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5,2017

고은 시인 “천체물리학 공부하고 싶다”

카이스트 석좌교수 임용 뒤 첫 특강

FacebookTwitter

“만약 내가 과학을 한다면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인 고은(1933~ )이 카이스트 강단에 처음 섰다. 최근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임용된 고은 시인은 10일 카이스트 터만홀에서 ‘석사리더십 강좌’ 시간에 2시간 동안 특강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특강하는 고은 시인 ⓒ 심재율 / ScienceTimes

특강하는 고은 시인 ⓒ 심재율 / ScienceTimes

이날 강좌의 제목은 ‘시와 세계’이다. 우리나라 현대시의 시작을 알리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시의 주제로 삼았다.

1908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현대시가 발표됐다. 최남선이 쓴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이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지금 관점에서 보면 이게 무슨 시냐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현대시는 이렇게 서툴게 시작했다”고 시인은 말했다.

한말에 조선에 세 명의 천재가 있었다. 최남선, 홍명희, 이광수이다. 최남선은 중인 신분이었고, 홍명희는 아주 부유한 양반신분이었으며, 이광수는 상인이었다. 공교롭게도 세 천재가 각각 양반 중인 상민 중에서 한 명씩 나타났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에 나타난 시의 세계는 바다이다. 바다진출을 금지한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도 바다는 금지된 구역이었다. 한반도에 갇혀 바다 진출을 금지하다 보니 우리나라는 고립된 세상에 살고 있었다.

문학에서도 ‘청산에 살어리랏다’는 말은 있어서 바다를 노래한 시는 없었다. 천재적인 시인인 황진이 조차도 바다를 금기시했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 간들 엇더리.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에서 ‘한 번 바다로 가면 다시 청산으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표현에서 나타나듯이, 황진이에게 조차 바다는 두려운 세계, 절망과 이별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서는 육지에 갇혀 살다가, 최남선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다시 말해 바다가 소년에게로 다가온다는 새로운 세계관을 보였으니, 이 시는 형식에서나 진취적인 사상에서나 현대시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영국의 해양문학이 엄청나게 풍부하고, 해양문학 사전도 방대한 것을 봐도 우리나라의 해양문학이 얼마나 취약한 지 알 수 있다. 일본은 이미 명치시대에 태평양을 호수로 삼아야 한다고 했고, 미국은 바다로 진출해서 하와이를 차지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08년 최남선의 시를 통해서 바다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세계를 넘어선 곳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

시인은 이날 이미 세계적인 대학으로 올라선 카이스트의 젊은 학생들을 보면서 “참 예쁘다”는 감탄사를 내놓았다. 100년전 젊은이들이 추구할 세계는 바다였다. 지금 카이스트는 이미 세계의 대학이 됐다. 그러므로 이제 젊은이들은 출발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고은 시인 ⓒ 심재율 / ScienceTimes

고은 시인 ⓒ 심재율 / ScienceTimes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약 100년 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세계’는 바다로 상징되는 한반도 너머가 거의 전부였다. 수 백 년 동안 한반도에 갖혀 지낸 한국 지식인들은 1908년 ‘소년에게 다가온 바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의 젊은이들에게 다가온 국제사회에 당황해하면서 정체성의 위기와 혼돈을 겪었다.

고은은 “그렇지만, 자아를 잃어버리면 세계를 잃어버린다.”면서 먼저 한국에 대해서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정체성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강좌를 마치고 질의응답에서 고은 시인은 본인이 쓴 시 중 가장 잘 쓴 시는 “지금 막 쓴 시”라고 설명했다.

시를 분석적으로 공부하는데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 ‘시를 읽을 때 어떻게 느끼는 것이 좋은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듯이, 시를  공부할 때 분절해서 분석하는데 그러면 시가 죽는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에서 시를 배울 때 분절하고 분석하는 교육은 입시라는 구조에 맞추는 것으로서 그렇게 하면 “시는 없어지고 바로 죽는다”고 말했다.

고은은 “무지한 상태로 바로 들어와야 하는데 따지면서 함부로 논리를 부여하면 논리도 죽고 시도 죽는다”면서 “지금 교육은 나쁜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고은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과학을 한다면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도 청년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고은 시인이 마지막으로 말한 중요한 단어는 ‘입체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이다.

감수성 풍부한 시인이 입자물리학과 천제물리학을 거론한 것은, 물질의 궁극, 다시 말해서 더 깊은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한없이 뻗어나간 우주라는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것을 주문한 것이다.

시인은 카이스트의 젊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단순히 세계만 향해서 나아가지 말고, 그 너머의 무한한 미지를 향해 나아가라고.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