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겨울철, 비타민D가 결핍되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05

며칠 전 입춘도 지나가면서 올 겨울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내일 영하 10도에 가까운 기습 추위라고 한다. 겨울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1월보다도 2월이 더 시간이 안 간다. 하루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조급함 때문일까.    

겨울은 추위도 추위지만 몸이 햇볕을 덜 쫴 비타민D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몸에서 비타민D를 만들려면 햇빛을 쪼여야 하는데 낮에도 해가 약할 뿐더러 그나마 몸이 중무장해 햇빛이 직접 닿는 부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에는 비타민D가 별로 들어있지 않다.

요즘은 커다란 유리가 있는 건물이 많아 안에서 햇빛을 쬐면 될 것 같지만 체내 비타민D 합성에 필요한 빛인 자외선B(파장 270~300nm)는 거의 차단되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다. 사실 거의 실내에서 생활하거나 얼굴이 탈까봐 자외선차단제를 습관적으로 바르는 사람들은 봄이 돼도 비타민D 결핍이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SFP(자외선차단지수)가 15만 돼도 자외선의 98%가 차단된다.

그래서인지 비타민D 결핍을 경고하는 뉴스가 끊임없이 나온다. 최근 진행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90%가 비타민D 결핍이라고 한다. 비타민D 하면 칼슘과 뼈가 떠오를 정도로 비타민D 결핍의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칼슘 항상성이 무너져 뼈가 부실해지는 것이다. 못 먹던 시절 아기들이 많이 걸리던 구루병이 고전적인 예다. 요즘은 여성의 골다공증의 주원인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 비타민D 결핍이 뼈에만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다. 만성피로에서 면역력 저하와 암 발병 위험성 증가, 우울증, 인지력 저하, 비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사실 비타민D 결핍은 지구촌의 문제로 특히 고위도에 사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심각하다. 피부색이 짙어 강한 햇빛이 필요한데(천연 자외선차단제인 멜라닌 색소가 대부분을 흡수하므로) 고위도에서는 가을 겨울이 있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몸에서 비타민D를 만들어 내려면 햇빛을 쪼여야 한다. ⓒ ScienceTimes

몸에서 비타민D를 만들어 내려면 햇빛을 쪼여야 한다. ⓒ ScienceTimes

단순한 중간 대사물 아냐

학술지 ‘셀 화학생물학’ 2월 16일자(온라인에 미리 공개)에는 비타민D가 체내 지질 항상성 유지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을 밝힌 논문이 실린다.

즉 비타민D의 중간 대사물인 칼시페디올 (calcifediol)이 지질 합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이 파괴되도록 유도해 지질 분자가 만들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즉 비타민D가 결핍될 경우 이 반응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지질 관련 대사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비타민D는 우리 몸에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비타민이 아니라 호르몬이다. 즉 우리 몸에 풍부한 7-하이드로콜레스테롤이 피부에서 자외선의 작용으로 비타민D로 바뀐다. 그런데 비타민D 자체는 호르몬 활성이 없다.

비타민D는 간에서 칼시페디올로 바뀌고 칼시페디올은 신장에서 칼시트리올(calcitriol)로 바뀐다. 즉 비타민D는 두 단계를 거쳐 활성  호르몬으로 바뀌어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칼시페디올은 혈관을 순환하는 중간 대사물로 그 자체는 기능이 없다고 여겨져 왔다.

음식으로 섭취하거나 햇빛을 쬘 때 피부에서 만들어진 비타민D(왼쪽)는 간에서 칼시페디올(오른쪽)로 바뀐다. 칼시페디올은 신장에서 활성이 있는 호르몬인 칼시트리올로 바뀐다. 최근 칼시페디올이 단순히 중간 대사물이 아니라 지질 항상성 조절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음식으로 섭취하거나 햇빛을 쬘 때 피부에서 만들어진 비타민D(왼쪽)는 간에서 칼시페디올(오른쪽)로 바뀐다. 칼시페디올은 신장에서 활성이 있는 호르몬인 칼시트리올로 바뀐다. 최근 칼시페디올이 단순히 중간 대사물이 아니라 지질 항상성 조절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일본 교토대의 연구자들은 지질 가운데 스테롤(콜레스테롤이 대표적인 분자다)의 체내 항상성을 조절하는데 관여하는 ‘SREBP-SCAP복합체’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히다 칼시페디올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SREBP-SCAP복합체는 세포내에 분포하는 망상 구조물인 소포체에 박혀 있다.

세포내 스테롤 농도가 낮아지면 복합체에서 SREBP 조각이 떨어진 뒤 세포핵으로 들어가 스테롤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한다. 그 결과 스테롤이 만들어져 농도가 올라간다.

한편 스테롤 농도가 높을 경우 SREBP-SCAP복합체가 안정화돼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음의 피드백(반응 산물(이 경우 스테롤)이 자신의 합성을 억제해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은 생체에서 널리 관찰되는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비타민D의 대사물인 칼시페디올이 SREBP-SCAP복합체의 활성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즉 칼시페디올 분자가 SCAP단백질에 달라붙으면 단백질의 구조가 불안정해져 중간이 끊어진다. 세포내에는 불량 단백질을 처리하는 수거반이 있는데, 잘린 SCAP단백질을 감지하면 바로 해체작업에 들어간다.

홀로 남겨진 SREBP 단백질도 구조가 불안정해져 결국 파괴된다. 그 결과 스테롤 합성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즉 세포는 스테롤 합성을 이중으로 조절하는 셈이다. 따라서 비타민D 결핍으로 칼시페디올이 부족해지면 이런 조절의 밸런스가 깨지고 그 결과 스테롤 항상성도 교란돼 암이나 대사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칼시페디올이 대사질환과 관련돼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즉 비알코올 지방간 질환의 경우 칼시페디올 농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 지난 2013년에는 비알코올지방간 환자의 게놈에서 칼시페디올 운반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럼에도 비타민D의 중간 대사물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칼시페디올의 또 다른 얼굴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튼 우리 몸의 전반적인 건강을 유지하려면 비타민D가 결핍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점점 확실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 몸에서 비타민D를 합성하는데 많은 햇빛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5~30분 얼굴과 팔, 다리를 햇빛에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비타민D는 체내 반감기가 20여일이나 되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날이 좀 풀리면 거실 창을 활짝 열고 제대로 ‘광합성’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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