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5,2017

고추냉이 먹으면 코끝 찡한 이유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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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인가 뉴스에서 씁쓸한 얘기를 들었다. 일본인들의 혐한(嫌韓) 감정이 워낙 심하다보니 한국 여행객이 스시(초밥)를 시키면 생선과 밥 사이에 고추냉이(와사비)를 잔뜩 넣어 골탕을 먹이는 식당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아무리 한국 사람이 싫다고 먹는 걸 갖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두 식당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걸 뉴스에서 과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초밥에 고추냉이가 지나치게 발라져 있어서 코가 찡했던 경험을 한 적이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고추냉이의 톡 쏘는 성질은 고추의 매운 맛과는 좀 다르고 오히려 겨자와 비슷하다. 중국요리 가운데 양장피를 시키면 겨자소스가 담긴 그릇이 딸려오는데 이걸 다 붓고 섞는 사람이 있다. 한 젓가락 집어 먹으면 역시 코가 찡해 온다.

고추냉이와 겨자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이 자극적인 성분은 이소티오시안산알릴(allyl isothiocyanate)로 휘발성이 있기 때문에 입안에서 비강으로 올라와 코를 얼얼하게 만든다. 고추냉이나 겨자가 포함한 음식을 먹으면 이 성분을 감지하는 센서인 TRPA1이라는 단백질이 활성화되고 그 결과 우리는 자극을 느끼게 된다. 처음 이런 자극을 경험할 때는 당연히 거부감을 느끼지만 고추가 잔뜩 들어있는 음식과 마찬가지로 맛을 들이면 오히려 ‘이 맛에’ 먹게 된다.

사람의 TRPA1은 다양한 유해 물질에 반응해 그 자극을 뇌로 전달한다. 대표적인 예가 겨자나 고추냉이에 들어있는 이소티오시안산알릴이다. 흥미롭게도 인류는 식물이 만드는 유해 물질(식물 입장에서는 방어 물질)이 TRPA1을 통해 전달될 때 느끼는 통증을 쾌감으로 발전시켰다. ⓒ SuperPain

사람의 TRPA1은 다양한 유해 물질에 반응해 그 자극을 뇌로 전달한다. 대표적인 예가 겨자나 고추냉이에 들어있는 이소티오시안산알릴이다. 흥미롭게도 인류는 식물이 만드는 유해 물질(식물 입장에서는 방어 물질)이 TRPA1을 통해 전달될 때 느끼는 통증을 쾌감으로 발전시켰다. ⓒ SuperPain

TRPA1은 우리 몸 곳곳에 분포한 신경세포(뉴런)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이온통로 단백질이다. 즉 이소티오시안살알릴 같은 분자가 달라붙으면 단백질 구조가 바뀌면서 통로가 열려 세포 밖의 칼슘이온이 세포 안으로 들어오며 뉴런에서 신호가 발생한다. TRPA1은 이소티오시안산알릴 외에도 다양한 유해 자극 물질, 즉 몸에 해로울 수 있음을 알려주는 물질에 반응하고 때로는 염증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타이레놀이라는 상표명으로 널리 알려진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의 진통효과도 그 대사물이 TRPA1에 달라붙어 이온통로를 막아 통증신호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또 오메가3 지방산의 항염증효과도 그 대사물이 TRPA1에 달라붙어 염증신호가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TRPA1은 사람이나 생쥐 같은 포유동물뿐 아니라 초파리 같은 곤충은 물론 플라나리아(planaria) 같은 편형동물에도 존재한다. 이소티오시안살알릴 같은 유해 자극 물질에 반응하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도 꽤 있다. 예를 들어 초파리의 TRPA1은 사람과 달리 유해한 저온이 아니라 유해한 고온에 반응한다. 사람과 초파리, 플라나리아는 적어도 5억 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졌다. 즉 TRPA1도 그만큼 역사가 오래 된 단백질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TRPA1의 기능은 무엇이었을까?

차가운 민물에 사는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 Schmidtea mediterranea. 무척 원시적인 동물로 보이지만 뇌, 즉 중추신경계가 있다. 플라나리아의 TRPA1 역시 유해 물질에 반응하고 초파리처럼 유해한 고온에도 반응한다. ⓒ 위키피디아

차가운 민물에 사는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 Schmidtea mediterranea. 무척 원시적인 동물로 보이지만 뇌, 즉 중추신경계가 있다. 플라나리아의 TRPA1 역시 유해 물질에 반응하고 초파리처럼 유해한 고온에도 반응한다. ⓒ 위키피디아

초파리에 사람의 유전자 넣어도 정상 행동 보여

미국 노스웨스턴대 신경생물학과 연구자들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특이한 실험을 계획했다. 즉 TRPA1 유전자가 고장 난 초파리에 진화상 거리가 꽤 먼 플라나리아의 TRPA1 유전자 또는 거리가 더 먼 사람의 TRPA1 유전자 또는 넣어줬을 때 초파리는 어떤 행동을 보일지 알아보기로 했다.

연구자들은 먼저 플라나리아에서 TRPA1의 정확한 기능을 규명하기 위해 RNA간섭으로 이 유전자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 변이 플라나리아를 만들어다. 연구에 쓰인 플라나리아(학명 Schmidtea mediterranea)는 차가운 민물에 사는데 32도만 되도 치명적이기 때문에 그곳을 벗어나려고 한다. 따라서 24도와 32도로 나뉜 공간에 둘 경우 다들 24도 쪽으로 몰린다. 그러나 TRPA1 단백질을 제대로 못 만드는 변이 플라나리아에서는 이런 선호도가 사라졌다. 즉 플라나리아의 TRPA1는 초파리와 마찬가지로 유해한 고온 자극에 반응한다.

막단백질인 TRPA1의 구조로 지난 2015년 저온전자현미경(올해 노벨화학상 업적)을 이용해 규명됐다. 원래는 네 분자가 합쳐져 가운데 통로가 만들어지는데 그림에서는 마주보는 단백질 두 개만 나타냈다.  ⓒ 네이처

막단백질인 TRPA1의 구조로 지난 2015년 저온전자현미경(올해 노벨화학상 업적)을 이용해 규명됐다. 원래는 네 분자가 합쳐져 가운데 통로가 만들어지는데 그림에서는 마주보는 단백질 두 개만 나타냈다. ⓒ 네이처

한편 고추냉이의 자극 성분인 이소티오시안산알릴이 포함된 배지에 두면 벗어나려고 하는데, 변이 플라나리아에서는 역시 이런 행동이 보이지 않았다. 즉 플라나리아의 TRPA1는 예상대로 유해 물질의 자극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는 말이다.

이제 TRPA1 유전자가 고장 난 초파리에 플라나리아의 TRPA1을 넣어준 뒤 온도에 따른 선호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정상 초파리처럼 오래 있을 경우 치명적인 고온인 40도를 회피하는 행동을 보였다. 엄청난 진화상의 거리를 건너 뛰어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TRPA1 유전자를 넣어준 초파리는 어떤 행동을 보일까.

사람의 TRPA1은 유해한 저온에 반응하므로 40도에 둬도 벗어날 생각을 안 하는 변이 초파리에 사람의 TRPA1 유전자를 넣어준다고 해도 행동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뜻밖에도 사람의 TRPA1 유전자가 들어간 초파리도 정상 초파리처럼 40도인 장소를 피했다. 즉 사람의 TRPA1이 초파리에서 기능이 바뀌었다는 건 TRPA1이 온도 자체를 감지해 위험 신호를 전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동물이 유해한 저온이나 고온 같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세포 안에서 만들어지는 과산화수소(H2O2) 같은 활성산소에 주목했다. 즉 초파리를 40도에 두면 세포에서 활성산소가 만들어지고 이게 TRPA1에 달라붙어 이온채널을 열어 뉴런을 활성화해 뇌로 위험 신호를 전달한다는 말이다.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한 결과 정말 그런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5억 년 전 살았던 공통조상 동물은 TRPA1으로 다양한(열적, 기계적, 화학적) 유해 자극을 활성산소 발생을 통해 감지해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연구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 10월 16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최소한 5억 년 역사의 거부 반응을 극복하고 고추냉이의 톡 쏘는 자극을 즐기는 사람은 정말 특이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플라나리아의 TRPA1이 유해한 고온 자극 전달에 관여함을 입증한 실험이다. 왼쪽 정상 플라나리아를 24도인 왼쪽 아래에 두면 양 옆의 32도 쪽으로 거의 가지 않는다. 오른쪽 TRPA1 단백질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변이 플라나리아의 경우 온도를 감지하지 못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 네이처 신경과학

플라나리아의 TRPA1이 유해한 고온 자극 전달에 관여함을 입증한 실험이다. 왼쪽 정상 플라나리아를 24도인 왼쪽 아래에 두면 양 옆의 32도 쪽으로 거의 가지 않는다. 오른쪽 TRPA1 단백질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변이 플라나리아의 경우 온도를 감지하지 못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 네이처 신경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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