고 대중들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까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제럴딘 리치몬드 회장.  ⓒ 디지털타임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제럴딘 리치몬드 회장. ⓒ 디지털타임스

리치몬드 = 과학기술계와 정부(리더), 그리고 대중은 서로 삼각관계에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이슈 발생 시에는 정부를 상징하는 리더, 즉 국가지도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과학과 관련한 사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도층은 과학기술계의 목소리에 경청할 줄 아는 자세와 식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자로 대표되는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를 대중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는 소통에 집중해야 하고, 대중은 평소에 과학적 소양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이 삼각관계는 균형의 추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김승환 = 사실 과거에는 과학기술 발전이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고방식이 바뀌고 있는 만큼,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따라서 과학 단체는 사회적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을 육성해야 합니다. 미래 발전이나 사회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이슈 가운데 과학기술과 관련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과학기술자나 과학자 단체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자 = 리치몬드 회장께서 언급하신 삼각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삼각관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치몬드 = AAAS의 경우 과학자들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과 네트워킹 시스템 등이 마련되어 있어요. 일례로 AAAS 본부가 워싱턴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계자를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자들이 자연스럽게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반대로 국가지도층은 자신의 보좌관으로 과학자들을 배치하거나 과학자들의 조언을 구해 과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습니다. 대중들도 과학에 대한 소양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통해 식견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승환 = 과학창의재단도 AAAS와 비슷한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재단을 포함하여 과총(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같은 단체들이 과학기술의 사회적 확산과 과학의 대중화를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이 삼각관계가 원활하게 운영되고 지속되기 위한 키워드는 ‘소통’과 ‘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과의 신뢰 프로세스 구축하는 것이 중요

사회자 = 한국의 경우 광우병, 메르스, 세월호 등 사회 전체를 강타한 주요 이슈에서 과학기술계가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사회와 커뮤니케이션하고, 갈등 조정책과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습니다. 과학기술계의 사회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리치몬드 = 보건 분야의 경우 특히 사회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합니다. 미국질병관리본부(CDC)의 경우 만약 탄저균과 관련된 루머가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사태를 진정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신뢰가 중요합니다. CDC의 경우 이런 대중과의 신뢰가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나 정보가 통제된 나라의 경우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을 대중들이 의심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대중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 밖에 없습니다. 오랜 기간을 통해서라도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김승환 이사장. ⓒ 디지털타임스

한국과학창의재단 김승환 이사장. ⓒ 디지털타임스

김승환 = 한국은 IT기술이 발전하고 널리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휴대폰 소셜미디어 등이 우리 사회의 소통 메커니즘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전문지식도 중요하지만, 이를 국민들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과학자들의 역할입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과정은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하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역시 ‘신뢰’라는 자산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평소에 꾸준하게  대중들과의 소통에 노력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어요.

사회자 = 과학기술 이슈도 시대에 맞게 바뀌는데, 한국의 경우 최근 R&D의 생산성과 경제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는 기초연구, 원천연구를 강조했어요. 과학기술계가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리치몬드 = 미국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과학이 발전하려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정책의 변화에 따라 중심을 잡지 못한 사례가 있었지요. 예를 들어 태양에너지 개발이 80년대에는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90년대에는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00년대에 주목을 받았지만, 그 때는 이미 소수의 연구진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독일이나 일본의 태양에너지 기술이 미국을 능가하게 된 거지요. 이런 사례는 비단 태양에너지 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기술이 해당됩니다. 하지만 정치를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기술계 입장에서는 최대한 연구자원을 확보해 정책이 변화되어도 남아있는 연구자원을 통해 과학기술의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합니다.

풀뿌리 과학 튼튼해야 갈등 줄어든다

사회자 = 과학기술계 내에서도 분야별 갈등과 이권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연구비 편성 문제와 관련하여 잡음이 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과학자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은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리치몬드 = 나도 한때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을 다루는 업무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미국의 경우 연구비와 관련된 갈등은 주로 대형 연구기관과 권위 있는 과학자 개인 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형 연구기관은 개인을 험담하며 아무리 권위 있는 과학자라도 혼자서 연구를 하는 것은 어렵다 라는 현실론을 내세우고,  과학자들은 인류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과학기술은 대부분 개인의 성과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경우 어느 편도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김승환 = 연구기관 또는 연구자들의 갈등은 피라미드 형태의 생태계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바닥을 지탱하는 ‘풀뿌리 과학’이 넓고 튼튼해야 갈등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 생태계가 가장 견고한 미국도 그런 갈등이 심한데, 하물며 우리나라는 더 어렵지 않을까요. 과학기술의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조성되어야 그런 갈등도 줄어들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자 = 한국과학창의재단이나 AAAS는 과학교육 혁신을 주요 아젠다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AAAS에서 추진하는 ‘Project 2061’과 창의재단이 추진하려는 ‘미래세대 과학교육 표준’에 대한 상호 협력 방안은 무엇인지요?

리치몬드 = 미국에서는 ‘참여형 학습’이 유행입니다. 수학 과학 분야에서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과학에서 어려운 부분을 빼내 학생들이 쉽게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참여형 학습의 핵심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끊임없이 흥미를 불러일으켜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에 공부하러 온 아시아 학생들이 대부분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데, 과학 및 수학교육에서 흥미를 가지려면 먼저 질문을 많이 해야 합니다.

김승환 =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가 이 정도 발전한 것은 과학기술과 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드론 인공지능 등 숨가쁘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과학교육이 발전하려면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미와 흥미가 뒤따라 주어야 하는데, 국내 교육 여건에서는 사실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최근 수학과 과학교육을 둘러싸고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있는데 이처럼 문제들을 모두 꺼내 놓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것도 과학교육의 또 다른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김승환 이사장과 AAAS 제럴딘 리치몬드 회장이 과학교육과 커뮤니케이션, 글로벌 협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디지털타임스

한국과학창의재단 김승환 이사장과 AAAS 제럴딘 리치몬드 회장이 과학교육과 커뮤니케이션, 글로벌 협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디지털타임스

‘네이처’는 바이오, ‘사이언스’는 엔지니어링-물리 강점

사회자 = AAAS의 주요 사업 가운데 ‘사이언스’지를 포함한 세계적인 과학저널을 운영하는 현황과 경쟁지라 할 수 있는 ‘네이처’와의 차별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리치몬드 = ‘사이언스’를 포함한 저널 사업은 우리 협회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과학저널의 특성상 실험적인 정신을 잃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저널은 ‘독립성’이 중요합니다. 최근 저널사업부의 CEO가 바뀌었는데, 새로운 CEO도 독립성 유지에 최선을 다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과거부터 혹시라도 AAAS가 ‘사이언스’ 등 저널의 편집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우려해, 두 조직을 엄격하게 분리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네이처’와의 차별성은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네이처’는 바이오 분야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사이언스’는 엔지니어링이나 물리 분야에 강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이언스’는 AAAS의 회원이 되어야 구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점이 ‘네이처’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어요.

사회자 = AAAS는 미국 내 활동 외에도 글로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과 어떤 협력을 가질 예정인지요.

리치몬드 =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어서 현재는 한국에 대해 배우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미국이 과학 분야에서 전 세계의 주도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하는 그대로 따라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가 쉬운데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라마다 다른 발전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젠더 서밋’ 행사에 참가하는 김에 한국의 상황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행사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의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여기서 나타난 정보와 지식을 미국과 한국의 과학발전에 반영시키는 것이야 말로 양국의 진정한 협력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김승환 = AAAS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오랜 역사를 지닌 민간 차원의 과학자단체입니다. 그 활동영역은 과학기술 정책과 진흥, 대중과의 과학 소통, 과학교육, 과학저널 발간 등 우리 재단의 사업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 AAAS와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공동사업을 통해 ‘과학외교’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AAAS 뿐만 아니라 앞으로 중국 일본 등의 과학자 단체들과도 글로벌 협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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