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3,2019

과학동아 30년, 미디어는 변신중

김두희 대표 "과학문화 기업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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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독보적인 월간 과학잡지인 ‘과학동아’가 창간 30년을 맞았다. 과학동아는 1986년 1월 창간호를 발간했고 새해 1월에 맞춰 361호를 펴냈다. 창간 당시 기자들이 발로 뛰어 기사를 쓰는 제대로 된 과학 잡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국내에서 과학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왔다. 지금까지 과학동아 발행부수는 모두 1300만부로 한 줄로 쌓으면 높이가 에베레스트 산의 12배에 이른다고 한다.

과학동아 창간 30주년 기념호. ⓒ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창간 30주년 기념호. ⓒ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가 창간될 당시인 80년대 중반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이언스’ ‘뉴턴’ ‘파퓰라 사이언스 한국어판’ 등 여러 과학 잡지가 발간되어 경쟁했다. 일부 잡지는 자취를 감췄고, 번역 기사로 거의 모든 지면을 채우던 다른 과학잡지들은 90년대를 거치면서 인터넷과 모바일 미디어 시대를 만나 힘을 못쓰는 유명무실한 상태가 됐다.

2000년 동아사이언스로 동아일보사에서 분사

과학동아는 ‘문화주의’를 사시로 내세우는 동아일보가 1986년 창간했다. 80년대 중반은 한국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기였고 종이 미디어의 대표주자인 ‘신문’이 잘 나갈 때라 잡지도 확장세를 타고 있었다. 당시 월간 ‘음악동아’과 월간 ‘멋’(패션잡지)이 함께 창간됐지만 만성적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모두 문을 닫았고 ‘과학동아’만이 명맥을 유지했다.

10년간 적자였던 ‘과학동아’는 1996년 김두희 동아사이언스 대표가 편집장을 맡은 이후 흑자로 돌아섰다. 콘텐츠를 가습기, 정수기의 원리 등 생활과 밀접한 과학으로 확대시키면서 발행부수도 1만2000부에서 두 배 가량 늘었다.

‘과학동아’는 이어 90년대 말 한국경제를 강타한 IMF 외환 위기 때에도 계속 흑자를 내면서 ‘과학 미디어’로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2000년 아예 별도 법인으로 동아일보에서 분사했다. 동아일보 출판국 과학동아부가 ‘동아사이언스’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이 때 동아사이언스는 월간 ‘과학동아’ 발행과 동아일보의 지면의 과학섹션 제작이라는 두 개의 사업을 안고 출발했다.

분사 당시 기자 7명에 총 인원 18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과학기자만 40명에 직원은 107명에 이른다. 동아사이언스의 수익구조는 광고 대 판매 비율이 1대 9로 다른 종이 매체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갔다. 그만큼 정기독자를 중요시했고, 그 비중이 높아 외부 상황의 변화에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 부근 동아사이언스 사옥 옥상에 설치된 과학동아천문대. 200mm 굴절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할 수 있다.  ⓒ 동아사이언스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 부근 동아사이언스 사옥 옥상에 설치된 과학동아천문대. 200mm 굴절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할 수 있다. ⓒ 동아사이언스

2000년대 들어서는 ‘어린이과학동아’(2005년)와 ‘수학동아’(2009년)를 창간해 ‘과학종합미디어’로서 라인업을 완성했다. 잡지가 잘 나갈 때는 매월 15만부가 팔렸다. 과학동아 어린이과학동아 수학동아 그리고 동아사이언스가 발간한 단행본을 합한 발행부수다. 2011년 쯤이었다.

책 안 팔리는 시대, ‘과학문화창조기업’으로 변신

‘과학동아’도 현재 종이 매체가 겪고 있는 위기를 비켜갈 수 없는 상황이다. 책이 안 팔리는 사회적 흐름이 ‘과학동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기존 종이 미디어 사업만으로는 한계 상황에 처한 것이다. 주요 독자층인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고, 스마트폰의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과학동아’는 2012년부터는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이제는 책만 파는 방식이 아니라 ‘과학의 체험과 경험’을 과학문화상품으로 개발해 독자들이 이들을 함께 사도록 하고 있다. 회사의 비전도 ‘종합과학미디어회사’에서 2008년 ‘과학문화창조기업’으로 바꿨다.

캠프나 공모전 등 과학문화사업을 벌이고 옥상에는 과학동아 천문대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영재교육원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했고, 과학실험 교구 쇼핑몰 사업을 펼쳐 이제는 수익을 맞출 수 있는 상태로까지 발전했다. 필자와 독자가 만나는 대화의 자리인 ‘과학동아 카페’나 대형 과학강연회인 ‘사이언스 바캉스’ 같은 체험행사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과학문화 교육 사업은 정기독자에게는 무료로 개방된다.

동아사이언스가 올해 7월 25일 서울대에서 주최한 대형 과학 강연회 '사이언스바캉스'. 이날 청중 500여명이 참가해 일반상대성이론과 첨단과학을 주제로 한 12개의 과학강연을 즐겼다. 사진은 올해 6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재난대응로봇대회에서 우승한 오준호 KAIST 교수가 로봇손을 가져와서 학생들과 악수하는 모습.

동아사이언스가 올해 7월 25일 서울대에서 주최한 대형 과학 강연회 ‘사이언스바캉스’. 이날 청중 500여명이 참가해 일반상대성이론과 첨단과학을 주제로 한 12개의 과학강연을 즐겼다. 사진은 올해 6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재난대응로봇대회에서 우승한 오준호 KAIST 교수가 로봇손을 가져와서 학생들과 악수하는 모습. ⓒ 동아사이언스

동아사이언스만의 방법으로 콘텐츠 혁신도 계속하고 있다. 인터넷으로는 기존 콘텐츠를 사회 현상과 결부해 재해석한 뒤 앱 푸시로 뿌려 독자들을 모은다. 예를 들면 ‘안철수의 사업 능력과 정치 능력’ ‘삼시세끼 어촌편의 낚시 – 도미의 과학’ 등의 콘텐츠에는 기존 과학면 독자와는 전혀 다른 독자들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2014년부터는 매달 모바일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다. 올해 온라인마케팅센터를 신설했고, 소프트웨어융합교육시장에 참여해 아이루프(ILOOP)라는 소프트웨어 교육 전용 앱과 교구도 개발했다.

‘과학동아’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창간호부터 최근호까지 잡지 편집 그대로 모바일과 PC에서 볼 수 있는 d라이브러리(dl.dognascience.com)를 12월말에 오픈할 예정이다.

“과학 이해의 폭을 넓혔다” 과학동아 30년의 소중한 성과

과학저널리즘에는 2가지 측면이 있다. 한 가지는 교육적 기능이고 다음은 일반 저널리즘이 갖고 있는 감시 견제 비판 기능이다. 이것이 과학저널리즘의 두 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교육적 기능으로 과학동아는 일반 대중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김 대표는 “예를 들어 ‘지식보다 네트워크(관계)가 중요하다’는 ‘인간’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해 과학적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것은 과학동아의 30년 역사의 소중한 성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인류를 위해 어떤 연구가 필요한지를 과학기술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에도 기여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감시 견제나 비판에 있어서는 ‘과학기술의 전문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과학동아가 역할을 만족할 만큼 못해 왔다는 것이 김 대표의 자평이었다.

동아사이언스의 사무실 모습 ⓒ 동아사이언스

동아사이언스의 사무실 모습 ⓒ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가 ‘글 쓰는 과학자’를 비롯해 많은 과학전문기자를 키운 것도 그동안의 성과로 꼽을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글 잘 쓰는 젊은 과학자들이 과학동아를 통해 이름 날렸다. KAIST 정재승 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이인식 작가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인류의 기원’ 쓴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교수 등도 포함된다.

과학동아는 과학전문기자의 ‘사관학교’ 역할도 했다. 국내 현직 신문과 방송의 과학담당 기자 가운데 과학동아 출신이 적지 않게 포진하고 있다.

<인터뷰> 김두희 동아사이언스 대표

“이제는 책과 함께 체험을 사게 합니다”

김두희 동아사이언스 대표. ⓒ 동아사이언스

김두희 동아사이언스 대표. ⓒ 동아사이언스

“예전에는 책이었지만 이제는 책이 팔리지 않습니다. 과학 콘텐츠와 함께 오프라인에서는 ‘체험’이나 ‘경험’을 독자들이 사가게끔 사업 방식을 바꿨습니다.”

김두희(58) 동아사이언스 대표. 과학동아 30년의 발자취 속에 그의 역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창간 당시 과학동아의 막내기자로 시작해 10년 뒤 편집장으로 과학동아 편집팀을 이끌었고, 동아사이언스 분사와 함께 대표를 맡아 15년째 회사를 책임지고 있다. 요즘 과제는 미디어 사업을 ‘과학문화창조사업’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30년 동안 지켜온 잡지 판형도 바꾸려고 합니다. 과학동아를 잡지 편집 형태 그대로 모바일과 PC에서 볼 수 있는 ‘d라이브러리’를 12월 말에 오픈할 계획입니다.”

그가 편집장을 맡았을 때 과학동아 부수는 1만2000부에서 2배 가량 뛰어 올랐다. “당시 우리의 경쟁 상대는 다른 과학잡지가 아니라 여성지나 시사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창간 당시에는 첨단과학의 이해에 목표를 두었지만 기사 주제를 생활과학에 맞춰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김 대표는 서울대 공대 토목공학과(76학번)를 나와 소년경향에 입사했다가 1985년 동아일보가 과학동아를 창간할 때 편집팀에 합류했다.

과학동아 창간호 표지 ⓒ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창간호 표지 ⓒ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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