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로 바람을 쐬는 것과 시원한 물줄기를 맞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시원할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선풍기 쪽이 더 시원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뚱맞게 바람과 물을 비교한 까닭은 바로 냉각 방식의 일종인 공랭식과 수냉식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바람보다는 물이 열을 식히기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냉각이 필요한 모든 과정에 항상 수냉식을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매사에 수냉식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PC나 스마트폰처럼 물이 조금만 내부 시스템으로 흘러들어가도 고장이 나거나 오류를 일으키는 디지털 기기의 경우, 수냉식은 적용하고 싶어도 적용할 수 없는 냉각방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그동안 공랭식으로만 사용되던 디지털 기기의 냉각 방식이 미국의 과학자들에 의해 수냉식으로 변경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었다고 최근 보도하면서, IT 분야의 획기적인 냉각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전문 링크)
냉매로 반도체칩 발열 직접 떨어뜨려
최근의 디지털 기기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발전하고 있는 성능에 비해 이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골칫거리가 있는데 바로 발열 문제다. 발열은 핵심 반도체 소자의 수명을 줄이고, 에너지 손실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발열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는 폐쇄적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에서 대부분의 열이 발생되는 ‘프로세서’는 내장되어 있는 반도체칩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히트 스프레드(heat spread) 금속판으로 덮여있다.
히트 스프레드란 컴퓨터 부품에서 발생하는 열이 한 곳으로 집중하는 것을 막아서 열을 분산하는 금속판을 말한다. 이 같은 금속판을 설치하는 것이 충격에 약한 반도체칩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발생하는 열이 내부에 갇히기 때문에 냉각 효율을 떨어뜨리게 만든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열이 발생되면 발생될수록 칩 내부의 저항은 커지기 때문에 전기를 더 소모하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열을 만들게 되고, 이를 잡기 위한 더 큰 냉각장치가 필요해지면서 끊임없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발생하는 열을 조기에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이면서도 소형인 냉각장치가 개발된다면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것은 물론 기기의 수명 연장도 가능해진다. 디지털 기기는 높은 열에 노출될수록 수명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냉각장치의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 공간만큼 더 높은 밀도의 시스템 개발이 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 조지아공대의 연구진이 반도체칩을 냉매로 직접 열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의 냉각 기술을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각광받을 일체형 미세 유체 냉각 기술
조지아공대의 무한나드 바키르(Muhannad Bakir) 교수와 토마스 사베이(Thomas Sarvey)는 우선 반도체칩을 덮고 있는 히트 스프레드를 제거하고, 칩 표면에 냉매가 흐를 수 있는 직경 약 100마이크로미터(㎛)의 미세한 관을 연결했다.
이 냉매관은 마치 온돌방의 바닥에 까는 열수 보일러 관처럼 생겼는데, 난방을 하는 대신에 냉방을 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관은 칩 내부에 탑재된 트랜지스터 같은 소자와 거리가 가까워 이곳에서 발생하는 열을 억제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관에 냉매가 되는 20℃ 온도의 물을 분당 약 150ml 정도 흐르게 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공랭식 방식에서는 온도가 60℃까지 올라갔던 반도체칩이, 24℃ 정도를 유지하면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전용처리장치(GPU)같이 핵심 칩의 냉각 문제로 인해 시스템 부피를 줄이기 어려웠던 기존 소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공랭식 냉각 방식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큼직한 방열판이나 쿨링팬이 해당 칩 위에 장착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 콤팩트한 크기의 수랭식 냉각 시스템이 장착된다면 시스템 부피는 기존보다 대폭 줄어들 수 있게 된다. 이 외에도 부가적으로 전력 소모가 줄어들고, 반도체칩의 수명이 연장되는 이점까지 얻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바키르 교수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디지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발열 문제로 인해 개발이 어려웠지만, 우리 연구진이 그런 장벽을 제거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하며 “앞으로 이번 경우처럼 ‘칩 표면에 적용되는 일체형 미세 유체 냉각 기술’이 차세대 디지털 기기 개발에 있어 핵심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수냉식 방식이 냉각 효율은 뛰어날지 몰라도 안전성과 경제성 면에 있어서는 아직 문제가 많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냉매가 조금만 새도 칩이 파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전성면에서 더 보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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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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