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2,2017

날씬한 몸에 대한 열망, 코르셋

<시시의 별로 장식한 엘리자베트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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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은 배와 허리둘레를 교정하기 위해 착용하는 여성의 속옷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극도로 졸라맨 그리스 크레타, 미케네의 남녀의 옷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래 전에는 남녀 구분 없이 허리를 졸라매기 위해 입었던 옷이다. 하지만 중세에 기독교적 금욕주의가 기승을 하면서 관능미, 성애, 욕망이 죄악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14세기경 코르셋은 속옷이 아니라 남녀가 모두 착용했던 허리에 꼭 끼는 소매 없는 조끼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16~18세기에 들어서 코르셋은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아래가 넓게 퍼진 후프 스커트 때문에 여자들만 입게 되었다. 코르셋은 허리를 강하게 졸라매기 위해 넓고 뻣뻣한 천으로 허리 모양 만든 다음 고래 뼈나 강철로 된 심을 넣어 만들어졌다.

19세기 초에 여자들의 옷이 엠파이어 스타일(프랑스 혁명 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소매는 넓은 퍼프 슬리브이며 스커트는 필요 이상으로 넓지 않고 곧게 흐르는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 1세의 비 조세핀이 즐겨 입었다)로 변하면서 가슴 부분부터 허리까지 죌 수 있게 길이가 길어졌다. 이 후 디자이너 샤넬이 코르셋을 입지 않아도 되는 옷을 만들면서 자연스러운 실루엣이 존중되었고 섬유 개발로 인해 합성 섬유로 만들어졌다. 현재 코르셋은 편하게 허리를 교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코르셋을 사랑했던 여인은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1세 황제의 아내 엘리자베트 황후다. 그녀는 시시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프란츠 요세프1세 황제는 엘리자베트의 언니와 약혼하기로 했지만, 황제는 16살의 시시를 보고 첫눈에 반해 약혼을 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엘리자베트는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바이에른 공주 루도비카의 차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공작의 딸이었지만 부모 모두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고 있어 당시로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수영, 승마, 체조를 즐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엘리자베트는 합스부르크 황가의 예의범절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국민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1865년, 255*133, 캔버스에 유채

<시시의 별로 장식한 엘리자베트 황후>-1865년, 255*133, 캔버스에 유채 ⓒ 빈 호프부르크 왕궁 소장

시시의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이 빈터할터의 <시시의 별로 장식한 엘리자베트 황후>다.

흰색의 무도복 차림의 황후는 등을 돌리고 서 있지만 얼굴은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가슴과 아랫단에 자수로 장식한 흰색 드레스의 풍성한 아랫단은 황후의 잘록한 허리를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흰색의 드레스는 검은색 머리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프라츠 사버 빈터할터<1805~1873>의 이 작품에서 황후의 허리까지 오는 검은 긴 머리를 별로 장식하고 있다.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별 모양의 장신구는 황후가 빈 최고의 보석상에 주문한 것으로 후에 이 장신구를 ‘시시의 별’이라고 불렀고 그 뒤 빈을 대표하는 패션이 되었다.

황후는 평소에 풍성한 검은 머리와 가는 허리를 자랑했는데 그녀는 유럽 황실에서 허리가 가장 가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19인치 가는 허리는 유지하기 위해 광적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했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또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꼭 끼는 코르셋을 항시 착용하고 있었는데 후에 꽉 끼는 코르셋 때문에 무정부주자 아나키스트 루이지루케니가 휘두르는 칼에 찔린 후에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왜들 이렇게 놀라나요?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라고 반문하며 쓰러졌다고 한다.

시시의 불행했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1955년 나왔으며 1998년에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호평을 받았다.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착용하는 코르셋은 왕실이나 부르주아 여성들만 즐겨 입었던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여성들도 허리를 강조하는 옷이 유행하자 즐겨 입었다.

-1896년경, 캔버스에 유채, 198*115

<M부인의 초상>-1896년경, 캔버스에 유채, 198*115 ⓒ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맨 스타일의 옷을 입은 평범한 여성을 그린 작품이 루소의 <M부인의 초상>다.

목에 갈색의 천으로 덧댄 검정색 옷을 입은 여인이 우산을 들고 정원에 서 있다. 정원에는 다양한 꽃들이 있다.

모델은 루소의 첫 번째 부인 클레망스다. 루소는 클레망스를 위해 직접 작곡한 왈츠를 명절 때마다 연주해 주었을 정도로 사랑했지만 그녀는 1888년 37세 나이에 결핵으로 죽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난 4명의 자녀 중 3명도 결핵으로 죽었다. 루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클레망스의 죽음을 애도했다.

클레망스가 입고 있는 어깨는 부풀리고 팔꿈치부터 좁아지는 소매는 1893년부터 유행하던 스타일이다.

원근법을 무시했던 루소는 인물의 그림자를 그리지 않았지만 다양한 종류의 꽃들, 고양이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또한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았다. 부인이 왼손에 들고 있는 우산은 당시 여성들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소품으로 부르주아 여성들의 유행했다. 하지만 그는 화사한 양산을 어두운 우산으로 대체했다.

여성의 근엄한 표정과 달리 루소는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루소는 거장들의 여성 초상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면서 보석을 그려 넣어 아름답게 치장하는 여성미를 강조했다.

정원에 피어 있는 백장미와 삼색제비꽃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며 검은색 드레스는 초상, 산사나무와 장미, 데이지 꽃은 결혼과 사랑을 암시하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물망초는 추억과 연결되었다. 따라서 정원의 꽃들은 루소의 기옥 속에 성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첫 번째 아내를 의미하는 것이다.

앙리 루소<1844~1910>가 세관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린 이 작품은 1896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해 비평가로부터 ‘건강한 여자의 손 모양새가 아니다’라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루소가 유명해졌다. 초상화에서 가장 그리기 힘든 부분이 손과 얼굴인데 루소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왼쪽 손만 그렸고 오른손을 감추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전시된 후 문제의 손가락을 다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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