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2,2018

605전 606기의 과학자, 에를리히

과학기술 넘나들기(49)

인쇄하기 과학기술 넘나들기 스크랩
FacebookTwitter

역사상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다들 천부적 능력을 타고 났거나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학자들 중에는 천재적인 인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상의 중요한 발전을 이룩한 인물이 꼭 남들보다 탁월한 두뇌를 지녀서라기보다는 끈기와 노력이 그 비결이었던 경우도 적지 않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여 마침내 큰 업적을 이루고야만 과학자들 중에서도 독일의 과학자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1915)는 단연 빛나는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연구에 몰두 중인 에를리히1910년. ⓒ Free photo

연구에 몰두 중인 에를리히1910년. ⓒ Free photo

에를리히는 대학시절 일부 과목의 학점을 제때 취득하지 못해 남들보다 1년 늦게 졸업했을 정도로, 처음에는 그다지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분야에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결과 생화학 및 의학의 발전에 중요한 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거듭되는 실패를 딛고 끝내 성공을 이룬 경우, 흔히 7전 8기(七顚八起)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백 번이 넘는 실패를 극복한 에를리히는 ‘605顚 606起’의 경우였다.

19세기 후반에는 현미경의 발명에 힘입어 여러 미생물들의 정체가 밝혀지게 되었고, 전염병에 대한 연구 또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전염병은 하늘이 내리는 벌이 아니라, 병원체인 미생물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지면서, 여러 전염병의 예방 및 치료법에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가장 공헌이 컸던 인물들을 꼽으라면 백신의 발견자인 프랑스의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와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Robert Koch; 1843-1910)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균이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낸 코흐 ⓒ Free photo

세균이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낸 코흐 ⓒ Free photo

 

파스퇴르는 미생물의 성질을 깊이 연구하여 부패와 발효 등의 현상이 미생물의 작용이라는 것을 밝혔으며, 독창적인 실험을 통하여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확증을 제시하였다.

그는 또한 인간이나 가축의 전염병도 미생물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당시 대부분의 의사들은 파스퇴르의 견해를 그다지 믿지 않았다. 코흐는 탄저병을 일으키는 세균의 정체를 밝혀내었고 당시 최대의 난치병이었던 결핵의 병원균도 발견함으로써, 전염병의 병원체는 미생물의 일종인 세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코흐가 세균학의 대가로서 이름을 날릴 무렵, 에를리히는 결핵균을 효율적으로 염색하여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여 코흐로부터 극찬을 들었다. 코흐의 연구소에서 일하던 에를리히는 세균을 염색하는 방법을 응용하여 세균을 죽이는 약을 개발할 결심을 하였고, 몇 년 후 자신의 독립된 연구소를 차리게 되자 이 일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당시 독일은 리비히(Justus Freiherr von Liebig; 1803-1873) 등이 유기화학을 개척하여 염료공업 등에 화학지식을 응용함으로써 새로운 물질들을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개발되다. 따라서 에를리히는 세균의 분자만을 파괴하고 인체에는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에를리히는 세균만을 선택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물질을 ‘마법의 탄환’이라 이름 붙였는데, 처음에 연구한 것은 가축들의 질병을 일으키는 트리파노소마(Trypanosoma)라는 미생물을 죽이는 약품의 개발이었다. 그는 생쥐를 대상으로 하여 여러 염료들을 써서 실험을 거듭한 끝에 트리파노소마를 파괴하는 염료물질을 발견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것의 성공을 바탕으로 하여 에를리히는 짐승의 질병이 아니라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물질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는데, 매독의 병원균인 스피로헤타(Spirochaeta)가 그의 첫 번째 대상이었다.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을 검토하던 그는 비소(As) 계열의 화합물에 눈길이 갔는데, 비소는 매우 강한 독극물질로서 미생물을 죽이는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소는 미생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독극물이었으므로 그대로는 마법의 탄환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인체에는 부작용이 없으면서도 병원균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분자 구조를 갖춘 화합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는데, 여기에는 화학뿐 아니라 의학, 생물학 등의 지식도 필요하였으므로, 에를리히의 연구소에는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들여 공동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에를리히는 주로 토끼를 이용하여 실험을 하였는데, 투여하는 물질의 분자 구조를 조금씩 달리해 하면서 토끼와 스피로1헤타균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핀다는 것은 대단히 힘들고도 지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매우 많은 토끼들이 이 실험에서 희생되었으나, 실험 횟수가 수백회가 넘도록 원하는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즉 스피로헤타균이 잘 죽는 경우는 토끼도 상태가 나쁘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실험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불평과 회의도 높아만 갔다. 그러나 에를리히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실험을 계속한 결과, 1910년에 이르러 606번째 실험에서 드디어 원하는 물질을 얻을 수 있었다. 토끼의 스피로헤타균을 부작용 없이 모두 죽인 그 화학물질을 인체 실험에도 적용해 본 결과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발견한 이 물질을 실험횟수를 따서 ‘606호’라고 지칭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화학적 치료약품인 ‘살바르산(Salvarsan)’이다.

환자에게 살바르산을 주사하는 의료진1918년 ⓒ Free photo

환자에게 살바르산을 주사하는 의료진1918년 ⓒ Free photo

병원에 가면 대부분 주사를 놓거나 조제약을 주듯이, 오늘날 질병을 치료하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은 화학요법은 바로 에를리히에 의해서 처음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또한 지금도 새로운 약이 개발되면 ‘OOO호’ 하는 식으로 부제를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에를리히의 606호가 그 유래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생화학과 의학 등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첨단 실험장비들이 갖춰진 오늘날의 신약개발 시스템과는 달리, 모든 일은 수작업에 의존했던 당시에 에를리히가 600번이 넘는 실패를 무릅쓰고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대단한 집념과 끈기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의지의 과학자 에를리히는 살바르산을 발견하기 직전에 면역에 관한 연구로 1908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받기도 하였다. 그는 말년에 건강이 나빠져 온천에서 휴양을 하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8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