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개는 정말 사람보다 후각이 뛰어날까?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40

냄새에 민감한 사람을 흔히 ‘개코’라고 부른다. 개의 후각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인데 세관에서 짐 사이를 누비며 다니는 개가 멈춰 주둥이를 처박고 꼬리를 흔들어대면 십중팔구 그 짐가방에는 코카인 같은 마약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도대체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보면서도 미스터리하다. 실제로 개는 냄새 분자 몇 개 수준의 희박한 농도에서도 그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사람은 적어도 후각만큼은 둔한 동물이다.

미국 예일대 의대의 신경생물학자 고든 셰퍼드 교수는 이런 상식을 부인하는 책을 2011년 출간했다. 책 제목은 ‘Neurogastronomy’로 굳이 번역하자면 ‘신경미식학’ 정도가 될 것이다. 셰퍼드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가 미각이라고 부르는 감각의 실체를 탐구하고 있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발상이 이곳저곳에서 느껴진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맛을 느끼는 데 미각보다는 오히려 후각의 기여도가 더 크고 맛을 느낄 때 후각은 우리가 주변의 냄새를 맡을 때 후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

들숨 냄새, 날숨 냄새

책 2장의 제목은 ‘개와 사람, 날숨 냄새’로 개가 사람보다 후각이 뛰어나다는 상식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저자에 따르면 냄새는 그 경로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하나는 들숨 냄새(orthonasal smell)이고 다른 하나는 날숨 냄새(retronasal smell)다. 사실 이건 필자가 고민하다 만든 번역어로 아직은 공식 번역어는 없는 것 같다. 이 용어 자체가 나온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쉴 때 코 앞쪽(orthonasal)인 콧구멍으로 공기와 함께 냄새 분자가 함께 들어오고 이때 냄새를 지각하므로 ‘orthonasal smell’을 약간 의역해서 ‘들숨 냄새’라고 옮겨봤고, 음식물이 입 안에 들어있는 상태에서 숨을 내쉴 때 비인두(nasopharynx)를 통해, 즉 코 뒤쪽에서(retronasal) 구강의 냄새분자가 날숨에 실려 비강으로 들어가면서 냄새를 느끼는 ‘retronasal smell’을 역시 의역해 ‘날숨 냄새’라고 옮긴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의 후각이 ‘개코’인 건 들숨 냄새일 때에 국한된 것이라고 한다. 개처럼 다리가 넷인 동물은 머리가 땅에 가깝고 따라서 시각보다는 후각이 외부정보를 받아들이는 주 감각이다. 따라서 머리의 해부학적 구조도 들숨 냄새를 잘 맡을 수 있게 최적화돼 있다고. 반면 두 다리로 선 사람은 시야가 넓어지면서 시각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고 외부정보로서 들숨 냄새의 중요성은 떨어졌다. 따라서 얼굴 형태도 주둥이가 없어지고 눈이 앞으로 나오게 됐다.

이와 함께 주목할 변화는 구강과 비강의 구조가 바뀌면서 숨을 내쉴 때 구강 속의 공기가 비강으로 넘어가기가 훨씬 쉬어졌다는 것. 그 결과 음식을 먹을 때 입 속 음식의 냄새가 비강에 있는 후각상피를 통해 후각신경으로 전달됐고 이 정보는 미각신경을 통한 맛의 정보와 통합돼 음식의 맛, 정확히는 ‘풍미(flavour)’를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잘 느끼게 됐다고. 이런 진화의 배경에는 100여만 년 전 불의 발견과 요리의 발명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사람의 후각은 외부 냄새정보보다 입속 음식정보를 파악하는데 더 최적화되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들숨 냄새는 개가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날지 모르지만 날숨 냄새는 사람이 개보다 낫다는 말이다.

▲ 개와 사람의 후각 구조와 메커니즘 비교. 개는 들숨 냄새, 즉 외부정보로서의 냄새를 잘 맡게 최적화된 구조인 반면 사람은 날숨 냄새, 즉 음식정보로서의 냄새를 잘 맡게 진화한 구조다. 개는 1초에 6~8회까지 킁킁거릴 수 있는 반면 사람은 4회를 넘지 못한다. 반면 사람은 입안에 음식을 넣은 상태로 혀를 자유로이 움직여 냄새분자가 잘 풍겨나게 할 수 있지만 개는 그럴 수 없다. 고든 셰퍼드의 책 ‘Neurogastronomy’(2011)의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그렸다. ⓒ강석기


음식 속 꽃향기는 선호도 떨어뜨려

맛에 대한 후각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갈수록 공감을 얻고 있는데, 최근에는 음식에 관련된 냄새 지각의 차이가 음식의 맛에 대해 미치는 영향도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생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8월 1일자 온라인판에는 베타-아이오논(β-ionone)이라는 냄새분자가 맛의 지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한 편 실렸다.

베타-아이오논은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분자로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의 향료 성분으로도 즐겨 쓰이지만 토마토나 포도 같은 과일 향기의 성분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식물식품연구소 리처드 뉴컴 박사팀은 특정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 사람은 베타-아이오논의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OR5A1이라는 냄새수용체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 수용체 단백질을 이루는 183번째 아미노산이 아스파트산에서 아스파라긴으로 바뀔 경우 단백질 구조가 변형되면서 베타-아이오논 분자를 인식하지 못해 냄새를 제대로 느끼기 못한다는 것. 한 냄새분자가 특정한 냄새수용체와 거의 배타적으로(96.3%) 연결돼 있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연구자들은 베타-아이오논 냄새를 잘 맡는 집단과 잘 못 맡는 집단을 대상으로 베타-아이오논의 존재 유무에 따른 선호도를 들숨 냄새 실험과 날숨 냄새 실험을 통해 조사했다. 먼저 들숨 실험의 경우 샴푸나 세제 같은 생활용품에 베타-아이오논이 많이 들어있을수록 이 냄새를 잘 맡는 집단에서는 선호도가 높아졌다. 반면 냄새를 잘 못 맡는 집단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사과주스에 베타-아이오논이 미치는 영향, 즉 날숨 실험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베타-아이오논의 냄새를 잘 맡는 집단에서는 베타-아이오논이 있을 때 오히려 선호도가 떨어졌다. 반면 잘 못 맡는 집단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즉 은은한 꽃향기라도 맥락에 따라서, 즉 냄새로만 인식할 때(들숨 냄새)는 유쾌하게 느껴지지만 맛으로 인식될 때(날숨 냄새)는 오히려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쥐나 개 같은 포유류의 경우 냄새수용체 유전자가 1000여개 있지만 사람은 3분의 2가 퇴화하고 300여개만이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람마다 변이가 제각각이어서 똑 같은 대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냄새는 다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베타-아이오논과 냄새수용체 유전자 OR5A1의 변이의 관계와 이에 따른 지각의 차이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중국식당에 가면 내가 시켜먹는 요리는 몇 개 안 되는데 메뉴는 수십 가지다. 속으로 ‘저런 메뉴도 시키는 사람이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취향의 다양성은 어쩌면 냄새수용체 유전자의 다양성으로 똑 같은 음식을 먹을 때도 날숨 냄새가 저마다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후천적으로 갖게 된 것이라고 여기는 취향도 어쩌면 상당 부분 유전자에 각인돼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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