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9,2018

맥주통과 타진법, 그리고 청진기

과학기술 넘나들기(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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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몸을 두드리거나 청진기 등으로 환자의 병을 진단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의학의 발전사에 비하여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 B. C. 460-370)가 자기의 귀를 직접 환자의 가슴에 대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서 진찰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고 알려졌으나,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환자를 진단하는 방법에는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18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오스트리아의 아우엔브루거, 프랑스의 코르비자르, 라에네크와 같은 의사들에 의해서 근대적인 진단법이 개발되었다.

타진법을 처음으로 개발한 아우엔브루거. ⓒ Free photo

타진법을 처음으로 개발한 아우엔브루거. ⓒ Free photo

1722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태생의 아우엔브루거(Joseph Leopold Auenbrugger; 1722-1809)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환자의 가슴 등을 두드려 병을 진단하는 방법을 알아낸 인물이었다. 그가 이러한 진단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된 배경으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여관을 경영하던 사람이었는데, 그곳에서 파는 맥주는 술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여러 지방의 나그네들이 몰려들어 항상 붐볐다고 한다. 손님을 대접할 맥주가 떨어지지 않도록 맥주통 안에 맥주가 어느 정도나 남아 있는지 항상 신경을 써야했는데, 육중한 맥주통을 들어 보거나 그 안을 들여다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우엔브루거의 아버지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이것을 해결할 묘안을 찾아내었는데, 바로 맥주통을 주먹으로 두드려보는 방법이었다. 맥주통을 두드려서 맥주 양을 알아내는 그의 기술은 아주 뛰어나서, 그 후로는 맥주가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후원으로 당시 명문대학이었던 빈대학 의학부를 마친 아우엔브루거는 의사가 되어 여러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환자의 병을 진단하는 방법은 거의 개발되지 않고 있었다. 중세와는 달리 의사가 시신을 해부하는 것은 가능하였으나, 살아 있는 환자의 속을 들여다 볼 재주는 어느 누구도 없었던 것이다.

환자의 진단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아우엔브루거는 어느 날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맥주통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통을 두드려서 그 안의 맥주량을 알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로, 환자의 가슴을 두드려 보면 환자의 병 상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 후 아우엔브루거는 진찰하는 환자들마다 가슴, 배를 두드려 그 소리를 기억해 두었고,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은 그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또한 여러 해에 걸쳐서 그 일을 반복한 결과, 어느 병에 걸리면 어떤 소리가 난다는 것을 훤하게 알게 되었다.

그는 1761년 자신의 연구결과를 모아서 ‘가슴을 두드려 병을 알아내는 새로운 진단법’이라는 책을 써서 내게 되었다. 이것은 병의 진단법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이라고 평가되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의사들은 대부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아픈 사람의 몸을 두드리면 병세가 더욱 악화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우엔브루거의 새로운 진단법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였으나, 이후 프랑스의 의사 코르비자르(Jean Nicolas Corvisart; 1755-1821)에 의해서 널리 소개될 수 있었다.

코르비자르는 당시 프랑스궁정의 시의로서 나폴레옹이 전적으로 신뢰했을 만큼, 세계적인 의사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1808년 우연히 아우엔브루거의 책을 읽은 그는, 환자의 가슴을 두드리는 진단법이 매우 훌륭한 것임을 인정하고 주위의 많은 의사들에게 이 방법을 권장하였다.

또한 아우엔브루거의 저서를 번역하고 자신의 연구를 덧붙여서 새로운 책으로 출간하였다. 아우엔브루거의 타진법은 이렇게 해서 널리 보급되었고, 그에 힘입어 근대적인 진단법과 의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청진기를 발명한 라에네크 ⓒ Free photo

청진기를 발명한 라에네크 ⓒ Free photo

당시의 저명한 의사였던 코르비자르에게 제자가 되기를 간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라에네크(Rene Theophile Laennec; 1781-1826)라는 프랑스의 젊은이였다. 그는 1804년 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된 후, 주로 폐결핵과 심장병의 연구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라에네크도 환자의 몸에 귀를 대고 그 소리를 들어서 진찰하는 방법을 주로 이용하였으나,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소리가 너무 작거나 제대로 들리는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길을 걷던 그는 어린아이들이 통나무를 사이에 두고 놀이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한쪽의 아이가 통나무를 두드리거나 못으로 긁으면, 다른 편의 아이는 통나무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었다. 라에네크도 호기심이 생겨서 체면을 무릅쓰고 통나무에 귀를 대어 보니, 상대편으로부터 소리가 크고 똑똑하게 전달되어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곧장 집으로 달려 가 나무막대기를 깎아서 가족들의 가슴에 대어 보았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더욱 크고 또렷하게 들렸고, 라에네크는 이것을 개량하여 환자의 숨소리나 박동소리를 듣기에 적합한 긴 원통형의 ‘가슴검사기’를 고안해내었다. 이것이 바로 청진기의 원조인 것이다.

라에네크의 가슴검사기는 환자의 진단에 탁월한 효력을 발휘하여, 그의 병원에서는 수많은 폐결핵 환자, 심장병 환자들의 병명을 조기에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1819년에 자신의 오랜 연구를 모아서, ‘심장과 허파의 병을 귀로 들어서 진단하는 법’이라는 책을 내었으나, 환자의 진찰과 연구에 너무 무리를 한 나머지 자신도 폐결핵에 걸려서 1826년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라에네크가 죽은 후 그의 가슴검사기를 개량하여 2개의 고무관을 귀에 연결하는 모양의 지금과 같은 청진기가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라에네크 사후에 미국에서 개발된 현대식 청진기. ⓒ Free photo

라에네크 사후에 미국에서 개발된 현대식 청진기. ⓒ Free photo

술의 양을 알기 위한 맥주통 두드리기와, 어린이들의 통나무 소리전달놀이가, 타진법과 청진기의 발명이라는 근대 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단순한 우연이나 행운으로만 볼 수는 없으며, 이러한 힌트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던 사람들의 공로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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