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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객원편집위원
2005-02-21

HP 피오리나 축출의 내막 HP는 거창한 이력보다 실질적 능력의 CEO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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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컨대 피오리나는 단순히 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탄핵을 받은 것 같다. 지난 5년반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 신화의 최고자리에서 군림했던 HP의 회장겸 CEO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는 거대기업의 최고경영자 자격이 있었던 것일까. 화려한 이력과 명성이 꼭 훌륭한 경영자를 만드는 것일까. 나사를 조이고 기름칠 하는 것은 부하에게 맡기고 훌륭한 머리로 생각하는 경영자가 훌륭한 경영자일까. 지금도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여 컴팩을 인수한 것 외에 피오리나가 HP를 위해서 이룩한 업적은 무엇일까. 피오리나는 컴팩을 인수는 했지만 그 업체를 인수하고 나서 한 일은 무엇일까. HP이사회는 그녀의 카라스마적인 권위와 때로는 이사회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분개해 해고결정을 내렸을까. 비즈니스위크 최근호는 이에 대해 '분명 아니다. 경영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피오리나는 갑작스럽게 물러난 것이 아니다. 피오리나는 작년부터 주위의 압력을 결국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HP에 공헌한 바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작년 11월부터 어떻게 하면 자신이 쌓아 올린 명성에 먹칠을 가하지 않고 명예로운 퇴진(gracious exit)을 할 수 있을까를 두고 줄곧 고민해 왔다. 그래서 그 동안 주주와 이사진들과의 물밑접촉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과는 피오리나의 의도대로 안 됐다. 그녀는 명성에 대단한 손상을 입고 물러났다. 철의 여인 HP의 여제는 HP로부터 단순한 해고가 아니라 탄핵을 받은 것이다.


피오리나는 현재 2천1백만 달러에 달하는 HP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 받을 보너스와 월급들이 있다. 물러나면서 그 외에 무엇을 약속 받았는지는 모른다. 피오리나는 명예스러운 퇴직으로 HP에서 물러나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 약속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작년 10월 매일경제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WKF)에 참석한 피오리나는 청중들의 환호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과감히 했다. "끝까지 살아 남는 종(種)은 영리한 종(種)이 아니라 적응능력이 뛰어난 종(種)이다."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이론이다. 그러나 피오리나는 본인의 철학처럼 그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모른다. 은(銀)의 혀와 철의 의지를 소유하고 있고 백만 불의 미소를 가진 이 여성이 언제 또 다시 거대한 기업의 CEO로 나타나 우리들에게 "나는 영리한 종(種)이 아니라 적응능력이 뛰어난 종(種)"이라며 우리를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1955년 생으로 젊고 패기에 차있다. 그래서 더욱 가능성이 있다. 비지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피오리나 축출의 내막(The Inside Story Of Carly's Ouster)'을 다루었다. 그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편집자주).


명예스러운 퇴직을 꿈꾸다.

2004년, 해도 다 저물어가던 12월 HP의 모퉁이 사무실에 흐르는 중압감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8백억 달러의 HP를 수렁에서 건져내려는 노력과 이사진과의 긴장 속에서 이 여성 CEO는 HP에서의 탈출계획을 숙고하고 있었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연말 휴일을 맞은 피오리나는 적어도 4명의 명성있는 CEO들과 HP로부터의 '명예로운 퇴진(graceful exit)'을 위한 충고를 듣기 위해 각기 다른 개별적인 미팅을 하고 있었다. 이 연말 사업회의에 초대된 이름있는 CEO 가운데는 시스코(Cisco) CEO인 존 챔벌스(John T. Chambers)와 인텔(Intel) 사장인 폴 오텔레니(Paul S. Otellini)가 포함돼 있었다.


회담 도중 피오리나는 이 CEO들에게 HP 이사진으로부터 사임압력을 받고 있고 만약 그녀가 동의한다면 체면을 살리면서(face-saving) 회사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었다고 업계소식통이 전했다. 그러나 피오리나 자신도 챔벌스와 오텔레니도 그 코멘트에는 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6일 일요일 저녁, HP이사회는 시카코에 있는 오헤어 하얏트 호텔(O'Hare Hyatt Hotel)에서 피오리나와 함께 비상회의를 열었다. 창 밖으로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 저녁 임원들은 그들의 스타CEO의 야심찬 경영계획의 실패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오리나와 함께 건설적인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이사회의 무능을 무척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HP의 한 직원의 말이다. 다음날 임원들은 피오리나에게 권좌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2월9일 수요일 새벽 5시(태평양 표준시:Pacific time) HP는 지난 5년 반 동안 실리콘 밸리 신화의 최고정상에 있던 피오리나의 해고성명을 발표하면서 그 소식을 세계에 알렸다.


"회사는 화려한 정치인이 아니라 행동하는 실천가를 원해"

그 기습적인 해고성명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동안 피오리나에 대한 HP이사회의 걱정은 날로 깊어만 갔다. 사실 피오리나는 2002년 컴팩 인수를 밀어 붙이면서 임원들이나 투자가들을 정말 놀라게 했다. 이 합병은 기대감을 자아냈고 그리고 비난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 말이 되자 투자가들의 관심은 컴팩 인수에서 떠나 HP의 최대 경쟁자인 IBM과 Dell에 대항할 수 있는 HP의 입지가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HP의 저조한 경영실적과 주가하락에 실망했다. "피오리나는 마케팅의 귀재고 회사를 위한 훌륭한 달변가다. 그러나 정치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 회사다. 회사는 몸소 행동하는 실천가를 원한다." HP에 몸담고 있던 전직 임원이 피오리나를 평가한 말이다.


시대의 흐름도 피오리나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작년도 3분기 동안 HP의 순이익은 너무나 저조했다. 이로 인해 HP는 월가(街)에서 신용도에 대단한 치명상을 입었다. 그리고 주가는 경쟁업체들과 비교할 때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최고 판매책임자를 해고 했지만 피오리나의 경영방식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았다. 이사회도 더 이상 피오리나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단력은 있으나 행동력은 없어

HP가 영업방침을 확고히 정하고 밀어붙이려고 했을 때 임원들은 피오리나가 IBM이나 Dell과 경쟁하는데 있어 신속하게 결정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에 분개해 했다. 예를 들어서 Dell과 싸우기 위해서 HP는 직접판매 방식을 점차 도입하기로 했는데 피오리나는 뭘 생각하는지 신속하게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HP직원의 말이다.


또한 HP는 돈벌이가 안 되는 소프트웨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인수계획에 나선 적이 있다. 2004년 HP는 베리타스 소프트웨어(Veritas Software) 인수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오리나는 또 다시 재빠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HP의 현 전직 임원들의 말이다. 12월 시멘테크(Symantec)가 베리타스를 인수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정말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경쟁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다." 이것도 HP직원의 말이다.


겉만 화려할 뿐 이룩한 업적 없어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HP 임원들은 작년11월부터 피오리나를 제외시킨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그녀가 이룩한 실적과 성과를 집중적으로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세 명의 임원을 선정하고 피오리나를 직접 만나 그녀가 CEO로 이룩한 업적이 과연 무엇인지를 따져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사회의 일치된 견해를 설명했다. 5년 반 동안 이룩한 업적이 없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사회의 결정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행동이 없는 카리스마는 필요 없어

피오리나에 대한 이사회의 해고결정은 HP의 최고 경영자로서 그녀의 신뢰성에 커다란 손상을 입혔다. 피오리나는 HP를 떠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사실은 HP는 거창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는 유명한 CEO 보다 실질적인(nuts-and-bolts) 행동에 익숙한 CEO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형근 객원편집위원
저작권자 2005-02-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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