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3,2019

거미를 좀비로 만드는 벌이 있다?

엑디손 호르몬 분비하여 탈피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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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zombie)는 중앙아메리카의 설화에서 유래된 존재다.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로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신세계는 주술사의 지배하에 있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행동을 하는 개체를 가리킬 때 ‘좀비 같다’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기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존재이다 보니 영화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 좀비가 등장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다만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곤충이라는 점이다. (관련 기사 링크)

기생벌 애벌레는 호르몬을 통해 거미를 좀비로 만든 뒤, 이를 숙주로 삼아 탄생하고 성장한다 Ⓒ 스미스소니언

기생벌 애벌레는 호르몬을 통해 거미를 좀비로 만든 뒤, 이를 숙주로 삼아 탄생하고 성장한다 Ⓒ 스미스소니언

기생벌, 절지동물에 기생해 생존

미국의 스미스소니언열대연구소(STRI) 소속 연구진은 오래전부터 거미 같은 절지동물에 알을 낳는 ‘기생벌(parasitic wasps)’에 대해 연구해 왔다. 이 같은 명칭을 갖게 된 이유는 거미에 알을 낳은 후, 알에서 깨어난 벌들이 거미의 몸을 먹이로 하는 등, 철저하게 거미에 기생해서만 생존하는 벌이기 때문이다.

기생벌을 연구해 온 이유에 대해 STRI의 연구원인 ‘윌리엄 에버하드(William Eberhard)’ 박사는 “기생벌이 거미의 뇌나 신경계에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숙주인 거미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라고 밝혔다.

STRI의 발표에 의하면 기생벌 애벌레는 거미의 등에서 부화한 후 거미의 행동을 조종하여 누에고치를 만들도록 한 다음, 그 안으로 침투하여 갉아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거미는 누에고치가 된 후에도 살아 있지만,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좀비 거미가 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에버하드 박사는 “기생벌의 애벌레는 누에고치가 된 거미를 먹은 후 새로운 기생벌이 되어 빠져나온다”라고 밝히며 “정말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기생벌 애벌레가 단 한 번도 거미의 뇌까지 접근하지 않고 숙주의 행동을 조종한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라고 적잖게 놀랐지만, 기생벌 애벌레를 집중 분석한 결과 그 비결이 호르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라고 덧붙였다.

기생벌과 거미 간 기생 과정의 라이프사이클 Ⓒ uca.ca

기생벌과 거미 간 기생 과정의 라이프사이클 Ⓒ uca.ca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생벌 애벌레는 절지동물이 탈피할 때 생성하는 호르몬인 엑디손(ecdysone)이라는 호르몬 농도를 높여 누에고치로 변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아직 탈피 시기가 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탈피할 시기가 된 것처럼 거미를 속인다는 것이다.

거미 역시 절지동물이기 때문에 탈피를 통해 성장하는데, 탈피 후에는 외골격이 약해 위험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거미줄로 자신을 보호한다. 기생벌 애벌레는 이를 이용해서 안전한 고치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한다.

에버하드 박사는 “그렇다고 거미가 탈피하는 데 있어 오직 호르몬만이 작용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일이어서 현재는 다른 원인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개미를 좀비로 만드는 곰팡이도 존재

기생벌이 거미를 좀비로 만드는 과정을 STRI 연구진이 분석하고 있다면, 미 펜실베니아주립대의 연구진은 곰팡이가 개미를 좀비로 만드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미 펜실베니아주립대의 ‘데이비드 휴즈(David Hughes)’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태국 남부의 열대우림을 탐사하던 중, 일정한 수의 개미들이 정상적으로 걷지를 못하고 휘청거리며 기어 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연구진의 관심을 끈 것은 개미들이 그냥 땅을 기어 다니는 동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줄기에 올라간 뒤 한참을 꼼짝 않고 매달린 채 있다가 그대로 죽어버리는 기이한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 휴즈 교수는 “죽은 개미들은 머리나 몸통 옆으로 가시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어서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라고 밝히며 “그런 모습들이 처음에는 동충하초(夏草冬蟲)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과정을 살펴보니 동충하초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동충하초가 되는 곤충들은 버섯 포자가 신체 곳곳으로 퍼져나가 모습이 흉측하게 변하기 전까지는 원래의 습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행동을 한다. 하지만, 태국에서 발견한 개미들은 모습이 변하기 전부터 기존 습성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이에 연구진은 죽은 개미들을 수거하여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하는 원인을 조사했고, 그 결과 ‘오피오코르디셉스(Ophiocordyceps)’라는 곰팡이에 의해 이상 행동을 벌인다는 점을 밝혀냈다.

좀비 개미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곰팡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 psu.edu

좀비 개미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곰팡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 psu.edu

휴즈 교수는 “평소 습성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개미들에게 ‘좀비 개미’라는 이름을 붙였다”라고 소개하며 “숨구멍을 통해 오피오코르디셉스 곰팡이의 포자를 들이마시는 순간, 개미는 서서히 좀비 개미로 변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휴즈 교수와 연구진의 관심은 과연 곰팡이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개미의 행동력을 통제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이에 스위스 바젤대와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좀비 개미가 되는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 3D 컴퓨터 모형 및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행동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뇌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연구진이 3D 및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실험한 결과, 곰팡이는 뇌가 아닌 다리를 공략하여 개미를 노예처럼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 책임자인 바젤대의 마리델 프레데릭슨(Maridel Fredericksen) 박사는 “실험에 참여하기 전만 해도 좀비 개미를 만드는 것은 곰팡이가 개미의 뇌를 공략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라고 언급하며 “하지만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지나갔는데, 그 덕분에 뇌가 아닌 다리를 공략해도 개미를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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