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8,2019

가짜로 위장한 가짜유전자 있다!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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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당시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 컬럼비아대 리처드 액설 교수팀에서 일하던 린다 벅은 후각수용체 유전자군을 발견했다. 유전자군(gene family)이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의 무리다.

벅 박사가 찾은 후각수용체, 즉 냄새분자가 결합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군을 이루는 유전자는 무려 1000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추정하고 있던 사람의 유전자 3~4만 개의 3%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는 후각이 동물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 감각인가를 새삼 일깨운 발견이었고 두 사람은 그 업적으로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쥐나 개 같은 네발짐승의 경우 유전자 대부분이 기능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은 불과 3분의 1만(그래도 350여 개나 된다!)이 실제 기능을 하는 단백질 즉 후각수용체를 만들고, 나머지 3분의 2는 퇴화돼 기능이 없는 위(僞)유전자(pseudogene)라는 점이다.

직립을 하면서 후각정보보다 시각정보가 더 중요해지면서 인류는 후각이 퇴화됐다는 진화론적 설명과 잘 맞는 결과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전자의 2% 가까이(인간 게놈 해독 결과 유전자 수가 2만1000여 개로 확 줄었다)가 후각에 관여한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중간 종결신호 무시하고 끝까지 번역

학술지 ‘네이처’ 11월 3일자에는 사람에서 기능을 하는 후각유전자가 더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스위스 로잔대 연구자들은 초파리(Drosophila속(屬))의 한 종인 드로소필라 세셸리아(D. sechellia)의 후각수용체 위유전자가 알고 보니 기능을 하는 유전자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위-위유전자(pseudo-pseudogene), 즉 가짜 가짜유전자라고 불렀다. 참고로 생명과학 연구에 널리 쓰이는 초파리는 노랑초파리(D. melanogaster)다.

인도양 서부의 세이셸 군도의 토착종인 초파리 드로소필라 세셸리아는 잘 익은 노니 열매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살아간다.

인도양 서부의 세이셸 군도의 토착종인 초파리 드로소필라 세셸리아는 잘 익은 노니 열매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살아간다.
ⓒ Prof Jones

보통 초파리는 과일이 발효할 때 나는 시큼한 냄새에 이끌린다. 쓰레기통에 있는 과일껍질에 꼬이는 작은 파리가 바로 초파리다. 노랑초파리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Ir75a라는 유전자가 발현된 후각수용체 단백질이 시큼한 냄새를 지닌 아세트산 분자와 결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인도양 서부의 세이셸 군도의 토착종인 세셸리아는 아세트산 냄새를 맡지 못한다. Ir75a 유전자가 위유전자가 됐기 때문이다.

즉 640번째 염기인 시토신이 티민으로 바뀌면서(C640T) 아미노산 글루타민을 지정하는 코돈(CAA)이 종결코톤(TAA)이 됐기 때문이다. 즉 중간이 잘린 반쪽짜리 단백질이 만들어져 기능을 못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유전자 중간에 생긴 비정상적인 종결코돈을 ‘조기종결코돈’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세셸리아는 노니(Noni)라는 식물의 익은 열매만을 먹고 살기 때문에 아세트산 냄새를 못 맡아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세셸리아는 땀 냄새가 연상되는 프로피온산 냄새는 잘 맡는다. 이게 왜 특이하냐면 노란초파리에서 프로피온산 냄새를 담당하는 후각수용체도 Ir75a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세셸리아에서 이 기능을 하는 후각수용체를 찾다가 후각신경세포에서 온전한 Ir75a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즉 세셸리아에서 프로피온산 냄새를 담당하는 후각수용체도 Ir75a였다. 그렇다면 세셸리아는 왜 아세트산 냄새는 못 맡을까?

두 종의 Ir75a의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한 결과 냄새분자가 달라붙는 걸로 추정되는 부위에서 세 군데가 달랐다. 그 결과 단백질의 구조가 바뀌어 인식할 수 있는 냄새분자의 프로파일이 달라진 것이다. 즉 노랑초파리의 Ir75a는 아세트산과 프로피온산에 반응하고 세셸리아는 프로피온산과 부티르산에 반응한다. 부티르산은 들쩍지근한 다소 불쾌한 냄새가 난다.

흥미롭게도 노니의 열매가 익으면서 부티르산이 연상되는 냄새가 강해진다. 즉 세이셸 군도에 정착한 초파리 세셸리아는 주식이 된 노니의 익은 열매를 잘 찾는 방향으로 Ir75a가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조기종결코돈이 있는 위유전자가 온전한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이에 대해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다만 세셸리아의 Ir75a 유전자처럼, 변이로 조기종결코돈이 된 바로 뒤의 염기가 시토신일 경우 이를 무시하고 번역이 계속 일어난다는 2011년 연구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실제 세셸리아의 Ir75a 유전자에서 이 부분의 시토신을 티민으로 바꿀 경우(TAAC에서 TAAT로) 온전한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셸리아는 노니의 익은 열매 냄새를 잘 맡는 방향으로 후각수용체 Ir75a 유전자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조기종결코돈이 생겼지만 이를 무시하고 온전한 단백질을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이셸 군도에서 채집한 세셸리아 여러 변종에서 공통적으로 640번째 염기가 시토신에서 티민(빨간색 T)으로 바뀌어 조기종결코돈이 됐다.  ⓒ 네이처

세셸리아는 노니의 익은 열매 냄새를 잘 맡는 방향으로 후각수용체 Ir75a 유전자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조기종결코돈이 생겼지만 이를 무시하고 온전한 단백질을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이셸 군도에서 채집한 세셸리아 여러 변종에서 공통적으로 640번째 염기가 시토신에서 티민(빨간색 T)으로 바뀌어 조기종결코돈이 됐다. ⓒ 네이처

위-위유전자 보편적인 현상일 듯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이 세셸리아의 Ir75a 유전자에만 국한된 게 아닐지 모른다고 가정하고 노랑초파리의 후각수용체 유전자군 가운데 위유전자를 같은 방법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Ir75b 유전자가 위유전자로 알려진 RAL707 변종에서 이 유전자가 온전한 단백질을 만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RAL441 변종에서는 Ir31a가 위유전자로 알려져 있는데, 알아본 결과 역시 온전한 단백질을 만들었다. 또 T09와 T29 변종에서는 Or35a가 위유전자로 알려져 있는데, 역시 온전한 단백질을 만들었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 조기종결코돈으로 위유전자로 분류된 유전자들을 전면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사람의 후각수용체 유전자군에서 위(가짜)유전자로 여겨지는 3분의 2 가운데 실제 기능을 하는 가짜 가짜유전자가 꽤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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