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4,2017

나이 들면 새벽잠 없어지는 이유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26

인쇄하기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스크랩
FacebookTwitter

사랑, 돈, 명예.

다들 우리 삶에서 중요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 세 가지를 다 갖는다는 건 욕심이고 이 가운데 하나라도 얻었다면 복이라며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나 혼자 잘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몸도 뜻대로 안 되는 게 우리네 삶인 것 같다. 인생의 3분의 1을 보낸다는 잠도 그렇다. 자면 안 되는데 잠이 쏟아지는 때도 있고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는 경우도 있다. 강의를 듣거나 회의를 하다 조는 건 그렇다지만 최근 버스운전사들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있다.

반면 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 컨디션이 좋아야 하는데 잠이 안 와 걱정을 한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여행지나 출장지에서도 잠을 못 이뤄 고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수면의 문제가 이런 일회적인 경우가 아니라 일상이 된다. 즉 잠의 패턴이 바뀌고 잠의 질도 떨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일찍 잠자리에 들고 그에 비례해 일찍 눈이 떠진다. 물론 그 사이에도 언뜻언뜻 깨는 경우도 잦다. 오십이 내일모래인 필자도 새벽 서너 시쯤 눈이 떠져 더 이삼십 분 뒤척이다 포기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밤의 99.8%는 누군가 깨어있어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 7월 12일자에는 나이 들어 나타나는 수면 패턴 변화가 노화에 따른 문제라기보다는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과 탄자니아의 공동연구자들은 현대 문명과 동떨어져 여전히 수렵채취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탄자니아 하드자 부족 사람들의 수면패턴을 조사했다. 이들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대부분의 기간을 보낸 형태로 추정되는,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즉 낮에 남자들은 사냥을 가고 여자와 아이들은 채집을 하고 밤에는 가까이 모여 잠을 잔다.

연구자들은 20~60세인 건강한 어른 33명의 팔목에 몸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시계형태의 센서를 차게 한 뒤 20일 동안 수면 패턴을 조사했다. 즉 센서의 움직임이 미미하면 잠이 든 것이고 커지면 잠이 깬 것으로 판단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밤 10시가 좀 지나 잠이 들었고 아침 7시 무렵이면 깼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저녁 8시면 잠이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1시가 지나서도 깨어있는 사람도 있고(물론 전기가 없다) 아침 여섯시 이전에 깨는 사람도 있고 8시까지 자고 있는 사람도 있다.

탄자니아 북부의 하드자 부족은 여전히 수렵채취인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하드자 남성이 임팔라 가죽을 깔고 낮잠을 자고 있다. 최근 이들의 수면 패턴을 조사한 결과 한밤중에도 모두가 자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David Samson

탄자니아 북부의 하드자 부족은 여전히 수렵채취인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하드자 남성이 임팔라 가죽을 깔고 낮잠을 자고 있다. 최근 이들의 수면 패턴을 조사한 결과 한밤중에도 모두가 자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David Samson

그런데 놀랍게도 조사한 33명 모두가 잠든 시간은 전체 220시간(20일을 합친 것이므로) 가운데 18분에 불과했다. 즉 밤 시간의 99.8%에서 최소한 한 명 이상은 깨어있었다는 말이다. 또 50대 60대인 사람들은 20대 30대인 사람들에 비해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즉 나이에 따라 잠드는 시간대가 어긋나고 중간 중간 깨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결국 동시에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게 된 것이다. 한편 조사한 사람들은 다들 건강했고 수면과 관련해 특별한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 수십 명이 모이면 이처럼 한밤중에도 누군가는 깨어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연구자들은 이 현상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선택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즉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의 조상과 갈라져 안전한 숲을 버리고 사방에 맹수가 득실대는 사바나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특히 밤이 위험해졌다. 따라서 밤에 모두 깊이 잠이 들면 안 되므로 이처럼 잠자는 타이밍과 잠의 깊이가 변하는 패턴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누군가는 불침번을 서는 셈이 됐고 그 결과 그런 집단은 생존이 유리해졌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잠드는 시간대가 앞당겨지고 어쩌면 자주 깨는 것조차도(나이 든 사람은 사냥이나 채집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하므로 잠의 질이 떨어져도 집단의 운명에는 별 영향이 없다) 이런 자연선택의 결과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수면 질 저하 조부모 가설(poorly sleeping grandparent hypothesis)’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수렵채취 생활을 버린 지가 언젠데 우리 몸은 아직까지도 별로 바뀌지 않았으니…’ 인류의 게놈은 여전히 구석기시대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설정돼 있다는, 즉 최근 변화를 반영할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좀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처럼 우리가 때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들이 원래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설명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새벽에 깨 잠이 안 올 때 밖에서 고양이 소리라도 들리면 ‘옛날엔 사자 소리였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받아들여야겠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