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1,2019

거짓말하는 버릇은 뇌 손상 때문?

‘리플리 증후군’의 원인 발견돼

FacebookTwitter

▲ 리플리 증후군 환자롤 분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 알랭 들롱 ⓒIMDB.com

4월의 첫 날은 거짓말을 해도 용서를 받는 ‘만우절’이다. 악의가 없는 ‘하얀 거짓말(white lie)’로 생활에 재미를 주는 날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허위 신고나 의도적인 속임수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검은 거짓말(black lie)’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처럼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거짓말을 정신의학 용어로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라 부른다. 웃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중대 범죄가 될 수도 있는 거짓말을 가리킨다.

악의적 거짓말과 허풍 일삼는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1955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쓴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유래되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사실로 착각하고 각종 거짓말과 허황된 언행을 상습적으로 되풀이하는 행동을 일컫는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보다는 영화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프랑스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 주연으로 1960년에 만들어진 영화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다.

주인공 리플리가 신분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타인 행세를 하고 거짓말을 일삼다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 채 환상 속에서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1999년 ‘리플리’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후 주인공과 유사한 인격장애를 ‘리플리 병’ 또는 ‘리플리 증후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회적 성취욕이 큰 개인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통로가 봉쇄되어 불만에 쌓이는 경우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플리 증후군과 유사한 ‘작화증’

리플리 증후군과 같은 행태를 정식 용어로는 ‘작화증’ 또는 ‘말짓기증’이라 한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허구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자신이 만든 거짓말을 스스로는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거짓말과 구별된다.

▲ 작화증의 원인으로 전뇌 기저부의 연결망 손상이 꼽히고 있다. ⓒmemorylossonline

실제로는 없었던 일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이 증상은 뇌 질환을 앓았던 환자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을 위장하거나 왜곡할 때도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적인 거짓말보다 더 많은 피해를 준다.

작화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학에서는 뇌의 전두엽 중 안와전두엽 부분의 피질과 전뇌기저부의 연결 손상이 있을 때 작화증이 쉽게 일어난다고 본다. 저장된 정보의 시간적인 순서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사고로 이마를 다치거나 뇌동맥류가 파열될 때도 이 증상이 발생한다.

작화증은 의식이 뚜렷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또는 오늘이 며칠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때로는 꿈을 실제 경험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초기 병리학에서는 작화증을 기억에 결함이 있는 인격장애의 전조현상으로 보기도 했다.

작화증은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의 일종

거짓으로 실제 기억을 대체하는 작화증은 넓은 의미에서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Wernike Korsakoff Syndrorm)’으로도 불린다. 기억력이 병적으로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기억력 장애, 방향상실, 무의식적인 거짓말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특징이 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이른바 ‘필름이 끊기는’ 단기 알코올성 기억장애(alcoholic memory disorder)가 발생한다. 기억을 만드는 뇌의 해마 부위가 손상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비해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은 필름이 끊기는 현상이 지속적이고도 장기간으로 이어진다. 평소에도 기억이 오락가락 하는 증상을 보이며 간뇌의 시상 부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은 알코올성 기억장애 증상의 일종이다. ⓒminddisorders

그런데 최근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의 연구진은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의 원인도 간뇌의 시상이 아닌 해마 부위에서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신경분야 학술지 ‘뉴롤러지(Neurology)’에 논문이 실리면서 정신의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연구진은 자기공명영상(MRI) 기술을 활용해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 5명, 알츠하이머병 환자 20명, 건강한 일반인 36명 등 총 61명의 뇌를 촬영해 비교했다. 그 결과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속 해마의 크기가 정상인에 비해 현저히 감소한 것이 확인되었다.

해마는 기억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해마의 크기가 줄어들면 기억에 장애가 생길 위험도 커진다. 이번 연구결과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는 알츠하이머병과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이 기억 손상의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증후군은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비타민 B1이 결핍되면서 발병한다. 비타민 B1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는 뇌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식욕 부진이나 기타 이유로 인해 영양분이 부족할 경우 발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비타민 B1을 포함한 비타민 B 계통의 영양분을 보충하는 치료법을 권유한다. 발병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시도하면 부분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