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4,2017

도덕은 과학적으로 모순이 있을까?

과학서평 / 브레인트러스트

FacebookTwitter

부모는 왜 아기에게 애정과 관심을 듬뿍 담아 보살필까? 부모 자식 사이의 이 당연한 행동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과학자들의 특성이다.

신경학자들은 아이에게 쏟은 애정과 관심의 테두리가 배우자로 넓어지다가 친족과 동료들에게 확장해 나간 것이 인간을 사회적으로 만든 결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그리고 이같은 일련의 신경회로의 중심에는 ‘옥시토신’이 있다. 옥시토신은 사회성을 확장하도록 뇌를 조절하는 강력한 펩타이드이다. 옥시토신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더 관대해지고, 가족과 동료와 함께 있을 때 옥시토신의 농도는 높아진다.

동물들이 모여 서로 털을 골라주거나 쓰다듬는 행위는 옥시토신의 농도를 더욱 높여준다. 다시 말해 옥시토신은 기분좋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여기에서 ‘동물’을 ‘남여’로 바꿔놓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퍼트리샤 처칠랜드(Patricia Churchland)가 쓴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는 인간의 도덕성을 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책이다. 신경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생물학의 수단으로 도덕이라는 대상을 분석하고 따지면서 허점을 찾아냈다.

데이비드 흄이나 임마누엘 칸트를 비롯해서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이고 현대 철학자의 다양한 주장에 대한 반박은 저자가 도덕의 논리적인 허점을 과학적으로 얼마나 깊이 파고들면서 진지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예를 들어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져보았다. 이 말은 쉽게 이해가 가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퍼트리샤 처칠랜드 지음, 임지원 옮김 / 휴머니스트 값 18,000원 ⓒ ScienceTimes

퍼트리샤 처칠랜드 지음, 임지원 옮김 / 휴머니스트 값 18,000원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목적인 전쟁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 범죄자나 중독자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대접하는 것인가? 범죄의 동조자나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이다.

사업의 영역에서는 황금률이 적용되지 않는다. 직원을 해고하거나, 채무를 독촉하지 못하거나, 신용거래를 거절하지 못할 만큼 여린 마음은 사업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도덕은 모순이 많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이 책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도덕이 얼마나 상호 모순점이 있으며, 상대적인지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그렇다고 도덕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효용이 없다거나 허상이거나 집단적인 속임수의 결과로 나타난 미망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줄기세포 연구를 어떻게 규제해야 할까? 같이 점점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안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려면 ‘지식이 무지 보다 낫다’는 온건한 결론을 내릴 줄도 안다.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을 비롯해서 생물학과 뇌과학 지식으로 인간을 다시 생각하는 근본적인 질문들도 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

도덕이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은 인간은 과연 무엇이냐와 유사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암기력과 계산력을 뛰어넘는 것이 확인되면서, 인간의 참 모습은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브레인트러스트도 그런 면에서는 비슷하다. 과학적으로 따져보니 도덕은 사회환경이나 관습에 따라 서로 다르기도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생물학과 신경과학의 메커니즘이라는 인과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과정의 하나로 설명이 된다.

도덕이 가진 논리적인 모순과 약점은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아버지를 고발하러 온 에우티프론과 나눈 대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이 선한 것인가?”라고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신들이 선하다고 말하는 것이 선한 것이다.”라고 에우티프론은 대답했다.

소크라테스의 다음과 같은 답변은 상대방의 잘못된 생각을 정확히 지적한다.

무엇인가가 선한 이유는 신들이 그것이 선하다고 말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이 원래 선하기 때문에 신들이 선하다고 말한 것인가?

신들이 말했다는 이유로 선하다면, 그리스의 여러 신들 중 잔인한 복수의 신들의 주장도 선한 것이라는 모순에 빠진다. 선한 것이라서 선하다고 말했다면, 신들은 신이 아니라 단순한 전달자이다. 에우티프론은 말문이 막혔다.

이 책의 서문을 쓰면서 저자는 중세의 ‘시련에 의한 재판’(trial by ordeal)을 거론했다.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을 물에 빠뜨리거나, 뜨거운 불위를 걷게 한다. 죄가 없다면 신이 개입해 구해줄 것이고, 죄가 있는 사람만이 물속에 가라앉거나 불에 델 것이다.

마녀에 대한 시련재판은 더욱 가혹하다. 마녀혐의를 받은 여자를 물에 빠뜨렸을 때 물속에 가라앉아야 마녀가 아니고, 물위에 떠오르면 마녀로 간주해서 장작불로 끌고 갔다.

위키피디아는 시련 재판은 후에 배심원재판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시련재판을 직접 체험하기로 했다. 저자가 친구의 지갑을 훔쳤다고 친구가 자신을 거짓으로 고발하게 했다. 그리고 저자는 난로에 손을 댔다. 물론 화상을 입었다.

진실을 알기 원하는 저자의 열정이 이 책을 ‘처칠랜드가 다시 한 번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끌 것이다’는 평가를 받게 했을 것이다.

퍼트리샤 처칠랜드는 ‘도덕성의 기원을 찾는 신경철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