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박사에 의해 최초로 보고된 이 질병은 초기에는 서서히 발병해 진행 경과가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주로 기억력에서 문제를 보이다가 점차 언어기능, 판단력 등 다른 인지기능에 이상을 동반해 나중에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많은 나라들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이로 인한 퇴행성 질환을 앓는 사람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고 오직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발병속도는 다소나마 늦추는 정도였기에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이 매우 컸다.
단백질 혈액 속 농도로 질병을 진단하다
국내 연구진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복잡한 과정 없이 오직 단백질의 혈액 속 농도로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영수 KIST 뇌과학 연구소 박사팀이 알츠하이머 원인 단백질의 혈액 속 농도로 질병을 진단하는 연관성을 밝힌 것이다.
"알츠하이머는 50세 이후 발병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대표적인 노화 질병입니다. 저희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혈액으로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인간의 뇌에서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이 치매의 정도에 따라 혈액에 다른 농도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베타아밀로이드' 로 불리는 해당 치매유발 단백질은 뇌 안에서 비이상적으로 과발현 될 때 신경세포를 파괴해 기억을 지워버리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 치매유발 단백질은 환자 사망 후의 뇌조직 검사나 고가의 뇌영상 임상시험 과정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를 진단하는 주요 척도로 사용돼 왔습니다."
김영수 박사가 언급했듯 알츠하이머 치매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서 지나치게 증가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타아밀로이드 농도가 높아지면 뇌의 신경세포가 파괴되고 결국 기억이 지워지게 된다. 그래서 뇌조직 검사나 단백질 분포 확인이 가능한 PET 영상 촬영 등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진단할 때 베타아밀로이드는 질병 진단의 주요한 척도, 즉 바이오마커로 사용된다.
"저희 연구팀은 베타아밀로이드가 특이하게 LRP1 이라는 단백질을 통해 뇌에서 혈액으로 이동하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혈액 내 베타아밀로이드의 존재여부는 국제적으로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뇌에서의 베타아밀로이드가 증가하는 것이 LRP1을 통해 혈액에서 농도 변화로 반영될 수 있는지 불분명하여 혈액 진단은 그동안 논쟁이 됐죠. LRP1은 뇌혈관 장벽에 존재하는 수용체로, 뇌 및 뇌척수액에 있는 베타아밀로이드를 혈액으로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뇌에서 떠도는 베타아밀로이드에 붙어 뇌혈관장벽을 투과할 수 있도록 채널 역할을 하는 것이죠."
연구팀은 생쥐의 뇌에 베타아밀로이드를 다양한 분량으로 삽입해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킨 후 실험을 진행했다. 베타아밀로이드를 삽입한 후 혈액을 뽑아 베타아밀로이드의 양을 분석, 뇌 안의 베타아밀로이드 농도가 올라가면 혈액 속의 베타아밀로이드도 비례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혈액 속 베타아밀로이드의 바이오마커 역할에 대해 가능성으로만 제기된 주장을 과학적으로 연관성을 밝힌 셈이다.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단백질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가 혈액으로 이동이 가능해 혈액검사로 검출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병원 및 기업과의 중개연구와 임상실험을 통해 기술이 상용화되면 병원에서 쉽고 빠르게 치매를 진단할 수 있어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보입니다."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 진단 가능
알츠하이머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현재 굉장히 복잡하고 번거롭다. 때문에 이를 보다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과 기술에 대해 많은 나라들이 연구를 진행 하고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을 혈액을 채취해 검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혈액 속에 베타아밀로이드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연령이 비슷한 정상인과 농도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돼 왔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를 확진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없고 연령이 비슷한 정상인도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 환자일 수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식은 뇌와 혈액 간 베타아밀로이드 농도의 연관관계를 규명할 수 없었습니다. 즉, 찬반이 분분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죠."
이러한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 김영수 박사팀은 베타아밀로이드의 발현 정도외 혈액에서의 변화를 측정해 연관관계를 확실히 규명하는데 연구 초점을 맞췄다. 그는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뇌에서 베타아밀로이드를 많이 만들어 낸다"며 "베타아밀로이드의 과발현을 뇌에서 인위적으로 유발하고 혈액에 그 변화가 나타나는지 측정하면 연관관계를 확실히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임상실험을 할 수 없는 만큼 정상 마우스의 뇌 속에 베타아밀로이드를 다양한 농도로 주입해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 그 후 혈액을 채취해 해당 단백질을 정량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농도와 뇌 안의 베타아밀로이드 변화 추이를 비례적으로 반영한다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초기 환자의 경우도 진단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김영수 박사는 "이번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알츠하이머의 초기 검진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일반 건강 검진에서 채취하는 혈액으로 알츠하이머 치매 예측을 할 수 있는 임상 진단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 "초기 환자의 진단 뿐 아니라 치매의 치료 정도를 모니터링 하는 것도 혈액 검사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치매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번 연구에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바로 상용화 시기다. 이에 대해 김영수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2년 전 발족한 KIST 개방형 연구사업단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혈액 진단 나노바이오 센서 시스템 개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혈액에 매우 극소량으로 존재하는 베타아밀로이드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2016년부터 임상 허가 신청을 진행하고 대규모 임상 시험을 거친다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김영수 박사팀의 이번 연구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핵심기술은 바로 알츠하이머 치매의 유발 방법과 확인 기술이다. 연구에 따르면 마우스의 뇌에 베타아밀로이드를 적정량 주입할 경우 수일 내에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혈액 검사에 앞서 베타아밀로이드 주사를 받은 마우스들은 다양한 기구 안에서 기억력 테스트를 거쳐 치매가 생겼는지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 6개월, 실질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데 4주가 걸린 연구다. 김영수 박사는 "이번 연구는 대한민국의 대학과 연구소, 기업의 모든 전문가가 모인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의 어벤저스(Avengers) 덕분"이라며 같이 연구한 동료 연구진에 모든 공을 돌렸다.
"작년 봄 KIST에서 21세기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연구 사업을 공모했습니다. 거기서 최초로 선정된 미션이 혈액을 사용한 치매 진단이었습니다. 공동 사업단장으로, 먹는 내시경의 개발과 상용화를 이룬 김태송 단장님과 미국 신경학회 회장을 역임한 알츠하이머 치매 연구의 대가 데니스 최(Dennis Choi) 소장님이 선정됐습니다. 곧바로 대한민국의 대학, 연구소, 기업에서 알츠하이머 치매와 임상 진단기기 전문가 분들이 모두 모였죠. 그 결과 지금의 연구결과가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연구성과를 얻기 위해 그는 실로 많은 고민과 공부를 '병행' 했다. 김영수 박사는 "KIST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기에 실무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다"며 "다만 전 세계적으로 아직 상용화된 적이 없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야하기 때문에 스스로 연구 방향을 개척하기 위해 많은 공부와 고민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국가의 연구비를 받고 수행하는 만큼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수많은 시뮬레이션과 브레인스토밍을 이어갔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다시 밤에 잠들 때까지 말이죠. 그동안 이렇게 한 가지 목표를 두고 고심하며 머리를 쥐어뜯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해당 연구결과는 앞으로 알츠하이머 치매의 조기 진단용 혈액 분석 시스템 개발로 이어질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이 연구가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의료 기관에서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등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또한 환자의 조기 발견을 통해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그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더욱 길게 누리게 할 수 있다. 또한 확실한 환자군 분류를 가능케 하는 만큼 치료 신약 개발연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사회 문제로 언급되는 치매 환자의 수를 감소시키고 직간접 의료비를 절감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혈액 속의 베타아밀로이드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척도다' 라는 병리학적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저희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혈액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많은 연구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11-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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