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4,2018

거대 행성표면에 사는 외계인

SF관광가이드/ 외계인신화(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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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수퍼지구형 행성에 거주하는 지적 생물을 다룬 이야기들 가운데 과학소설 역사에서 고전으로 남을만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미국 작가 할 클레멘트의 장편 ‘중력의 임무’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장편소설의 무대는 목성처럼 지독한 조건은 아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지역이 고중력이어서 인간 우주비행사가 착륙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메스클린이다.

이 행성에는 지적인 문명을 누리는 토착생물들이 있다. 메스클린 주민들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진화했는지부터 간략하게 살펴보자. 연주 시차 덕분에 태양과의 거리가 알려진 첫 번째 별로 ‘백조자리 61′이란 쌍성이 있다. 이 두개의 태양은 중력 균형을 이루는 무게 중심점을 공전하고 있는데, 그 중심점에는 목성보다 질량이 16배에 지름이 3배인 거대 행성이 있다. 밝기는 26등급에 불과해서 천체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다. 다만 두 태양의 불규칙한 궤도를 통해 위치를 유추할 뿐이다. 여기까지는 천문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단, 행성의 지름은 추정치다.) 할 클레멘트는 이러한 전제에 입각해서 나름의 가정을 추가하여 ‘메스클린’이라 이름 붙인 이 행성의 기본환경과 그곳에서 살 법한 고등생명체까지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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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클레멘트의 장편 ‘중력의 임무’의 무대가 되는 메스클린 행성은 어찌나 빨리 자전하는지 과도한 원심력으로 인해 행성이 납작하게 짜부러진 듯 생겼다. 위 그림은 ‘중력의 임무’를 포함하여 메스클린 행성을 무대로 한 장단편을 한데 모아 다시 펴낸 선집의 표지다. (copyright: Stephan Martiniere)

메스클린 행성은 납작하게 짜부러진 공 모양이라 자전속도가 엄청나다. 하루길이(자전 1회 경과시간)가 고작 17.75분인 것이다. 반면 적도 지름은 무려 7만6800km에 달한다. 그렇다보니 중력은 적도 지방은 지구의 3배, 극지방은 무려 700배에 달한다. 지표기온은 섭씨 영하 170도이고 산소는 거의 없이 수소로만 뒤덮인, 인간에게는 그야말로 가혹한 환경이다. (적도지방의 비교적 가벼운 중력은 지구인이 이 행성의 어디든 착륙할만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한 작가의 배려이다.)

그러나 클레멘트는 인간 위주의 편견에서 벗어나 이러한 조건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고등생명체를 상상한다. 메스클린인들은 평균 몸길이가 38cm에 몸통 지름이 약 746mm인 환형동물로 각 마디마다 다리가 두개씩 달려있다. 그들의 몸을 이루는 주성분은 메탄이며 수소를 호흡하고 산다. 메스클린인들의 지적 능력은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지만 문명발달 단계로 보면 지리상의 발견이 막 진행 중이던 중세유럽을 연상케 한다.

인류에게는 이들이 지극히 낯선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이 행성 궤도 상공에 머무르고 있는 자신들과 함께 협동해가며 탐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너무나 이질적인 상대이지만 이처럼 서로가 손을 잡을 수 있는 동기는 경제적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비즈니스 접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외계인 침공 이야기와 달리 ‘중력의 임무’는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윈윈 하는 성숙한 레벨의 최초의 접촉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인류와 메스클린인의 접촉의 성격에 관한 상세한 고찰은 뒤에 가서 외계인과의 접촉유형을 다룰 때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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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클린 행성의 지적 존재는 인간보다 다소 체구가 작은 환형동물처럼 생겼다. 행성을 구성하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몸을 구성하는 주물질도 호흡하는 대기도 다르다. 더구나 엄청난 중력이 지표를 내리누른다. 따라서 이 행성에서 인간은 이 외계인들의 협조가 없이는 정교한 지상 작업을 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양자의 비즈니스 관계가 싹튼다. 인간이 그곳에 내려가 자유자재로 활보할 수 없으니 식민지 개척을 하며 외계토착민을 몰아내거나 하는 식의 제국주의적 착취관계는 성립할 여지 자체가 원천 차단된다. ‘중력의 임무’에서는 서로가 아쉬운 상태이기에 (한쪽은 지상작업을, 한쪽은 발달된 문명의 지식을 원한다.) 비교적 공정무역이 성립한다는 점에서 과학소설 역사상 뻔한 정형에서 벗어난 의미있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copyright: Tony Gleeson)

이제까지 예로 든 거대 행성의 강한 중력과 대기압 따위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처럼 보이게 만들 만큼 훨씬 더 극한의 환경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있다! 식어버린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의 지표가 바로 그러한 후보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곳들에서도 생명, 그것도 지적인 생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시선으로 봐도 과감하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이처럼 파격적 아이디어를 떠올린 최초의 작가는 영국작가 올라프 스태플든(Olaf Stapledon)이다. 그의 장편 ‘별의 창조자 (Star Maker; 1937년)’에는 훗날 로벗 L. 포워드(Robert L. Forward)의 하드SF ‘용의 알 (Dragon’s Egg; 1980년)’에 영감을 주었을 법한 선구적인 통찰이 번뜩이다. 일찌감치 40여년이나 앞서 스태플든은 죽은 태양의 표면에 사는 지적인 생명을 다루었던 것이다. 소의 위(胃)처럼 생긴 이 생명체에 관한 작가의 아래와 같은 묘사를 읽고 있노라면 포워드가 서술한 중성자별 표면에 사는 칠라 종족의 특징과 많은 부분이 중첩됨을 알 수 있다.

(죽은 태양의) 강한 중력에 적응한 대형인류는 각각이 살아있는 커다란 담요였다. 그 몸이 표면 아래에는 입 역할을 하는 다리들이 무수히 많았다. 폭이 2m, 길이가 6m나 되는 다리들이 두께가 3cm도 채 되지 않는 몸통을 지탱한다. 몸통 앞쪽 끝에 있는 팔들은 많은 다리들 위에 얹혀 있는 모습이었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몸통의 윗면에 벌집 모양으로 뚫린 구멍들은 숨구멍과 다양한 감각기관들이었다. 얄팍한 몸통 속에는 신진대사 기관과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뇌가 있었다. 소의 위처럼 생긴 이 인류는 애벌레나 곤충으로 이뤄진 기존의 복합생명체와 비교하면 정서적 통합이 훨씬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 ‘별의 창조자’  , 261쪽

(‘별의 창조자’의 국내번역판 제목은 ‘스타메이커’로 영문을 소리 나는 그대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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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임무’에서 메스클린 행성은 중력이 가장 약한 곳도 지구의 3배나 되기 때문에 이곳에 착륙한 인간은 움직이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인간 우주비행사는 가만히 누워 메스클린인들이 자신을 이동시켜주길 기다려야 한다. 역사상 최초의 우주판 협동작업이랄까. (copyright: Ed Emshw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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