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6,2018

매실이 익어갈 때 장마 온다

장마 전선(前線)위에 펼쳐진 치열한 전선(戰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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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장마는 제주에서 6월 19일에 시작됐다. 제주의 장마는 어여쁜 수국과 함께 오고, 수국과 함께 간다. 이번 원고에서는 장마와 관련된 이름들을 알아보자.

‘장마’라고 발음해보면 저절로 ‘장’에 강세가 간다. 그래, 길고 지루하다는 뜻일 테지. 그럼 ‘마’는 뭘까? 장대 혹은 삼대 같은 비가 온다고 마(麻; 삼)일까? 아니었다. ‘장마’는 우리 고유어였다.

 장마;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 유사어로 구우(久雨), 임우(霖雨).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장마의 어원은 우리 고유어 ‘長맣’이다. 중세국어에서는 ‘오란(오랜) 비(久雨)’로 불렸다. 16세기에 이르러 ‘댱마’,  18세기에는 ‘쟝마’로 불린 후 지금의 장마가 되었다. 어원적으로 장마는 ‘긴 비’인데, ‘마’는 물이나 비와 관련된 말에서 온 것으로 본다.

매화가 피면 봄이 오고, 매실이 익으면 봄이 간다.  ⓒ 박지욱 / ScienceTimes

매화가 피면 봄이 오고, 매실이 익으면 봄이 간다. ⓒ 박지욱 / ScienceTimes

장마가 내리는 시기는 매실이 익을 때다. 그렇기에 중국과 일본에서는 장마를 ‘매우(梅雨)’라 쓴다. 읽기로는 각각 ‘메이유’, ‘바이우’라 한다. 매화는 이른 봄에 꽃을 피우고 장마철이면 노란 열매를 드리운다.

장마를 영어로는 ‘plum(매화, 매실) rain’ 이라 부른다. 이는 ‘梅雨’와 같은 의미다. 마찬가지로 장마 전선을 영어로는 ‘meiyu front’, ‘baiu front’로 쓰는데, 중국과 일본의 발음을 본뜬 것이다.

 장마(한국) – 메이유(중국) – 바이유(일본)- plum rain(영어)

기상학적으로 장마는 동아시아 몬순(monsoon) 기후에 속하는 현상으로 ‘장마전선 때문에 내리는 비나 우기’를 말한다. 이 시기의 일기도를 보면 남북으로 오르내리는 장마전선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6월 말에서 7월 말까지 한 달 남짓 동안 연 평균 강우량의 30%인 400~650 mm의 비가 내리는 집중 호우를 겪는다.

몬순(monsoon): 계절풍, 장마나 장맛비. 16세기에 인도양의 4~8월에 부는 무역풍을 부르는 이름에서 왔다. 이 바람이 불면 많은 비가 왔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내리는 장마 때에 연간 강수량의 30%가 집중된다. 사진은 제주 협재 앞바다.  ⓒ 박지욱 / ScienceTimes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내리는 장마 때에 연간 강수량의 30%가 집중된다. 사진은 제주 협재 앞바다. ⓒ 박지욱 / ScienceTimes

장맛비는 한반도 남쪽의 북태평양 고기압(해양성 온대 기단)과 북쪽의 오오츠크해 고기압(해양성 한대 기단)이 만나기 때문에 생긴다. 두 기단 사이의 온도와 습도 차이로 생긴 기상전선이 장마전선이다.

장마 전선의 ‘전선(前線; front)’은 기상학에서는 두 기단이 만나 이마를 맞대는 최전방(front)을 뜻한다. 전선이라는 기상 용어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8년 노르웨이의 기상학자인 야콥 비에르크네스(1897~1975. 부친인 빌헬름 역시 유명한 기상학자다)가 쓴 이름이다.

비에르크네스 는 대규모 공기 집단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움직이는 공기 집단의 가장자리 끝을 ‘전선’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이었고 그와 동료들은 매일같이 전선(戰線; battle front)에서 들려오는 비극적인 뉴스를 접하고 살았다. 그래서 적대적인 두 세력이 충돌하는 곳을 부르던 군사학 용어인 전선을 기상학에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전장(戰場)에서도 그렇지만 기상학적으로도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맞부딪히는 곳에서 날씨는 매우 폭력적으로 변하므로 치열한 전쟁터나 다름 없다는 의미였을까?

전선(前線; front): 이질적인 두 세력이 만나는 곳

한편 장마에 해당하는 한자어로 霖雨(임우; 장마 림+비 우)도 있다. 여기서 ‘림’은 오랜 비란 뜻이다. 그 외에 陰雨(음우) 혹은 淫雨(음우)가 있는데 장마의 ‘눅눅함’을 떠올리게 한다.

霖雨(임우)에서 霖은 雨+林이 합하여 만들어진 글자다. 雨林(우림; 비 우+수풀 림)이다. ‘우림’은 영어로는 ‘rainforest’로 번역한다. 우림은 말 그대로 ‘비가 많이 내리는 숲’이므로 雨林은 모두 多雨林(다우림)이다. 일년에 대략 1,750~2,000mm 정도의 비가 내리는 지역에 생긴 울창한 숲을 우림이라 부를 만하다.

우림은 열대 우림과 온대 우림이 있고, 한반도의 울창한 숲은 한대 우림에 속한다. 열대 우림의 대표는 아마존, 남아시아, 아프리카의 밀림이다. 밀림(密林)은 이름 그대로 빽빽한 숲인데, 영어로는 정글(jungle)이다. 정글의 어원은 산스크리트 어의 ‘장글라(Jangla)’로 ‘버려진 땅, 황무지’란 뜻이다.

우림(雨林; rainforest); 비가 많이 내리는 숲.

제주시 교래리 곶자왈. ⓒ 박지욱 / ScienceTimes

제주시 교래리 곶자왈. ⓒ 박지욱 / ScienceTimes

제주도에는 화산지형이 만들어낸 ‘곶자왈’이라 불리는 원시림이 있다. 제주어로 ‘곶’은 숲, ‘자왈’은 자갈로, ‘돌바위과 널린 땅에 있는 숲’이란 뜻이 된다. 당연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다시 말하면 산스크리어의 ‘장글라’인 셈이다.

하지만 곶자왈은 식물에게는 아주 특별한 땅으로 열대 식물과 한대 식물이 만나는 전선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두 식물군의 사생결단 충돌은 없다. 승자독식의 폭력도 없다. 다만 각자에게 우호적인 환경의 최극단에서 서로 공존하며 ‘자왈’뿐인 척박한 땅에서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이런 식생대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도 전선이 생겼다. 인간 대 자연이란 전선이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이 곳에 공존을 버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전선(戰線)’이 생겼고, 전세는 개발 측으로 기울었다. 야금야금 허물어져 가는 제주 곶자왈은 이 섬이 세상에 나온지 180만년 만에 처음으로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너지고 있다.

곶자왈의 교훈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의 상호 공존이다. 그러나 개발 지상주의자들의 폭력은 곶자왈을 파헤치고 뒤엎어 자갈과 시멘트를 쏟아 붓는 폭력이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 후세는 울창한 곶자왈을 전설로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제주에 오시면, 곶자왈이 울창한 숲을 한번 들러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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