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4,2017

페스트 역병, 석기시대 때 유럽 유입

유라시아 유목민이 유럽에 이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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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유럽인을 공포에 떨게 했던 페스트 역병이 수천 년 전 석기시대 때 유럽에 유입됐다는 연구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 역사과학연구소 과학자들이 이끄는 연구팀은 후기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이(4800~3700년 전)에 이 전염병을 일으켰던 유럽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의 유전체 6개를 처음으로 분석해 냈다. 생명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러지’(Current Biology) 최근호에 실린 이 샘플들에 대한 분석은 석기시대 전염병이 유라시아 대초원에 살던 사람들의 대규모 이주에 따라 유럽에 유입됐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페스트균이 일으키는 전염병은 14세기의 악명 높은 흑사병(Black Death) 창궐을 포함해 역사적인 주요 역병의 대유행을 야기한 바 있다. 연구팀은 이 질병의 옛 형태를 분석해 전염병의 진화와 이 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더욱 심한 독성을 띠게 되는지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밝혀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라시아 전역을 통해 페스트균이 순환한 예상도. (A) 4800년 전 폰틱(pontic) 대초원 지역 얌나야(yamnaya) 유목민들이 세력을 넓히면서 페스트균이 중앙 유라시아에서 유럽으로 유입됐다. (B) 유럽에서 남시베리아로 페스트균의 순환.   Credit : Aida Andrades Valtueña. Andrades Valtueña et al. (2017).

유라시아 전역을 통해 페스트균이 순환한 예상도. (A) 4800년 전 폰틱(pontic) 대초원 지역 얌나야(yamnaya) 유목민들이 세력을 넓히면서 페스트균이 중앙 유라시아에서 유럽으로 유입됐다. (B) 유럽에서 남시베리아로의 페스트균 순환. Credit : Aida Andrades Valtueña. Andrades Valtueña et al. (2017).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독일과 러시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에서 채취한 500개 이상의 고대인 치아와 뼈 표본을 대상으로 페스트균의 존재 여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여섯 명의 뼈 표본에서 완전한 페스트균 유전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어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유전체 수를 크게 늘리고, 이 질병이 유럽으로 유입된 이후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조사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대초원 유목민과 거의 동시에 중부유럽에 유입  

연구팀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이 시기의 페스트균 유전체가 모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논문 제1저자인 아이다 안드라데스 발투에냐(Aida Andrades Valtueña) 막스 플랑크 인류 역사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이것은 전염병이 같은 근원지에서 여러 번에 걸쳐 유럽으로 유입됐거나 아니면 일단 석기시대에 들어왔다가 계속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하운슈테튼 포스틸론슈트라쎄 유적지에서 페스트균 유전체를 확인하기 위해발굴한 고대인 남성 유해. 단검,부싯돌 화살촉, 팔찌 등이 출토됐다.  Credit : Stadtarchäologie Augsburg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하운슈테튼 포스틸론슈트라쎄 유적지에서 페스트균 유전체를 확인하기 위해발굴한 고대인 남성 유해. 단검,부싯돌 화살촉, 팔찌 등이 출토됐다. Credit : Stadtarchäologie Augsburg

연구팀은 어떤 시나리오가 더 가능성이 높은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이 시기에 살던 사람들의 이동에 관한 기존의 고고학 및 고대 DNA 증거 등을 연결지어 자료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4800년 전부터 시작해 카스피안-폰틱 대초원(Caspian-Pontic Steppe)에서 유럽으로 사람들이 대거 이주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현대 유럽인들에게도 나타나는 독특한 유전적 표지자를 가지고 있어서 이주와 유전적 영향을 추적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유럽에 전염병이 돈 최초의 징후는 대초원에 살던 사람들이 유럽에 도래한 시점과 일치했다. 이는 전염병이 대초원 유목민의 대규모 이주와 함께 확산되었다는 개념을 뒷받침한다.

논문 교신저자인 같은 연구소 알렉산더 헤어빅(Alexander Herbig) 박사는 “우리 견해로는 인간의 유전적 조상과 혼합체가 후기 신석기-청동기시대 페스트균 계통 안에서 시계열적으로 결합했으며, 이는 페스트균이 약4800년 전에 대초원에서 유럽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며, “페스트균은 중앙 유라시아로 되돌아가기 전에 유럽에서 국지적 근원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냥용 검독수리와 함께 말을 타고 있는 카자크 유목민. 석기시대 대초원 유목민들이 유럽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페스트가 함께 유입됐다는 연구가 나왔다.  Credit : Wikimedia Commons / Sergei Ivanovich Borisov

사냥용 검독수리와 함께 말을 타고 있는 카자크 유목민. 석기시대 대초원 유목민들이 유럽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페스트가 함께 유입됐다는 연구가 나왔다. Credit : Wikimedia Commons / Sergei Ivanovich Borisov

전염병 독성 유전자의 변화 확인

연구팀이 발견한 전염병 유전체는 이전의 연구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이 기간 동안 전염병 독성과 관련해 유전자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변화가 질병의 심각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페스트균은 그런 특성이 발달하기 전에 이미 대규모 전염병을 일으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논문의 주요 저자이자 같은 연구소 고고유전학부장인 요하네스 크라우스( Johannes Krause) 박사는 “페스트 감염 위협은 후기 신석기-초기 청동기시대에 늘어난 인구 이동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대초원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전염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주를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나아가 전염병의 유럽 유입은 유럽 사람들의 유전적 전환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요하네스 박사는 “어떤 유럽인들이나 대초원 사람들은 이 전염병에 대해 다른 수준의 면역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문들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더 넓은 시간적 및 지리적 범위 안에서 페스트균과 사람들의 표본을 더욱 많이 확보해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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