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교육연구소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2004년 청소년 체험과학교육의 일환으로 한국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는 과학자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과학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이자 과학문화교육연구소 소장인 박승재 소장의 진행아래, 우리 선현들께서 이루어낸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들을 돌아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매달 한 분씩 총 열 두 분의 선현들을 만나게 될 과학탐방의 첫 번째 인물은 물시계인 자격루를 발명한 장영실 선생입니다. [편집자주]
호서대학에서 만난 장영실 선생 얼굴
초·중학생, 학부모, 과학교사 등 30여명의 참가자를 태운 버스는 지난 달 29일 오전 9:00에 서울을 출발해 11:00에 충남 아산에 위치한 호서대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의 탐방 목적인 과학자 장영실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장영실 선생의 얼굴은 전해져 오지 않지만 그의 후손 40여명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영정이 호서대학교 회의실에 모셔져 있다. ‘과학 선현 장영실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제작한 이 얼굴이 실제의 모습과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으나 넉넉하고 인자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30여 분간 호서대학 장영실연구소 소장인 문창범 교수의 전통 과학 기술과 장영실선생의 업적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관직에 있었으나 관청의 기녀였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장영실은 10세 무렵부터 관청의 노비가 되어 연장과 기계를 다루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한양으로 추천되었고 그 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물시계인 자격루를 비롯해 해시계인 앙부일구, 비의 양을 측정하는 측우기, 천문 관측기구인 혼천의 등을 만들어 세종대왕의 큰 총애를 받았다.
장영실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발명품인 자격루만 보아도 그렇듯 옛 조상들의 과학 기술은 알면 알수록 깊은 호기심을 갖게 한다. 그 속에는 수많은 신비와 아직도 풀기 힘든 미스테리가 존재한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늘 서구의 것을 따라가기에만 바빴어요. 과학 교육도 마찬가지지요. 우리의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삼국, 고려 시대에도 훌륭한 과학 기술들이 많았고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증거들을 찾아낼 수도 있지요. 우리나라의 전통과학기술을 우리조차 모르고 있다면 그 누가 알아주겠어요. 서양 중심의 사고와 교육에서 벗어나 우리 전통의 것들을 찾아 보존하고 연구하는 일이 필요해요.”
문 창범 교수는 이제는 우리의 것을 알고 연구해야 할 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묘지에서의 실험
장영실선생의 묘소가 있는 인주면에는 ‘과학선현 장영실선생 기념사업회’에 의해 정리된 묘와 비석 등이 모셔져 있었다. 묘 앞에서 잠시 참배를 하고 장영실 선생의 후손은 아니지만 그 마을에 사시는 김용택 할아버지께 장영실선생 가문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영실선생의 8대조 할아버지는 본래 송나라 사람인데 고려에 귀화하는 과정에서 아산땅을 하사 받았다. 아산에 뿌리를 두고 살다가 영남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어 장영실은 당시 경남 동래에서 출생하였다. 현재는 일년에 한두 번 장씨 후손들이 찾아와 그의 묘에 참배를 드린다고 한다.
장영실 선생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묘지 앞 잔디에서 자격루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일상 생활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1.5l 페트 병과 작은 요구르트 병에 구멍을 뚫고 빨대로 연결하여 진행된 실험이었는데 물시계인 자격루의 원리를 직접 체험하며 그 원리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감탄은 곧 질문으로 이어졌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통해 물시계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자격루처럼 정밀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물시계는 드물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서울역사박물관
묘지를 떠나 다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서울 서대문 경희궁 옆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은 그 훌륭한 시설과 규모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 못하던 곳이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의 눈은 사방으로 시선을 보냈고 있었지만 우리가 박물관을 찾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실제 자격루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먼저 청계천 특별전을 여는 1층에서 장영실 선생이 개발한 수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청계천의 수표교를 통해 그 이름이 익숙한 수표는 옛날에 쓰던 길이 단위인 척(尺)으로 그 단위가 표시되어 있었고 맨 위는 구척(九尺)까지 잴 수 있는 눈금이 돌기둥에 새겨져 있었다. 박승재 소장은 수표의 돌기둥이 육각인 것은 배가 유선형이듯 물의 흐름이 자연스럽도록 한 것이라며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2층에서 드디어 자격루를 볼 수 있었다. 물통의 모양, 옛날의 시간 단위인 시․ 경․ 정을 알려주는 종, 북, 꽹가리의 구별, 인형들을 이용해 시간을 알리는 푯말을 들게 하는 등의 원리를 과학 탐방의 진행을 맡은 하은선 교사가 설명했다.
장영실 선생의 대표적 발명품인 자격루 외에도 시간과 절기를 함께 측정할 수 있는 앙부일구(솥이 하늘을 보고 있는 모양의 해시계라는 뜻)도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3주전에 한국에 돌아온 전예빈(9살) 학생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었는데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보고 배우니까 너무 좋았어요. 특히 묘지 앞에서 했던 물시계 실험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옛날에도 이런 물시계가 있는 줄은 몰랐거든요. 장영실이라는 과학자도 자세히 알게 되서 공부도 된 거 같아요. 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라고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전통문화 속 과학탐방의 의의
한국 역사 속 과학탐방. 이것이야말로 정작 우리 학생들에게 해 주어야 할 교육이었다. 에디슨, 퀴리부인, 아인슈타인, 노벨의 업적과 발명품들은 잘 알면서 장영실, 홍대용, 이 천, 이순지 등의 우리 과학자들의 이름은 낯선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자격루 등을 서울역이나 공원 등에 설치해 실제로 시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돌아가게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중하고 훌륭한 전통과학 문화를 체험으로 알리는 방법도 좋을 것이라는 것이 박승재 소장의 생각이다.
한 달에 한 번, 한명의 과학 선현을 통해 전통과학 문화를 알아보는 과학 탐방은 책 속에만 있는 과학, 실험실에만 있는 과학이 아니라 우리 문화재 속에 살아 숨쉬는 과학, 만져볼 수 있는 과학, 바로 우리 옆에 있는 과학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행사는 매월 1회 진행되며 제 2회는 2월 22일(일), 인쇄 기술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과학선현 이 천 선생의 탐방이 이뤄질 예정이다. (문의 : 02-875-0640, paksj@snu.ac.kr)
<이송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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