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2,2017

행복해지려면 시간을 사라!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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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젊은 투자은행가와 사업가, 변호사들은 즐길 시간도 없는 재산을 모으느라 휴가도 반납한 채 하루에 열네 시간을 일한다. 이런 행동은 경제학의 설명을 초월한다. 강력한 사회적, 문화적 힘이 일에 대한 종교에 가까운 믿음의 기초를 이룬다.

- 크레이크 램버트,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나라에서 소득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심각해지고 있다. 독일에서 한국, 미국까지 사람들은 소득이 높을수록 더 심한 시간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 애슬리 윌랜스 외 ‘미국립과학원회보’ 논문에서

과거에 비해서 우리는 분명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음에도 웬일인지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답변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유력한 설명이 ‘상대적인 빈곤감’이다. 10년 넘게 20인치 브라운관TV를 보다가 이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42인치 LED TV를 샀는데 옆집 사람은 ‘절대 화질’을 자랑하는 65인치 OLED TV를 샀다는 걸 알았을 때 심리다. SNS에서 아는 사람들이 좋은데 가서 찍어 올린 ‘인증사진’을 보며 ‘좋아요’를 누르다보면 마음이 울적해진다.

그런데 지난해 번역 출간된 미국 ‘하버드 매거진’의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램버트의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을 보면 현대인들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는 게 꼭 남과의 비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다보니 늘 시간이 부족한 ‘시간 스트레스(time stress)’에 시달리고 그 결과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은 임금을 받는 공식적인 노동이 아니라 우리가 노동인지 인식하지도 못한 채 행하는 노동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 사이 사회에서 그림자 노동의 비율이 높아져 이제 사람들의 행복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예를 들어 옛날에는 카페에 가면 종업원이 메뉴판을 갖고 오고 주문한 음료를 가져오고 손님은 테이블에 잔을 두고 나가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카페에서 손님이 줄을 서 주문을 하고 영수증과 함께 받은 ‘진동벨’이 울리면 음료를 받아오고 나갈 때는 선반에 올려놓고 쓰레기는 ‘분리수거’해야 한다. 심지어 미국계 유명 카페는 진동벨도 주지 않아 몇 분 동안 ‘언제 내 주문번호를 부르나?’라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인터넷뱅킹과 셀프주유소, DIY가구 등 ‘이게 그림자 노동이었어?’라고 새삼 깨닫게 되는 예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직장에서도 예전에는 비서나 사무보조직원 등 업무 편의를 도와주는 직원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컴퓨터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업무 관련 각종 소프트웨어의 사용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하루 24시간은 불변인데 내가 직접 처리해야할 일들이 야금야금 늘고 있으니 시간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간 스트레스가 행복감을 낮추는 주원인이고 따라서 행복감을 높이려면 번 돈으로 물건을 살 게 아니라 시간을 사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 ScienceTimes

시간 스트레스가 행복감을 낮추는 주원인이고 따라서 행복감을 높이려면 번 돈으로 물건을 살 게 아니라 시간을 사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 ScienceTimes

 

백만장자 40%는 시간 사는데 돈 안 써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8월 8일자에는 시간 스트레스가 행복감을 낮추는 주원인이고 따라서 행복감을 높이려면 번 돈으로 물건을 살 게 아니라 시간을 사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애슐리 윌랜스 교수와 동료들은 사람들이 시간을 구매하는 행위와 행복도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시간을 어떻게 사지?’라고 의아해할 독자도 있겠지만 사실 거창한 개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사한 집에 벽지를 새로 바르고 대청소를 해야 할 때 직접 하는 대신 사람을 쓰면 ‘시간을 사는’ 행동이다. 즉 내가 시간을 내서 해야 할 일을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이 하게 하는 행위라는 말이다. 셔츠를 직접 빨고 다리는 대신 세탁소에 맡기는 것도 시간을 사는 행동이고 명절 차례상에 올릴 음식들을 직접 장만하는 대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연구자들은 미국과 캐나다, 덴마크, 네덜란드에 사는 6개 그룹 60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 한 달 동안 시간을 산 적이 있는가를 조사했고 2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의 평균 구매액은 148달러(약 16만 원)이었다. 시간을 산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72%)에 비해 시간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행복도를 비교한 결과 시간을 산 적이 있는 사람이 좀 더 높았다. 즉 시간을 사서 시간 스트레스를 덜 받았고 그 결과 행복도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 관계를 좀 더 직접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캐나다 밴쿠버의 직업이 있는 성인 98명을 대상으로 특이한 비교실험을 진행했다. 즉 두 차례에 걸쳐 40달러씩을 준 뒤 한 주는 주말에 물건을 사게 하고 한 주는 주말에 시간을 사게 했다. 그리고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물건을 샀을 때보다 시간을 샀을 때 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시간을 샀을 때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줄어들어 행복도가 높아짐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앞의 6개 그룹 6000여 명 가운데 한 그룹인 네덜란드의 백만장자 800여 명의 경우 그렇게 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사이 시간을 산 적이 없다는 사람이 40%나 됐다. 그리고 뒤의 40달러 실험의 경우도 참가자 가운데 2%만이  ‘마음대로 써도 될 경우’ 시간을 사는데 쓰겠다고 답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많은 문화에서 특히 여성들이 시간을 살 여유가 있음에도 집안일을 스스로 다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직장과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들이 특히 시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여성의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삶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고 있다”며 “시간 절약 서비스를 활용하는 게 퇴근 후 집안일의 부정적 효과를 줄이는 방법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남편들도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 아니라면 아내들의 시간 구매에 토를 달지 말아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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