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3,2018

식물계의 거머리 ‘새삼’의 생존 비밀은?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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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小寒)과 대한(大寒) 사이에 어울리게 이번 주 올 겨울 최강 한파가 찾아왔다. 최저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내려갔다지만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밖에 있을 때 잠깐 추위를 느낄 뿐 실내에서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어렸을 때인 40년 전만해도 겨울은 정말 추웠다. 늘 손발이 시렸고 실제 동상에 걸린 사람들도 많았다. 하물며 그 이전에는 겨울을 나는 게 큰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사계절 가운데 유독 겨울을 나는 일을 가리켜 ‘겨우살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게 아닐까.

그런데 겨우살이는 식물이름이기도 하다. 겨울철 잎이 다 떨어진 커다란 나무에 까치집처럼 보이는 관목이 겨우살이다. 이처럼 나뭇가지에 의지해 공중에 떠있다 보니 물과 영양분을 흙이 아닌 나무에서 얻는다. 즉 기생식물이라는 말이다. 그래도 잎이 있어 광합성은 하기 때문에 반(半)기생식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도 나무의 잎이 떨어진 겨울에야 그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에 겨우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닐까.

나무의 입장에서는 자기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겨우살이까지 안고 살아야하니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다. 실제 한 나무에 겨우살이 여러 개체가 신세를 질 경우 나무가 죽기도 한다. 겨우살이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바로 사람 때문이다. 겨우살이가 몸에 좋다는 게 알려지면서 무분별한 채취가 이뤄져 지금은 멸종을 걱정해야할 정도가 됐다.

다른 식물에 의존해 살아가는 식물 가운데 겨우살이보다 한 술 더 뜨는 게 있으니 바로 새삼이다. 주로 농작물에 기생하는 새삼은 뿌리가 없을 뿐 아니라 잎도 없어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즉 동물처럼 전적으로 소비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뿌리도 잎도 없고 덩굴줄기만 있다 보니 여러 개체일 경우 식물에 실이 엉켜있는 형상이다.

새삼의 경우 땅에 뿌려진 씨앗에서 발아할 때까지는 보통 식물이다. 그러나 인근 식물에 덩굴줄기가 인근 식물에 닿아 감게 되면 뿌리가 퇴화해 사라진다. 만일 발아 후 10일 내 숙주식물을 찾지 못하면 죽는다. 아무튼 공중에 뜬 새삼은 겨우살이처럼 숙주식물의 줄기에 흡수근(haustorium)이라는 구조를 부착시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인다. 거머리나 진드기가 숙주동물에 주둥이를 꽂아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뿌리도 잎도 없이 오직 덩굴줄기만 있는 새삼(가운데 노란색)은 숙주식물에 전적으로 삶을 의지하는 기생식물이다. 마이크로RNA를 동원한 새삼의 생존전략이 최근 밝혀졌다. ⓒ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뿌리도 잎도 없이 오직 덩굴줄기만 있는 새삼(가운데 노란색)은 숙주식물에 전적으로 삶을 의지하는 기생식물이다. 마이크로RNA를 동원한 새삼의 생존전략이 최근 밝혀졌다. ⓒ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숙주식물의 방어 및 운송 체계 교란

학술지 ‘네이처’ 1월 4일자에는 새삼이 숙주식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발한 전략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새삼은 숙주식물의 몇몇 전령RNA(mRNA)를 표적으로 하는 마이크로RNA(miRNA)를 만들어 내 숙주식물이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고 영양분을 자기 쪽으로 더 효율적으로 끌어당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miRNA는 염기 21~22개로 이뤄진 작은 RNA로 상보적인 염기서열을 지닌 mRNA를 인식해 달라붙는다. 그 결과 mRNA가 끊어지거나 번역과정에서 방해를 받아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miRNA는 유전자의 발현 이후 단계에서 단백질 합성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으로 보통 자신의 mRNA를 표적으로 한다. 그런데 새삼의 경우 흡수근을 통해 숙주식물의 세포로 miRNA 특공대를 투입해 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삼 miRNA의 표적이 되는 숙주식물의 mRNA는 어떤 유전자가 발현된 것일까.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 미국의 공동연구팀은 새삼을 애기장대에 기생하게 만든 뒤 애기장대에서 흡수근이 부착된 부분의 mRNA 패턴과 부착하지 다른 부분의 mRNA 패턴을 비교분석했다. 참고로 새삼은 다양한 쌍떡잎식물을 숙주로 삼는데 1년 생 풀 애기장대는 쌍떡잎식물의 연구모델로 널리 쓰이고 있다.

비교결과 흡수근이 부착된 부분에서 TIR1, AFB2, AFB3, BIK1, SEOR1 유전자의 mRNA 양이 크게 줄어들었다. 앞의 네 유전자는 식물이 병원체에 감염됐을 때 대응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유전자들이 발현돼 만들어진 단백질이 병원체에 감염된 부위에 엉겨 붙어 수액이 잘 흐르지 못하게 한다. 마치 상처 주변에 혈소판이 몰려 혈액을 응고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거머리가 피를 빨 때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혈소판의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내놓는다면 새삼은 miRNA를 만들어 단백질 자체는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SEOR1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은 식물의 체관부에 존재하면서 잎이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당분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새삼이 당분을 자기 쪽으로 더 쉽게 끌어당기기 위해 이 유전자의 mRNA를 표적으로 하는 miRNA를 내보내 단백질을 제대로 못 만들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숙주식물 줄기를 휘감은 새삼은 접촉면을 뚫고 흡수근을 뻗어 물과 양분을 빨아들여 생존한다. 이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가운데와 오른쪽은 각각 그 왼쪽에서 일부를 확대한 것이다. 1) 새삼 2) 숙주식물 3) 새삼의 퇴화한 잎 4) 숙주식물의 기본조직 5) 체관 6) 당분과 영양분 7) 숙주식물의 표피조직 8) 새삼의 흡수근. ⓒ 위키피디아

숙주식물 줄기를 휘감은 새삼은 접촉면을 뚫고 흡수근을 뻗어 물과 양분을 빨아들여 생존한다. 이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가운데와 오른쪽은 각각 그 왼쪽에서 일부를 확대한 것이다. 1) 새삼 2) 숙주식물 3) 새삼의 퇴화한 잎 4) 숙주식물의 기본조직 5) 체관 6) 당분과 영양분 7) 숙주식물의 표피조직 8) 새삼의 흡수근. ⓒ 위키피디아

연구자들은 이런 유전자들이 만들어내는 단백질이 줄어든 것이 정말 새삼의 기생 효율을 높이는 지 알아보기 위해 각 유전자가 고장난 돌연변이 애기장대를 숙주로 삼아 새삼의 성장을 지켜봤다. 새삼은 miRNA로 이들 유전자의 단백질을 덜 만들게 하므로 유전자가 고장 나 아예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논리에 따르면 새삼이 더 잘 자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찰 결과  SEOR1 유전자나 AFB3 유전자가 고장 난 돌연변이 애기장대를 숙주로 삼은 새삼은 정장 애기장대를 숙주로 삼았을 땜보다 훨씬 더 잘 자란다.

한편 새삼은 특정한 종이 아니라 많은 쌍떡잎식물을 숙주로 삼기 때문에 애기장대 뿐 아니라 다른 쌍떡잎식물에도 표적으로 삼는 유전자의 mRNA에 새삼 miRNA의 염기서열에 상보적인 서열이 있을 것이다. 실제 쌍떡잎식물 31종을 조사한 결과 SEOR1 유전자의 경우 18종에서 상보적인 서열이 존재했다. 그리고 또 다른 쌍떡잎식물 모델인 담배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애기장대 실험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식물의 세계에서도 생존을 위한 치열한, 분자 수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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