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3,2019

과학소설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이유

현대사회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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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해외의 학계에서 과학소설에 대한 연구의 전통은 1960년대 이래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으며, 국내 학계의 경우에도 비록 양적인 규모는 크지 않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차츰 과학소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1930~1940년대에만 해도 싸구려 펄프잡지에 실리는 아이들 소일거리용 문학 취급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해당 장르가 소개된 지 10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그 대우가 미국의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과학소설을 놓고서 국내외 학계에서 연구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대학의 개설 강좌 수를 늘여나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과학소설이 어린이들 전용의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 과학기술문명의 부산물을 시류에 영합하여 말초적으로 그려내며 어설프게 교훈을 들이대는 삼류문학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째서 대학에서 장차 창작과 출판기획을 희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워크샵을 정기적으로 또는 부정기적으로 여는 것일까?

SF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 증가

이러한 문제 제기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인은 과학소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다양한 매체예술 형식으로 발전해나간 SF 컨텐츠 전반에 대한 사회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아무리 대학이 상아탑이라 해도 현실의 삶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과학소설이 단지 극성맞은 소규모 팬덤의 열기 차원을 넘어 서서 전체 문학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장르로 부상함에 따라 학계에서도 체계적이고 일관된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관련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미국에서는 최근 과학소설 시장이 전에 비해 위축되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지만1) 여전히 적잖은 과학소설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으며 SF영화들은 타 장르 영화들은 넘볼 수 없을 만큼의 흥행 파워를 자랑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침투하는 컨텐츠 장르에 대해 무심해서는 인문사회과학계가 제 몫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 2005년까지 미국에서 흥행된 극영화 역대 흥행순위를 보면 상위 10편 중 무려 6편이 SF장르에 속한다. 이는 그 만큼 인문사회과학계에서 SF를 우리사회문화의 주요한 일부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efremov

 

사회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잠재력 지녀

하지만 학계 입장에서는 두 번째 이유가 보다 중요한데 이것이야말로 본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가 과학소설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거둘 수 없는 것은 과학소설이 단지 일반 대중의 상업적인 킬링타임용 엔터테인먼트로 끝나버리지 않고 현대 산업사회를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의 하나로서 그 소임을 다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까닭이다.

현대적 과학소설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메리 쉘리의 <프랑켄시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1818년>가 출간된 이래 21세기 초엽까지의 2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인류의 역사는 지난 수천 년 간의 역사를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급속하게 변모를 거듭해왔다.

사상적으로는 17세기까지 일단락된 종교개혁과 18세기의 계몽사상 그리고 물질적으로는 18세기 중엽부터 활기를 띤 산업혁명을 거름삼아 시작된 19세기는 진화론과 실증주의, 원자설, 빛의 파동설, 전자기 현상의 발견에서 보듯이 근대과학이 완성된 시대였으며 20세기 들어서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같은 외우주 뿐 아니라 프로이드의 심리학에서 보듯이 내우주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하였다.

적절한 사례를 계속 나열하기 위해 굳이 빅뱅우주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같은 거시 우주론와 미시 우주론을 들먹일 것까지도 없을 것이다. 근대가 얼마나 급속하게 현대로 이행했는가를 보여주는 더욱 간명하고 극적인 예가 있다. 라이트 형제가 처음 날틀로 하늘을 날았을 무렵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평균 수명을 누리고 숨을 거둘 즈음 달에는 이미 인간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2)

그렇다면 최근 200년 동안 급변한 과학기술 기반의 현대문명을 가장 잘 소화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문학 장르로 과학소설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과학소설만큼 단순히 인간사에만 갇혀있지 않고 과학과 문명 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하면서 그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시의적절 하게 표출해낼 수 있는 문학형식이 또 있을까?

과학,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 표현

만일 과학소설이 지난 두 세기 동안 빠른 속도로 쉴 새 없이 달려온 인류 문명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문학 장르의 하나라면 비단 자연과학 학계에 그치지 않고 인문사회과학 학계의 주목을 받는 것이 당연할 귀결 아니겠는가. 과학소설은 같은 기간 동안 다른 문학 장르로서는 넘보기 어려운 과학과 인간 그리고 사회 간의 상호작용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문학형식상의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3)

요약하면, 과학소설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위한 일종의 사고 실험실인 셈이다.

물론 씨어도어 스터전이 언급했듯이, 과학소설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보증수표는 아니며 다른 일반문학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창작물의 90%는 쓰레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학계는 일부 우수작들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질의 고하를 막론하고 매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과학소설 작품들의 경향성 연구를 통해 현대산업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위상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 별의별 가정용 전자기기들이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주부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페미니즘을 꿈꿀 여력을 갖추기가 얼마나 용이했을까? 과학기술이 문명의 이기로서 우리의 삶과 정신세계를 변화시키는 추이를 추적하는 일 또한 과학소설의 주요한 역할이다. 위 기사는 비엔나 엔지니어 Claus Scholz가 발명한 가사로봇을 다루고 있는데, 이 로봇은 가사 일부터 방사능 물질 처리 및 화재 진압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http://blog.modernmechanix.com



학계가 과학소설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마지막 이유는 더 이상 과학이 특정인들(과학자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아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은 우리의 경험세계와는 동떨어진 듯 보이는 결론을 내놓기 때문에 전통적 우주관에 입각해 도출된 뉴튼의 법칙보다 훨씬 이해하기 어렵지만, 현대의 독자대중은 이러한 내용을 비교적 알기 쉽게 풀어쓴 교양 에세이집이나 과학소설을 통해 수시로 접한다.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요즘처럼 전문가(과학자) 집단과 일반 대중 간의 정보의 격차가 줄어든 시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더 이상 학문이나 산업의 영역에서만 다뤄지지 않으며 그러한 것들이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는 다양한 영향과 파급효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과학기술의 영향과 미래를 사색하다

과학은 이제 현대인들의 실생활과 떼어놓을래야 떼어 놓을 수 없을 만치 밀착되어 있다. 별의별 가정용 전자기기들이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주부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페미니즘을 꿈꿀 여력을 갖추기가 얼마나 용이했을까? 충청권에서 서울까지 통근이 가능하게 한 고속전철이 단지 과학기술의 쾌거로 끝나지 않고 얼토당토않게도 충청권의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러한 예들은 하나같이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긴밀한가를 새삼 깨우쳐 준다.

과학소설은 이 같은 과학의 대중화 풍조를 조장하는데 한 축을 담당하는 문화기제이다. 과학소설은 굳이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과학과 기술이 미쳐온 영향이나 혹은 앞으로 미칠지 모르는 영향에 대해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소설은 이성(과학)의 눈과 감성(문학)의 마음을 한데 엮은, 인류 문명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1) 개인적으로 잭 윌리엄슨은 1970년대를 과학소설 관련 강좌가 가장 활발하게 개설된 황금기로 본다.

2) 라이트 형제가 세계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나는데 성공한 날은 1903년 12월 17일이며,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이 인류 사상 처음으로 달에 발을 내디딘 날은 1969년 7월 21일이다.

3) 잭 윌리엄슨은 전보다 더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이전부터 꿈꿔 온 보다 진보한 기술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건만 정작 우리는 희망보다는 대개 그에 대한 권태나 공포를 더 자주 느낀다고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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