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4,2017

우산, 부의 상징에서 생활 필수품으로

르누아르의 <우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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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고대부터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기원전 1200년경 이집트에서는 귀족 계층만 우산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우산 쓴 사람을 나약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남자들은 우산 대신 모자를 쓰거나 그냥 비를 맞았다고 한다.

유럽에서 우산을 부의 상징으로 여겼던 관습은 18세기 초까지 이어진다. 일반 대중들이 우산을 사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영국의 무역업자 ‘조나스 한웨이’ 때문이다. 그는 우산을 쓰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30년간 우산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의 노력으로 사람들은 우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영국 신사들의 상징물인 우산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처음 우산은 무역업자의 이름을 따‘한웨이’라고 불렸지만, 그의 우산은 뼈대를 등나무로 만들어져 불편했다. 후에 ‘헨리 홀란드’라는 발명가에 의해 스틸 뼈대가 발명되어 지금의 우산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우산은 비가 올 때 비를 피할 수 있게 하거나 얼굴을 가리는 목적으로 사용되다가 햇빛이 날 때 양산의 역할도 함께 했다.

우산이 유럽에서 부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우산은 왕이나 상류층만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서민들이 우산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가린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우산은 고구려에서는 시녀가 앞에 가는 상전을 씌워주는 것으로, 고려에서는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면서 관리들만 외출 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도 고려와 같이 관리들만 우산을 사용하였고 서민들은 도롱이를 입거나 삿갓을 써서 비를 막았으며 기름종이로 만든 전모나 갈모를 쓰기도 했다. 갈모는 기름종이로 원을 만들어 원추형으로 접어 모자 위에 덮어 비를 피했다. 갈모는 커서 몸을 가릴 수 있었으나 전모는 머리만 가리는 형태다.

지금처럼 헝겊으로 만든 우산은 유럽에서 전래 된 것이다. 그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초기에는 쇠살에 검정, 청색 등 어두운 색상의 천을 박아서 사용했다. 그 후 방수처리한 방수포를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에 방수처리한 천을 사용한다.

-1881~1886년, 캔버스에 유채, 180*114.

<우산들>-1881~1886년, 캔버스에 유채, 180*114.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부의 상징보다는 생활의 필수품으로 우산을 보여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르누아르의 <우산들>다.

왼쪽 어두운 색 옷을 입은 여인이 왼손에 바구니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스커트 자락을 잡고 있고, 뒤에 서 있는 남자는 우산을 쓴 채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에는 레이스 수가 놓여진 우아한 옷을 입고 있는 소녀가 손에 굴렁쇠와 막대를 잡고 있고, 옆에는 소녀의 한쪽 어깨를 잡은 여인이 우산을 들고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붉은색 머리의 소녀는 굴렁쇠를 잡고 있는 소녀의 팔을 잡고 있다.

바구니는 식료품 바구니이고, 여인이 점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당시 점원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그녀가 우산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은 비가 갑작스럽게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인이 오른손으로 스커트 자락을 잡고 있는 것은 스커트가 비에 젖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산을 쓰지 않는 여인은 모델 쉬잔 발라동으로, 뒤에 우산을 들고 있는 젊은 남자의 모자는 그가 부르주아라는 것을 나타내며 여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가 여인을 흠모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산을 쓴 채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옆에 우산을 펴지 않은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 역시 비가 갑자기 내리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이 작품에서 굴렁쇠를 들고 있는 소녀의 화려한 옷은 부르주아 집안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옆에 우산을 들고 소녀를 바라보는 여인이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소녀의 어깨를 잡고 있는 것은 소녀가 다른 데로 가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굴렁쇠 소녀 옆에서 팔을 잡고 서 있는 붉은색 머리의 소녀는 굴렁쇠 소녀의 놀이 친구라는 것을 나타낸다. 굴렁쇠 소녀가 놀이 친구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 것은 친구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지금은 일기 예보가 비교적 정확하게 맞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없더라도 하늘이 맑지 않으면 우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제 비가 내릴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1875년 캔버스에 유채, 78*117.

<르픽 자작과 그의 딸들(콩코르드 광장)>-1875년 캔버스에 유채, 78*117. ⓒ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비가 오지는 않지만 비 올 것을 대비해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드가의 <르픽 자작과 그의 딸들(콩코르드 광장)>다.

르픽 자작은 왼팔에 우산을 끼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다. 양 옆에는 어린 딸들과 그레이하운드 종의 개가 서 있다. 개의 목줄이 있는 것은 르픽 자작이 손으로 개의 끈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르픽 자작과 딸들이 서 있는 광장은 콩코르드 광장이다. 콩코르드 광장은 루이 15세를 기리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처음에는 루이 15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 15세 광장이라고 불리었고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5세의 동상이 철거 된 후 민중의 축제 장소와 단두대 처형의 장소로 사용되면서 혁명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드가의 이 작품에서 르픽 자작의 가슴에 달려 있는 붉은색 리본은 애국을 상징한다. 르픽 자작은 나폴레옹의 지지자로 리본은 프랑스 제 3공화정의 프랑스 동부 지방을 양도하는 조약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드가는 르픽 자작의 붉은색 리본과 광장에 프랑스의 통합을 상징하는 스트라스부르의 의인상을 자작의 모자로 가려 놓음으로서  자신의 정치적인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광장에는 브르타뉴 지방을 상징하는 낭트 의인상과 알자스 지방을 상징하는 스트라스부르 의인상이 세워져 있다. 각 지방 중심 의인상을 통해 단일한 국가로서 프랑스의 통합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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