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9,2019

가을이 되면 새 백신을 맞는 이유

우리 삶에 큰 영향 끼치는 인플루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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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가을은 어느새 겨울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안 가겠다고 고집 피우는 여름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진을 다 빼고 나니 빨리 비키라며 안달내는 겨울에 밀릴 수 밖에.

이렇게 짧은 가을이 가면 길고 혹독한 겨울이 냉큼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 이번 겨울에도 틀림없이 인플루엔자가 일찍 돌기 시작할 테다. 작년에는 2주나 빨리 돌았단다.

2017~2018년 겨울을 돌이켜보면 12월 1일에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가 발령되었고, 2018년 5월 25일에 해제가 되었다. 일년의 절반이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가 발령된 상태라는 사실이 놀랍다.

어느덧 10월이 오면 연중 행사처럼 인플루엔자 접종이 시작된다. 요 몇 년 동안은 뜸했지만, 조류 인플루엔자나 신종 플루라도 돌면 접종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러면 병의원은 물론이고 보건소까지 접종자들로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1918년 스페인 인플루엔자를 일으킨 바이러스 표본의 전자현미경 사진.  ⓒ 위키백과 자료

1918년 스페인 인플루엔자를 일으킨 바이러스 표본의 전자현미경 사진. ⓒ 위키백과 자료

이렇게 우리는 인플루엔자의 강력한 영향 아래 살고 있다. 인플루엔자라는 이름은 그 자체가 ‘영향’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왔다.

 

인플루엔자 influenza; (이탈리아어) 영향

 

인플루엔자가 언제부터 인류를 괴롭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인 것만은 틀림없다. 중세 의사들은 별의 위치나 추위의 ‘영향’을 받아 이 병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이 병을 influenza 라고 불렀다.

오래된 병이었지만 인류사에 결정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8년 대유행 때였다.

이 인플루엔자는 지금도 ‘스페인 인플루엔자(Spanish flu)’으로 불린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18년에 전세계를 휩쓸어 수 천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렇다면 악명 높은 그 인플루엔자는 스페인에서 시작되었을까? 아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도 인플루엔자가 비껴가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중이라 참전국들은 언론 통제를 하고 있었다.

특히 젊은이들을 공격해 무섭게 퍼지고,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인플루엔자에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실상을 그대로 알리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에 보도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장병들의 40%가 인플루엔자에 걸렸으니 상당한 전력(戰力) 누수가 있었다. 심지어는 신병 모집을 일시 중단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스페인은 참전국가가 아니어서 언론들이 자유롭게 인플루엔자 발병을 보도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 지독한 인플루엔자에 ‘스페인에서 생긴 인플루엔자’라는 딱지가 붙어버렸다. 스페인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누명을 뒤집어쓴 것이다.

인플루엔자 균을 발견한 리하르트 파이퍼(1858~1945).  ⓒ 위키백과 자료

인플루엔자 균을 발견한 리하르트 파이퍼(1858~1945). ⓒ 위키백과 자료

억울한 경우는 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Hemophilus influenzae) 세균이다. 1889~1890년에 인플루엔자가 대유행했을 때 독일 미생물학자 리하르트 파이퍼(Richard Pfeiffer; 1858~1945)는 환자의 목에서 병원균을 분리했고 그 균이 인플루엔자를 일으킨다고 해석했다.

이 균은 실제로 인플루엔자를 앓는 환자들의 목에서 많이 발견되어 파이퍼의 설명이 맞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 균의 이름을 파이퍼균(Pfeiffer’s bacillus) 혹은 인플루엔자균(Bacillus influenzae)으로 불렀다.

하지만 1933년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것은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먼저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면 인플루엔자 균이 기회감염을 일으켰기에 환자들에게서 인플루엔자균이 검출된 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3종류로 확인되어 각각 A, B, C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불렸고, 인플루엔자균은 별 의미 없는 균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B형 인플루엔자균(Hib)은 아이들에게 뇌막염을 일으켜 목숨을 빼앗거나 신경계 후유증을 남기는 무서운 균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래서 지금도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균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아기 때 ‘뇌수막염(Hib) 예방주사’를 맞는다.

B형 인플루엔자균은 헷갈리는 이름과 강한 독성 때문에 의과대학생들의 시험 문제로 많이 출제되어 학생들을 괴롭히는 중요한 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인플루엔자와는 무관하다.

아이들이 맞는 뇌수막염 예방접종은 어릴 때 4회 정도 받는 것으로 족하지만 인플루엔자는 매년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다. 왜 그럴까?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서 그렇다. 마치 해마다 겨울에 유행한 패션이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바이러스인데도 해마다 변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멀쩡한 자켓인데도 유행이 지나면 구식이 되어 안 입는 옷이 되는 것처럼, 바이러스도 해마다 다른 변종이 유행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는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의 미묘한 변화로 일어난다.

기존 자켓의 허리나 어깨에 살짝 변화를 주어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는 것처럼,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H(헤마글루티닌) 와 N(뉴라미다제) 단백질에 살짝 변형으로 주어 새로운 유행을 일으킨다.

유행에 민감한 멋쟁이들은 미묘하게 변화한 새 옷을 사서 옷장에 넣어둔다. 이것처럼, 인간의 면역계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H/N 단백질 변화에 따라 면역성을 따로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해마다 사실상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행을 하는 것이다.

연구를 통해, 스페인 인플루엔자는 H1N1, 1957년의 아시아 인플루엔자는 H2N2, 1968년의 홍콩 인플루엔자는 H3N2, 2004년의 조류 인플루엔자는 H5N1, 2009년에 유행한 신종 플루는 H1N1 타입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올해 어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행할 지 알고 접종을 받는 걸까? 디자이너들이 봄에 열리는 파리의 패션쇼에서 가을에 유행할 자켓의 유행을 예측하듯 WHO도 전 세계에 깔린 정보망을 통해 유행 예측을 한다.

가령 올 겨울 북반구에 돌 바이러스를 현재 겨울인 남반구의 유행 패턴을 보고 예측하는 것이다. 그 자료를 토대로 WHO는 올 겨울 유행 아이템, 아니 유행 변종 바이러스를 발표하고, 제약회사들은 그 예보에 맞추어 여름내내 백신을 만들고, 우리는 가을에 접종을 한다.

예전에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1N1, H3N2) 2개와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1개에 대한 예보를 주었는데(3가 백신) 최근에는 B 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예보도 하나 더 주어 4개의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4가 백신)도 만들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인플루엔자는 줄여서 ‘플루’라고 한다. 우리도 신종 인플루엔자를 신종 플루라 부르기도 한다.  ‘flu shot’ 은 인플루엔자 예방주사란 뜻이다. 인플루엔자 접종 광고. 샌프란시스코.  ⓒ 박지욱 / ScienceTimes

영어권에서는 인플루엔자를 줄여서 ‘플루’라고 한다. 우리도 신종 인플루엔자를 신종 플루라 부르기도 한다. ‘flu shot’ 은 인플루엔자 예방주사란 뜻이다. 인플루엔자 접종 광고. 샌프란시스코. ⓒ 박지욱 / ScienceTimes

하지만 이 예보가 백발백중은 아니다. 예보에 따라 만든 접종을 맞았는데도 엉뚱한 변종이 유행하면 예방주사가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의사들은 환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한다. 이럴 때 의사들은 올해는 ‘물 백신’이었나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한다. 하지만 어쩌랴, 누구를 원망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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