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운송 기사인 한 모 씨(42)는 큰 사고를 당했다. 새벽에 시골 도로를 달리다가 화물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논두렁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것.
굴러 떨어지는 순간에도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나를 발견하지 못할텐데’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사고의 충격으로 인해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후 깨어나 보니 병원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과 그 옆에 서있는 119 구조대원을 발견하고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적한 시골 도로에서, 그것도 모두가 잠이 든 새벽녘에 사고를 당했는데 누가 신고를 했을까?’하고 궁금해 하는 한 씨에게 119 대원은 “신고자는 바로 화물차에 탑재되어 있는 ‘e-Call’ 서비스”라고 알려줬다.
미래의 어느 날에 일어날 일을 가상으로 꾸며 본 이야기지만, 아마도 3~4년 뒤면 현실에서 이 같은 상황을 직접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50억 원을 들여 긴급 구난체계 서비스인 ‘e-Call’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한 ICT 서비스
e-Call 서비스는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스마트폰이나 차량에 내장되어 있는 센서가 사고를 자동으로 인지하여 관제센터로 사고 정보를 전송함으로써, 신속하게 구조할 수 있도록 만드는 ICT 시스템을 말한다.
오지 같은 인적이 드문 지역이나 새벽 시간, 또는 사고로 의식을 잃어 신고를 할 수 없을 때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 블랙박스 등에 탑재되어 있는 센서가 이를 자동으로 인식하여 신고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신고 내용은 119 구조대는 물론, 차량 제작사와 경찰서 등에도 즉각 통보되어 사고발생 이후 골든타임 내에 인명이 구조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뿐만 아니라 보험사에도 동시에 통보되어 신속하게 사후처리를 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대중화가 시작되었지만, 교통안전과 관련한 현재까지의 통계조사를 살펴보면 여전히 교통 후진국에 가까운 상황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 수준이며, 교통사고 대응체계도 아직은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인명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e-Call 서비스의 도입이 시급한 이유다.
그동안 정부는 이런 교통안전 분야의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해 ‘교통사고 사상자 절반 줄이기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고, 그 일환으로 지난 2013년부터 e-Call 서비스에 대한 R&D 및 사업 기획을 여러 부처에서 공동으로 진행하여 왔다.
현재 시스템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관계자는 “e-Call 서비스를 구축하게 되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수의 2~3%, 즉 연간 100~150 명의 사망자를 줄일 수 있고, 400∼600억 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의 감소 효과도 볼 수 있다”라고 기대했다.
24시간 전국 어디서나 가능한 한국형 e-Call
우리보다 훨씬 빨리 e-Call 서비스 도입을 검토한 해외 선진국들은 어느 수준까지 와있을까? 이에 대해 교통진흥공단의 관계자는 “e-Call 서비스는 그 주체에 따라 국가주도와 민간주도로 구분된다”라고 전하며 “EU나 러시아가 국가 주도의 e-Call 서비스를 준비하는 대표적인 국가라면, 미국은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인 GM이나 포드의 일부 자동차에는 e-Call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는데, 사고 및 긴급 상황 발생 시 해당 서비스 콜센터로 신고 연락이 가도록 설정되어 있다.
반면에 국가가 e-Call 서비스를 주도하고 있는 EU나 러시아는 각각 2018년과 2017년에 의무시행을 앞두고 있다. EU는 2018년 4월부터 의무적으로 e-Call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며, 러시아는 내년에 모든 자동차를 대상으로 e-Call 서비스를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보다 한발 늦게 서비스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미래창조과학부와 국토교통부가 공동으로 관련 연구개발과제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의 관계자는 “e-Call 서비스는 사고정보를 수집하는 ‘센서 기술’부터 시작하여 사고정보를 전송하는 ‘통신기술’과 사고상황을 관제하기 위한 ‘네트워크 운용기술’까지 다양한 기술이 총 망라된 서비스”라고 정의하며 “새로운 기술이라 할 수는 없지만, 신속하고 신뢰성 높은 사고 상황 감지와 사고처리 관제를 위해서는 이들 기술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8월에는 e-Call 서비스의 국내 도입과 관련한 정책현안들을 수렴할 ‘e-Call 포럼’의 창립 기념 세미나가 열려 업계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당시 세미나에서 ‘한국형 e-Call 서비스’에 대해 발표한 한국지능형교통체계협회의 조용성 기술표준센터장은 “24시간 전국 어디서나 전 차량이 자동으로 사고를 판단하여 사망사고 및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한국형 e-Call’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2019년 6월까지 e-Call 시스템의 플랫폼과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실증사업을 통해 필요성을 부각시켜, 국내에서도 긴급 구난체계 시스템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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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1-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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