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5,2018

시상식장에 불참한 처칠과 밥 딜런

노벨상 오디세이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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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선정했다. 그런데 이 소식이 전해지자 AP통신은 “전통을 깼던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는 다시 전통 문학으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했다. 다른 외신들 역시 이와 비슷한 논평을 내놓았다.

언론에서 그 같은 반응을 보인 까닭은 바로 그 전 해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밥 딜런 때문이다. 밥 딜런은 문학가로서보다 대중가수로 더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한림원이 수상 이유로 “미국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내며 귀를 위한 시를 썼다”고 밝힌 것도 그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1901년 노벨상 시상 이후 최초로 대중가수에게 문학상이 주어지자 과연 수상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문학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던 윈스턴 처칠. ⓒ public domain

노벨 평화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문학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던 윈스턴 처칠. ⓒ public domain

밥 딜런은 10세 때부터 시를 썼으며, 그가 출간한 서적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2004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 그가 작사한 노랫말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서에 실렸으며, 또한 미국의 각 대학에는 그의 가사를 분석하는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저서인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문학서가 아닌 자서전 성격의 책이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사설을 통해 “밥 딜런은 위대한 음악인이라 노벨상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지만 문학인들에게는 필요하다”고 밝히며 그의 수상을 비판했다. 그밖에도 많은 언론에서 그가 전문 문학인이 아닌 점을 거론했다.

유명 정치가에게 안겨진 문학상

전문 문학인이 아닌 이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례는 그동안 몇 차례 있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 버트런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와 역사학자 테오도로 몸젠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왕성한 인문학적 저술 활동을 벌인 유명 저술가이기도 해서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밥 딜런처럼 문학상 자격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인물이 예전에도 한 명 있었다. 195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처칠은 히틀러에 맞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정치가로 유명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부터 독일이 영국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의 최고지휘부가 되었다. 그러나 독단적으로 진행한 작전이 실패하자 처칠은 해군 대신에서 물러났다.

그 후 정치적 재기에 성공해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시 총리 겸 국방장관이 되어 전쟁을 지휘했다. 이때 그가 의회에서 행한 최초의 연설은 지금도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나에게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이외에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연설로 그는 전원일치의 신임투표를 얻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총리직에서 물러난 처칠은 1951년 다시 총리로 선출됐다. 그때부터 처칠은 전사로서의 이미지를 버리고 유럽 통합 및 동서 갈등의 완화를 위해 활동했다. 따라서 그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아마 평화상일 거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처칠도 자신이 평화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1953년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가 ‘어느 부문?’이라고 재차 확인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 왜 노벨위원회는 처칠에게 평화상이 아닌 문학상을 안겼던 걸까.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를 결정하는 것은 스웨덴이 아니라 노르웨이다. 그런데 당시 노르웨이에서는 처칠에게 평화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그 같은 고민은 노벨위원회에서 발표한 처칠의 문학상 수상 이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역사적 글과 전기적 글에 있어서 보여준 그의 탁월함과 인간의 예의에 대해 행한 많은 훌륭한 연설로 인해 수상자로 선정한다.”

밥 딜런, 수락 연설을 녹음본으로 제출

여기서 역사적 글과 전기적 글은 처칠의 대표 저서인 ‘제2차 세계대전’을 가리킨다. 6권으로 이루어진 이 저서는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그가 6년 동안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방대한 역사적 저작물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 후에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 1차 세계대전을 다룬 5권짜리 저서 ‘세계의 위기’를 펴낸 바 있다.

노벨 평화상이 아니라서 실망했는지 처칠은 노벨 문학상의 시상식장에 아내를 대신 보냈다.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밥 딜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쏟아진 논란 탓이었는지 몰라도 밥 딜런은 2016년 12월 10일 행해진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스웨덴 한림원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그러다 다음해인 2017년 4월에 스웨덴에서 열린 콘서트 참석차 밥 딜런은 스톡홀름을 방문했다. 그때 스웨덴 한림원은 공연장 인근의 한 호텔에서 소수의 관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밥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 증서와 메달을 수여하는 비공개 시상식을 가졌다.

또한 밥 딜런은 6개월 이내에 해야 하는 수락 강연도 마감 시한인 2017년 6월 10일 직전에서야 녹음본으로 제출해 비공개로 진행했다. 만약 이 강연을 하지 않았으면 그가 받은 노벨상 상금 전액을 한림원에 반환해야 하기에 이 강연 내용은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녹음으로 제출된 강연에서 또 한 번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 중 일부를 인용한 것이 정작 원작에는 없는 문장이었던 것. 확인 결과 그 문장은 중고등학생들이 애용하는 문학작품 요약 웹사이트의 요약본 표현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웹사이트가 오류로 잘못 올린 구절들을 밥 딜런이 그대로 표절한 것이다. 앞서 그의 강연에 대해 아름답고 유창했다고 극찬한 한림원은 또 한 번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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