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 발전의 성과에는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70년간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해 온 과학기술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대표성과 70선을 선정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이번 선정결과를 연대별로 7회에 걸쳐 소개한다.
광복 이후 한국은 선진국 과학기술을 모방하면서 추격 형태의 연구개발(R&D)을 맹렬히 추구해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한국은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개발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 분위기로 잔뜩 부풀어있던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쳤다. 1997년 11월 IMF 사태가 터진 것. 경제개발 과정에서 많은 외국 자본을 썼으나, 그 빚을 갚지 못해 터진 사고였다.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화폐와 주식 가치가 바닥을 쳤다. 금융 기관이 망했고, 이어 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실업자 또한 많아져 사회는 점점 더 불안해져만 갔다. 한국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속전철·고등훈련기 등 한국형 기술 러시
외환 보유고가 바닥난 결정적인 이유는 수출 부진 때문이었다. 믿었던 컴퓨터, 메모리 칩 등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외환 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과감한 개혁정책을 펼쳤다.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정부 노력에 화답했다. 이 과정을 통해 2000년대 들어 한국은 또 다시 경제를 회복할 수 있었다. 홍역을 치룬 과학기술계도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R&D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결과 선진국 제품들과 경쟁이 가능한 한국형 기술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국민들에게 첫 번째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곳은 군수 분야였다. 2002년 11월 8일 한국 기술로 만든 고등훈련기 ‘T-50'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종사는 'F-16' 비행 450시간을 포함해 총 2500여 시간의 비행기록을 갖고 있었던 공군 중령이었다. 그는 새로 만든 비행기를 타고 가볍게 하늘을 난 후에 가볍게 지상에 착륙했다. 국내 최초의 고등훈련기 ‘T-50'의 초음속 비행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훈련기를 제작한 업체는 한국한공우주산업(KAI)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KAI는 3개월이 지난 2003년 2월19일 공개 비행실험을 한다. 그리고 초음속 비행에 성공을 거둔다. 공개적으로 한국인이 만든 항공기의 초음속 비행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후 KAI는 1146번의 추가 시험비행을 시도한다. 또 내구연한 25년을 검증하기 위해 내구성 시험을 완료한 후 2005년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이로써 한국은 자체 기술로 초음속 비행기를 개발한 12번째 국가가 되었다.
한국형 원전 'ARP-1400'으로 세계 시장 진출
비행장에서 비행 실험이 이어지는 동안 철도 위에서는 ‘한국형 고속열차’ 시험 운행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1996년부터 고속전철 국산화 및 수출 산업화를 목표로 R&D에 착수했고, 2002년부터 시험운행에 들어간 상태였다.
한국형 고속철은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최고 속도 350km/h로 설계·제작되었다. 경부고속철도를 위해 프랑스 TGV의 기술을 이전받아 제작된 고속열차 ‘KTX(Korea Train eXpress)’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공동 주관아래 (주)로템과 현대중공업 등이 개발에 참여했는데 2002년 3월 공개된 이후 8월부터 시험운행에 들어갔다. 2003년 9월엔 300km/h 시험운행을 달성했으며, 2004년 12월 목표시속 350㎞를 돌파했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일반적인 고속철의 기준으로는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태리에 이어 5번째 고속철 기술 보유국이 되었다. 최고속도로는 일본, 독일, 프랑스에 이어 4번째를 기록했다. 한국형 고속전철이 탄생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등장한 국내 기술로 한국형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주)는 1992년부터 2300억 원을 투입, 한국형 원전 ‘APR-1400'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 원전은 미국의 ABB-CE사의 ’시스템80‘을 모델로 국내 원전기술을 적용해 만들었다.
이전에 적용했던 ‘OPR-1000’ 모델과 비교해 발전용량이 1000㎿에서 1400㎿로 커졌다. 가동 수명은 40년에서 60년으로 늘었다. 한국은 이 기술을 발전시켜 2009년 한전 컨소시엄을 통해 UAE와 원전 수출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국내 원전에도 이 모델을 적용했다.
삼성 ‘낸드 플레시 메모리’로 세계 시장 석권
공공 부문과 함께 민간 부문에서도 활발한 기술자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성과로 휴대인터넷 ‘와이브로(WiBro)가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와이브로 시제품을 개발하고, 2004년 12, 13일 대전 ETRI에서 시연회를 가졌다.

‘와이브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2.3GHz대역의 주파수를 이용해 시도한 핵심 IT 기술이다. 휴대폰, 스마트폰의 3G, 4G 이동통신처럼 언제 어디서나 이동하면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순수한 국내 기술로 와이브로 개발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다가오는 스마트폰 시대에 막강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최초 행진이 이어졌다. 2004년 9월 삼성전자가 개발한 반도체 ‘낸드 플래스 메모리(NAND Flash Memory)’가 그것.
삼성이 개발한 이 메모리 반도체는 8기가 용량이었다. 1기가가 10억 개를 의미하니까 80억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반도체를 말한다. 하나의 반도체로 신문 6만4000장의 해당하는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을 갖고 있었다.
이 기술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기술개발에 따라 그 용량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8기가 낸드 플레시의 용량을 16기가를 키울 경우 신문지 100만장 이상, 단행본 2만권이상, DVD級 영화 10편, MP3 음악파일 4,000곡을 저장할 수 있었다.
삼성은 ‘낸드 플레시 메모리’ 개발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탄탄함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현재 삼성은 반도체 업계 최대 용량인 128GB 용량의 ‘3비트(Bit) 낸드플레시’ 기반 스마트폰용 내장메모리를 양산 중이다.
기계소재 분야에서도 놀라운 공법이 탄생하고 있었다. 포스코의 ‘파이넥스(Finex)’ 공법이 그것이다. 이 공법은 석탄과 철광석을 사전에 가공하지 않고 사용하는 코렉스 공법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기존의 용광로 공법은 가루형태의 철광석과 고급 유연탄을 덩어리로 뭉친 다음 용광로에 집어넣어서 녹였다. 반면 파이넥스 공법은 철광석과 유연탄을 덩어리로 만드는 과정 없이 가루 형태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한국형 이지스함 건조
때문에 파이넥스 공법을 적용하면 철광석 소결공장과 석탄 코크스공장이 필요 없어 경제성은 35%까지 높아지고 공해물질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공법이었다. 포스코는 2007년 5월 공법을 적용, 150만t 규모의 설비를 완공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당시 선진국들 역시 새로운 공법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일본의 ‘DIOS법’, 호주는 ‘HISMELT법’, 유럽은 ‘CCF법’ 등의 대체 공법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상용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포스코만이 신기술 상용화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한국의 철강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말해죽 있었다. IMF로 인해 무너져 있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되살리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한 독창적 성공사례였다.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으로 생산시스템을 혁신하고 있을 때 울산 현대중공업은 한국의 첫 번째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을 건조하고 있었다. 이지스(Aegis)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딸 아테나에게 준 방패를 말한다.
어떤 창이든 다 막아낼 수 있다는 방패를 말하는데 이 방패처럼 어떤 공격도 다 막아낼 수 있는 함정이 이지스함이다. 강력한 레이더 시스템을 통해 원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다 파악하면서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
10년 간 ‘한국형’ 기술자립 성과 이어져
세종대왕함 건조가 시작된 것은 1997년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비해 해군 기동함대 건설을 해군참모총장에게 직접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총장은 기동함대 건설을 추진했으나 그해 11월 터진 IMF사태로 사업 자체가 백지화 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이지스함 3척을 진수하고 대신 이지스함의 화력을 높이는 쪽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진수식은 노무현 정부 때 이루어졌다. 2007년 5월 25일 오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진수식을 통해 대한민국은 세계 5번째 이지스함 보유국이 됐다.
세종대왕함은 2009년 4월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15초 만에 탐지해 레이더 위력을 보여주었다. 동해상에 있었던 미국, 일본 이지스함보다 한 발 더 앞서 있었다. 이후 현재중공업은 한국형 이지스함 2척을 추가 건조한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국내에서는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기술들이 등장했다. 미래부가 집계한 ‘광복 70년 과학기술 대표성과’ 70건 중 19건이 이때 이루어졌다. KAIST에서는 인간형 로봇 ‘휴보’를 개발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고정밀 지구관측이 가능한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호를 제작해 우주상공에 띄워 올렸다.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간 것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밖에 LG화학의 ‘LCD용 편광필름’, 삼성전자의 ‘고해상도 TV', 현대중공업의 ’산업용 로봇‘, 현대자동차의 ’자동차용 타우엔지‘, 삼성중공업의 ’원유 시추선‘, LG생명과학의 글로벌 신약 ’팩티브‘ 등도 2000년대 이후 10년 간을 대표하는 개발 성과들이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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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7-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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