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9,2019

경솔하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는 이유

‘많은 정보’보다 ‘첫인상’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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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사고 뒤 원인조사를 하면 십중팔구 ‘허술한 안전점검’이 도마에 오른다. 법에 따라 정기적으로 점검을 함에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해 ‘이상 없음’으로 넘어가다 보니 일이 터진다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매뉴얼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코멘트가 나온다. 안전점검처럼 반복적인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에 띄는 몇 가지만 확인한 뒤 판단을 내리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 안전점검을 할 때는 사항별로 체크를 하게 돼 있지만, 나머지는 보지도 않고 ‘○’라고 표시한다.

그런데 안전점검처럼 중요한 일에 이처럼 경솔한 판단을 내리는 건 사람의 뿌리 깊은 성향이다.

즉 우리는 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서둘러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서둘러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 Pixabay

우리는 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서둘러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 Pixabay

첫인상이 판단 좌우해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작 사람들은 이런 경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는 자신을 실제보다 신중한 사람으로 믿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된 첫 번째 실험은 일련의 그림을 보고 선호도를 판단하는 시점에 관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먼저 실험 참가자들에게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 40점의 작은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후 ‘이 그림들을 순서대로 보면서, 어느 시점에서 해당 스타일 그림에 대한 선호도(‘좋다’ 또는 ‘싫다’)를 결정할 것인지’를 예측하게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작품 16점은 봐야 선호도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 모니터에 한 작품씩 띄워 보여주는 실험을 하자, 사람들이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그림 4점만으로 충분했다.

두 번째는 시식 실험이다. 즉 개발 중인 주스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는데, 한 번에 15ml만큼의 분량만을 맛볼 수 있다. 이는 소주 3분의 1잔 정도의 양이다.

여기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실험 참가자들은 ‘평균 3.6번은 맛을 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식을 하자 1.5번 만에 좋다거나 싫다는 판단을 내렸다.

‘데이트 상대자를 평생의 반려자로 할지 판단하는데 걸리는 기간’에 대한 예측도 실제와 차이가 난다.

연구자들이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를 묻자 평균 210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1년이 넘어야 한다”는 답변도 39%나 됐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제 상황을 묻자, 이 기간은 평균 173일에 불과했다. 1년이 넘어서 결심한 경우는 18%에 그쳤다.

사람들이 데이트 상대자를 결혼 상대로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얼마나 될까? 연구자들이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를 묻자 평균 210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제 상황을 묻자, 이 기간은 평균 173일에 불과했다. ⓒ Pixabay

사람들이 현재 데이트하는 사람을 결혼 상대로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연구자들이 미혼인 사람을 대상으로 이를 묻자 평균 210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기혼자를 대상으로 실제 상황을 묻자, 이 기간은 평균 173일에 불과했다. ⓒ Pixabay

이처럼 사람들이 정보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 경솔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는 건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이런 신속함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나치게 신중할 경우 먹이를 놓치거나 맹수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더 많은 정보를 분석하더라도, 처음 판단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 많이 모아봐야 활용 안 해

연구자들은 이처럼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을 실제보다 많게 예상한 결과’가 일상생활에서 손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미국 상원의원 후보 두 사람의 사진을 본 뒤 당선자를 추측하는 실험이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를 다섯 그룹으로 임의로 나눠 각각 1초, 2초, 3초, 4초, 5초 동안 사진을 본 뒤 판단하게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사진 20쌍을 본 뒤 내린 결정에서 제대로 맞춘 경우는 14.66회에서 15.05회 사이로 사진을 보는 시간과 큰 연관이 없었다.

연구자들은 다음으로 참가자들에게 ‘맞춘 건수에 비례해 사례금을 주되, 사진을 보는 시간에 따라 비용을 공제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즉 1초면 무료지만 2초는 20%, 3초는 30%, 4초는 40%, 5초는 50%를 공제한다는 것이다.

앞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차피 1초 이내의 첫인상으로 판단을 내림에도 불구하고, 참가자의 60%가 2초 이상의 조건을 택했다.

이는 ‘오래 보면 맞출 확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한 결과다. 물론 정답률은 차이가 없었고 결국 가져가는 돈만 줄었다.

첫인상이 판단을 좌우하는 경향은 구직 상황에서도 유효하다. A4지 세 장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경우, 첫 페이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나머지는 적당히 채우는 게 균형을 맞춰 완성도 높은 소개서를 쓰는 것보다 합격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이다.  ⓒ Pixabay

첫인상이 판단을 좌우하는 경향은 구직 상황에서도 유효하다. A4지 세 장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경우, 첫 페이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나머지는 적당히 채우는 게 균형을 맞춰 완성도 높은 소개서를 쓰는 것보다 합격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이다. ⓒ Pixabay

구직 상황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구직자들은 면접관이 자기소개서의 정보를 충분히 활용한다고 믿기에, 글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넣으려 한다.

그런데 이 역시 결과적으로는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정해진 분량의 소개서를 쓸 때 구직자는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해 작성하지만, 면접관은 앞부분을 어느 정도 읽고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A4지 세 장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경우, 첫 페이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나머지는 적당히 채우는 게 균형을 맞춰 완성도 높은 소개서를 쓰는 것보다 합격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심사숙고한다고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활용하지도 않을 정보를 모으는 데 지나친 비용을 지불한다”며 오늘날 정보과잉시대의 역설을 언급했다.

물론 안전점검처럼 ‘정확한 판단을 위해 많은 정보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행동이 이런 경향에 빠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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